오피니언

[청론직설] "노동시장 혼란은 정치논리 개입 탓..예측가능한 임금체계 구축을"

<박지순 고용노사관계학회장>

객관적 평가 없이 '시급 1만원' 이데올로기 유포가 문제

유연성 없는 근로시간 단축은 근로자·기업 모두 손해

제조업 초점 맞춘 획일적인 노동법·제도 과감히 바꾸고

유럽처럼 노조도 비즈니스 기여해야 일자리지키기 가능

박지순 고용노사관계학회장은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은 지지층 표만 의식한 당리당략에 따른 판단”이라며 “미리 정해놓고 꿰맞추는 식으로 임금 수준을 결정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성형주기자박지순 고용노사관계학회장은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은 지지층 표만 의식한 당리당략에 따른 판단”이라며 “미리 정해놓고 꿰맞추는 식으로 임금 수준을 결정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성형주기자



제임스 김 주한미국상공회의소(암참) 회장이 열흘 전 한국경제연구원 주최로 열린 특별좌담회에서 한국의 노동시장 경직성이 기업들이 신규 고용을 주저하게 만드는 주요인이라고 지적했다. 크리스토퍼 하이더 주한 유럽상공회의소(ECCK) 사무총장은 급격히 인상된 최저임금에 대해 ‘혼란 그 이상’이라는 표현까지 썼다. 한국의 대결적인 노사관계는 국제기관의 국가경쟁력 평가에서 경쟁력을 갉아먹은 주요인으로 매번 지목된다. 현 정부 들어 노동정책이 노동계 쪽으로 너무 기울어지면서 외국인투자가들의 우려는 더 커졌다. 주 52시간 근로제와 최저임금 인상 등으로 인한 산업 현장의 혼란은 현재진행형이다. 그 사이 플랫폼 노동 확대 등 고용시장 구조는 빠르게 달라지고 있다. 29일 박지순 한국고용노사관계학회장(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을 만나 한국 사회가 안고 있는 노동시장의 문제점과 해법에 대해 들어봤다.



-근로시간 단축을 두고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근로시간 단축은 전혀 새로운 이슈가 아니다. 장시간 노동에 대한 문제가 제기되면서 지속적으로 논의돼왔다. 이전 정부에서도 노동개혁의 한 부분으로 중요시됐다. 갑자기 부각된 사안이 아니라는 얘기다. 일·가정 양립과 자유시간 확대 등 근로시간 단축으로 인한 장점에도 논란이 제기되는 것은 생산성 감소와 임금소득 감소를 우려하는 기업과 근로자의 불만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업종이나 직무에 관계없이 획일적으로 근로시간 단축을 적용하면서 기업의 생산성 저하와 경쟁력 약화, 근로자의 소득 감소, 그리고 근로시간 규제를 피하려는 편법과 탈법을 조장하고 있다.

-정부가 계도기간 검토 등 보완책을 내놨다.

△그건 단편적인 대책에 불과하다. 탄력근로의 부분개선은 근로시간 단축의 부작용을 완화하는 절대적 해법이 아니다. 기업 규모와 업종 등에 따라 근로시간의 획일적 단축으로 나타나는 부작용의 양상이 다양하기 때문에 유일한 처방이 될 수 없다. 정부는 근본적인 노동개혁에는 관심이 없고 경사노위에서 합의가 이뤄진 수준에서의 입법 정도로 마무리하고 싶어하는 것 같다. 표를 의식해 노동계의 눈치를 보고 있는 듯하다. 산업구조와 근로자의 구성, 업무수행 방식, 글로벌 경쟁조건 변화 등의 현실을 감안해 중장기적으로 큰 그림을 그려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 여전히 지지층 표만 바라보면서 근로시간 단축 문제를 다루고 있다. 전반적인 시장 트렌드 변화에 대한 고민 없이 탄력 근로시간을 얼마나 확대하느냐 등 숫자에만 관심을 기울이는 분위기다.

박지순 고용노사관계학회장은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은 지지층 표만 의식한 당리당략에 따른 판단”이라며 “미리 정해놓고 꿰맞추는 식으로 임금 수준을 결정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성형주기자


-고용노동 시장은 지금 어떻게 변하고 있나.

△산업구조가 제조업 중심에서 서비스업으로 이동하면서 근로자 구조도 바뀌고 있다. 블루칼라는 갈수록 줄어들 것이다. 일부 정보기술(IT) 기업은 연구개발(R&D) 인력 비중이 최대 80%에 달하는 경우도 있다. 일하는 방식도 빠르게 달라지고 있다. 업무수행 방식도 자율노동 즉, 시간적·장소적 경계가 없어지는 상황이다. 특히 클라우드 워크 (Cloud work) 확산 등으로 특정 기업에 소속되지 않고 일하는 플랫폼 노동이 확대되고 있다. 이들은 일종의 개인사업자다. 그런데도 법·제도는 제조업에 맞춰 획일적·경직적으로 규정돼 있다. 현재의 근로시간 단축 논의도 그 범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노동 총량을 줄이고 계도기간을 늘린다고 뭐가 달라지겠나. 유연한 제도가 수반되지 않은 근로시간 단축은 기업과 근로자 모두에게 불이익만 초래한다. 이제는 미래지향적으로 유연한 변화를 추구해야 한다

-언제나 그게 가능할까.

△어렵게 노사 대화의 물꼬를 튼 지금이 좋은 기회다. 탄력근로 확대를 넘어 시대 변화를 감안한 새로운 틀까지 생각할 필요가 있다. 일하는 방식이 빠르게 바뀌고 있는 만큼 선택적 근로제, 재량 근무제, 적용, 예외, 특례 등 메뉴를 다양하게 해야 한다. 기업과 근로자들이 상황에 맞게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메뉴가 단순하다는 것은 기업·근로자에게 모두 손해다. 지금 단축근로를 두고 벌어지고 있는 첨예한 대립도 따지고 보면 선택지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급격하게 최저임금이 올라 부작용이 심각하다.

△과도한 최저임금 인상은 정치적 당리당략의 결과다. 기업의 지급능력을 무시해서 진행된 게 문제다. 특히 소상공인·중소기업의 인건비 부담 급증으로 인력 감축과 초단기 알바 양산, 저소득 근로자 일자리 감소 등 부작용이 속출하고 있다. 임금 수준이 높은 기업의 근로자가 많은 혜택을 받는 모순도 발생했다. 이렇게 된 근본적인 원인은 정치권이 객관적 평가 없이 ‘시급 1만원’이라는 이데올로기를 유포한 것이다. 이로 인해 갈등과 대책 없는 분쟁만 야기했다. 객관적인 결정체계는 마련하지 않고 권력이 표를 의식한 정치적 판단에 따라 최저임금을 결정하면 기업의 인건비 예측 가능성이 떨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이는 외국인투자가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다.

-바람직한 최저임금 결정 체계(메커니즘)는.

△지금처럼 결론을 정해 놓고 꿰맞추는 식이어서는 곤란하다. 정치논리를 배제하고 합리적인 인상률 결정을 위한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 경제성장률·물가상승률 등을 고려한 공식 산식(算式)을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합리적인 예측이 가능하다. 근본적으로 소득구조 개선을 통해 양극화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국가와 사용자 등이 책임을 나누는 방법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 지금은 사용자에게만 책임을 전가해 그들의 부담만 키우고 있다. 선진국에서 효과가 검증된 근로소득장려세제(EITC) 등 근로연계형 소득지원제도가 대안이 될 수 있다.

―비정규직이 되레 늘어나는 등 양질의 일자리 창출 잠재력이 갈수록 감소하고 있다.


△우선 기업에 대한 정부의 시각을 바꿔야 한다. 기업을 노동탄압·비리·부패의 온상으로 여기는 전근대적 인식에서 탈피하고 일자리 창출 주체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 이와 함께 해외투자 유치 등을 위해 과감한 규제혁신, 특히 노동법제도의 유연성과 탄력성을 높여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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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순 고용노사관계학회장은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은 지지층 표만 의식한 당리당략에 따른 판단”이라며 “미리 정해놓고 꿰맞추는 식으로 임금수준을 결정해서는 안된다”고 지적했다. /성형주기자


-대립적인 노사관계는 국가경쟁력을 갉아먹은 요인으로 매년 지적된다 .

△갈등적·전투적 노사관계는 기업경영을 넘어 국가 경제에 많은 비용을 유발한다. 험난한 글로벌 경쟁환경을 극복하기도 힘들다. 노사관계가 산업경쟁력의 핵심요소가 되고 있다. 덴마크·스페인·프랑스 등이 노동개혁을 추진한 이유다. 이들은 종래의 경직적 근로조건을 완화하고 유연성을 높여 일자리 문제를 해소하는 한편 기업 생산성을 높여 경쟁력을 강화하는 효과를 거두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과거 관행·제도에 갇혀 있으니 경쟁력이 살아나지 않는 것이다.

-어떻게 노동시장 유연화가 가능한가.

△글로벌 수준의 새로운 표준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1세기 전에 만들어진 노동·근로기준과는 구별되는 기준을 만들어야 한다. 금전보상제 개선, 정리해고 요건 완화와 추상적인 조항의 구체화 등으로 예측 가능성을 높이는 게 중요하다. 파견제 대상업무 확대와 기간제사용기간 개선 등 인력운영 방식도 손봐야 한다. 중소벤처기업에는 일정 기간 규제법 적용을 제외하는 등 창업활동 지원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

△노사 양극단을 중재하는 공정한 조정자 역할을 해야 한다. 노사 간 이견을 좁힐 수 있도록 대안을 제시하고 대화를 촉진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다만 중재자 역할에 머물러야지 지나치게 개입해 한쪽으로 치우치면 기울어진 운동장을 만들 우려가 있다. 이는 정상적인 논의구조를 훼손할 공산이 크다. 필요하다면 유연근무제 등에 대해 노동계를 향해 쓴소리도 하고 설득하는 자세전환이 필요하다. 좌고우면하지 말고 경제활력과 노동개혁의 돌파구를 노동 유연화를 통해 찾아야 한다.

-노조의 동참도 필수적이다.

△산업구조가 인력감소가 불가피한 방향으로 바뀌고 있어 지금처럼 기득권에만 집착해서는 미래가 없다. 현재 조합원의 이익만 생각하는 이기적이고 폐쇄적이어서는 일자리 유지를 장담할 수 없다. 노조도 세일즈맨 역할을 하는 등 비즈니스에 기여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점을 심각하게 인식해야 한다. 영국 노조는 비즈니스 역할까지 하고 있다. 시련을 겪으면서 일자리의 중요성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노조가 유연함을 보여줘야 한국 노사관계에 대한 부정적 시선이 바뀔 수 있다.



-디지털화 가속화에 따른 노동환경 변화에 맞는 노동법 방향은.

△현행 노동법 중에서 2차 산업혁명 시대에 머물러 있는 집단적·경직적·획일적 근로조건 적용방식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 근로자의 선택지를 넓히는 다양성과 함께 근로조건 변경의 탄력성 확대도 고민해야 한다. 근로시간 제도의 유연화는 필수적이다. 특히 현재 노동법이 근로자 중심 보호체계여서 개인사업자 형태로 운영되는 플랫폼 노동자는 노동법의 사각지대이자 빈약한 사회안전망으로 노후도 불안한 상태다. 플랫폼 노동자에 대한 사회안전망 강화, 노동법체계 편입 등 취업활동자로서 최소한의 보호가 가능하도록 제도 보완이 필요하다.

-경사노위가 재가동했지만 여전히 불안한 모습이다.

△지금까지 경사노위는 정부의 친노동정책을 뒷받침하는 개별적·세부적·미시적 의제 중심으로 운영됐다. 이로 인해 노사정간 의견대립이 심각해 파행을 겪기도 했다. 특히 노동계는 민주노총이 빠진 한국노총 중심이 될 가능성이 높아 구체적이고 세부적인 의제 논의가 힘들 수 있다. 따라서 미래 노동시장에 대비하는 좀 더 원칙적이고 큰 방향성을 제시하는 의제를 위주로 논의를 모아가야 한다. /임석훈 논설위원 shim@sedaily.com

●He is

1966년 부산에서 태어나 고려대 법학과를 졸업한 후 독일 아우크스부르크대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2007년부터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로 재직하면서 노동법과 사회보장법을 연구하고 강의하고 있다.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 등 정부의 각종 위원회에 참여했으며 올 7월부터 한국고용노사관계학회 회장을 맡고 있다. 노동법강의, 사회보장법, 통상임금의 이해 등 다수의 저서와 논문을 저술했다.

임석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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