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보다가 아주 평범한 장면에서 눈물이 쏟아질 때가 있다. 이 경우 당황스럽기도 하고 마음이 아프기도 하다. 그런데 알고 보면 바로 그곳이 우리의 콤플렉스나 상처가 숨어있던 자리가 아닐까 싶다. 그 장면은 굳이 날 울리려고 한 것이 아닌데, 나의 콤플렉스가 숨어있던 자리가 엉뚱하게 자극돼 트라우마가 폭발하는 것이다. 앤 해서웨이 주연의 영화 ‘프린세스 다이어리’에서 할머니 클라리스가 손녀 미아를 바라보며 안쓰러운 표정을 짓는 장면이 그렇다. 클라리스는 처음 손녀를 찾았을 때 ‘제노비아 왕국의 다음 통치자’를 애타게 찾는 심정이 더욱 컸다. 처음 보는 손녀가 반갑기보다는 걱정스러운 마음이 앞섰다. 과연 저 철없는 아이가, 공주는커녕 학급 대표도 하기 싫다는 아이가, 클라리스의 평생을 바쳐 지켜낸 소중한 왕국 제노비아의 통치자가 될 수 있을까. 클라리스는 손녀에게 제노비아 왕국의 역사와 예법을 가르치느라 골머리를 앓았다. 클라리스는 평생 한 번도 일탈을 해본 적 없는 모범적인 삶의 주인공이었다.
그런데 손녀가 사교계 데뷔 무대에서 큰 실수를 하고 어깨가 축 늘어진 모습을 보이자 할머니는 처음으로 일탈을 꿈꾼다. 처음으로 ‘다음 후계자’를 바라보는 눈길이 아니라 ‘그냥, 우리 가여운 손녀’라는 느낌이 든 것이 아닐까. 할머니는 손녀에게 ‘우리 오늘은 그냥 놀아 버릴까’ 라고 제안한다. 공부하지 말고, 왕실의 예법도, 왕국의 역사도 상관하지 말고 그냥 우리 둘이 놀자고. 천하의 모범생이자 완벽주의자였던 할머니는 그날 일정을 모두 취소하고, 경호원도 모두 떼어놓고, 오직 손녀와 단둘이 낡은 60년대식 머스탱을 타고 소풍을 나간다. 그 장면에서 이상하게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 왜 이러는 걸까, 생각해 보니 나는 누군가가 제발 ‘우리 그냥 오늘은 아무 걱정 말고 놀아 버리자’고 말해주기를 간절하게 기다린 것이다.
나는 그런 말을 해줄 사람을 아주 오랫동안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다. 나 스스로도 나에게 그런 말을 할 줄 몰랐다. 오늘은 그냥 놀아버릴까. 아무 걱정 없이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그냥 놀아버리자고. 나는 남몰래 기다려 왔던 것이다. 저렇게 따스한 눈빛을 지닌 할머니나 어머니, 또는 나를 아무런 조건 없이 사랑하는 누군가가 나에게 그렇게 다정하게 ‘아무 걱정 말고, 모든 두려움을 떨쳐버리고, 그냥 놀아버리자’고 손을 내미는 순간을. 나는 이런 순간을 무의식에서 간절히 꿈꿨지만 감히 한 번도 말하지 못한 것이다. 그곳이 나의 콤플렉스가 거주하는 자리였다. 내 마음 깊은 곳의 나는 간절히 휴식과 놀이를 꿈꾸었지만, 나의 강력한 초자아(Superego)가 ‘넌 놀면 안돼, 뭐든지 쉬지 않고 열심히 해내야만 해’라고 끊임없이 나를 억압했던 것이다.
콤플렉스가 있던 자리를 어루만져 주는 마음 챙김 훈련은 의외로 간단하다. 마치 밤하늘의 별자리처럼 우리 마음 속에 포진해 있는 콤플렉스의 지형도를 파악하는 것이다. 외모나 사회적 지위, 학벌이나 재산, 인기나 명예 등 수많은 콤플렉스의 항목들은 우리 마음 속에서 일종의 ‘콤플렉스의 별자리’를 그리고 있다. 콤플렉스가 포진하고 있는 자리를 골라 마치 혈 자리를 포착해 침을 놓는 의사처럼 환부를 어루만지는 마음으로, 나의 결핍이 나를 괴롭히는 부분을 찾아 이렇게 말해주면 어떨까. 너는 그 모든 결핍에도 불구하고, 있는 그대로 소중하고, 아름답고, 눈부시다고. 그 많은 콤플렉스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큰 탈 없이 버텨온 너 자신이 기특하다고. 너무 많은 콤플렉스에 찌들어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잊어버린 우리 자신의 어깨를 꼭 안아주는 오늘이 되었으면. 오늘도 콤플렉스를 이겨내며 꿋꿋하게 하루를 버텨온 당신이 부디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 당신은 당신의 장점 때문에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그 모든 결점을 껴안은 채 오늘도 용감히 이 세상을 버텨냈기에 더욱 아름다운 존재임을. 콤플렉스가 놓여 있는 자리, 그곳은 아픔이 꿈틀거리는 장소만이 아니라 치유의 기적이 일어나는 장소, 삶의 전환점이 시작되는 장소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