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청론직설] "청년층 분노 원인은 불공정...'386' 기득권 내려놔야 세대갈등 완화 가능"

[우석훈 성공회대 외래교수]

조국 내세워 사법개혁 매달리다 사회정의 명분 희생

靑참모진 현안대응 급급할 뿐 큰그림 그리는 노력 없어

임기 반환점 앞둔 文정부 제대로 된 경제 청사진 안보여

지속가능한 성장 위해선 잠재성장률 높이는데 중점둬야




세대담론이 거세게 휘몰아치고 있다. 지난 2007년 ‘88만원 세대’가 비정규직 청년의 눈에 비친 한국 사회의 민낯을 여과 없이 드러냈다면 2013년 송호근 포항공과대 석좌교수는 ‘그들은 소리 내 울지 않는다’로 은퇴를 앞둔 베이비붐 세대를 조명했다. 2019년 한국 사회에서는 단연 386세대가 화두다. 1960년대 태어나 1980년대 대학을 다니며 30대부터 사회에 진출한 이들을 두고 시간의 흐름과 함께 386·486·586이라 부르고 있지만 30대뿐만 아니라 50대인 지금도 우리 사회를 이끌고 있는 세력이다. 자유와 평등을 외쳤던 386세대가 주도해 만든 오늘이 오히려 불공평하고 정의롭지 못하다는 아이러니에서 출발한 세대담론은 ‘조국 사태’를 거치면서 우리 사회가 짚고 가야 할 성장통이 됐다. 386세대 대표주자(86학번)이자 진보 경제학자인 우석훈 성공회대 외래교수는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임명 당시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1987년 이후 이어져 온 개혁파의 명분은 끝났다. 10대·20대가 그것을 명분으로 인정하지 않는 순간 87년 체제의 명분은 끝난 것”이라고 설파했다. ‘좌파 지식인’인 동시에 386세대인 자신의 입으로 87년 체제의 종말을 고했다는 점에서 상당한 파장을 일으켰다. 우 교수는 1일 종로구 평창동의 한 카페에서 서울경제신문과 인터뷰를 갖고 “젊은 세대는 사회적 격차와 경제 불평등 해소 등 ‘공정’이라는 가치를 가장 중요시한다”면서 “기득권층으로 대표되는 386세대가 독점하는 권력을 내려놓고 사회의 변화에 앞장서야 갈수록 깊어지는 세대 갈등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우석훈 성공회대 외래교수가 지난 1일 서울 종로구 평창동 카페에서 가진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386세대가 사회의 변화에 앞장서야 갈수록 깊어지는 세대 갈등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오승현기자우석훈 성공회대 외래교수가 지난 1일 서울 종로구 평창동 카페에서 가진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386세대가 사회의 변화에 앞장서야 갈수록 깊어지는 세대 갈등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오승현기자


-최근 386세대론에 불을 지핀 ‘386세대유감’ 해제를 맡았다. ‘88만원 세대’ 이후 12년 만에 세대론에 천착했는데 동기는.


△12년 전만 해도 정책적 해법을 찾고자 하는 목적이 컸다. 정책 수요자로서 20대 청년들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정치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찾아 나선 여정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10대·20대는 그때와 또 다르다.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기성세대와 다르고 당연히 관심사도 달라졌다. 말 그대로 ‘마이크로 담론’으로 분화된 셈이다. 그런데 한 가지 눈에 띄는 점이 있다. 그때도 지금도 386세대는 젊은이들의 눈에 ‘꼰대’로 통칭되는 기성세대이자 기득권이라는 사실이다. 세상을 바꾸려면 가진 자가 양보를 해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오히려 가진 것을 더 움켜쥐는 것은 물론 자식 세대로 대물림하려고 한다. 불공정한 게임이 고착화되는 것이다.

-최근 586세대보다는 386세대로 통칭되는 분위기다. ‘386세대유감’에서도 30대에 쥔 권력을 지금까지 쥐고 있다는 점에서 386세대로 규정했는데.

△저자들이 30대부터 40대 초반 후배들이다. 직접 알지는 못한다. 출판사에서 해제를 부탁해 평소 관심을 갖던 주제라 흔쾌히 수락했다. 개인적으로는 386세대라는 명칭이 익숙하기는 하다. 386세대가 권력을 잡은 분야로 따지면 가장 두드러진 곳이 문화예술일 것이다. 소설이나 영화 등 예술 분야에서는 기존 순수성 중심에서 사회참여로 패러다임이 바뀌는 데 핵심적 역할을 했다. 소설가 김영하, 영화감독 봉준호씨가 대표적이다. 경제 분야에서는 벤처 1~2세대의 상당수가 386 출신으로 상당한 리더십을 확보했다. 교육이나 사회운동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정치는 그렇지 못하다. 20대 국회 300명 중 거의 절반인 144명이 386세대다. 하지만 여의도에서 이들이 리더십을 발휘하고 있느냐고 되묻는다면 그렇다고 답하기 어렵다. 양적 확대만큼 리더십을 확보하지 못했다. 공(功)이 있다면 인정할 텐데 그렇지도 못했다. 심부름꾼 역할만 하다가 나이가 들어서 중진이 됐다. 386세대를 상징하는 계파를 만든 것도 아니고 자영업자처럼 넓게 분포돼 각자도생하는 형국이다. 그런 점에서 표창원·이철희 의원이 최근 내년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것은 매우 신선했지만 안타깝기도 했다. 이들은 각자 브랜드도 있고 정책적 성과도 있었지만 아마도 현실 정치인으로서 한계를 많이 느꼈을 것이다.

우석훈 성공회대 외래교수가 지난 1일 종로구 평창동 한 카페에서 가진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386세대가 사회의 변화에 앞장서야 갈수록 깊어지는 세대 갈등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오승현기자우석훈 성공회대 외래교수가 지난 1일 종로구 평창동 한 카페에서 가진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386세대가 사회의 변화에 앞장서야 갈수록 깊어지는 세대 갈등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오승현기자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사퇴했지만 우리 사회에 많은 상처를 남겼다.

△조 전 장관 임명은 눈에 보이는 사법 개혁을 위해 눈에 안 보이는 사회정의나 경제정의를 희생시켰다는 점에서 매우 잘못된 선택이었다. 그래서 조국 이후의 시대는 명분 없는 시대가 됐다. 격차 해소, 불평등 완화 등 ‘당위성’은 이명박 전 대통령도, 박근혜 전 대통령도 얘기했다. 대중, 특히 청년의 지지가 없는 당위성에는 명분이 생기지 않는다. 사회적 개혁을 외친다면 이를 정당화시킬 수 있는 명분이 매우 중요하다. 논리적으로 옳은 것과 그것이 정당성이 갖는 것은 엄연히 다른 문제다. 아무리 옳다고 주장해도 수용자가 받아들이지 않으면 소용없다. 조국 사태가 그렇다. 사법 개혁이 중요하고 이를 위해 ‘조국 수호’를 외쳤지만 10대·20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정당성을 확보하지 못한 것이다. 게다가 조 전 장관 자녀 입시 비리 의혹은 이미 대학에 진학하거나 사회에 진출한 20대보다는 입시를 목전에 둔 10대에게 적지 않은 상처를 남긴 것 같다. 아직까지 투표권이 없지만 오는 2022년 대선부터 투표권을 행사할 세대다. 이들에게는 부모의 재력과 사회적 위치에 힘입어 대학에 들어갔다는 사실만으로 최악의 불공정으로 인식된다. 젊은 층의 이탈은 이미 시작됐다고 봐도 무방하다. 2018 평창동계올림픽 당시 남북단일팀을 강행하면서 이미 20대의 마음이 떠났다. ‘통일’이라는 거대 담론보다는 ‘공정’이라는 키워드가 중요한 청년들에게 진보 정부의 이 같은 선택은 패착이나 마찬가지였다.

-같은 맥락에서 87년 체제의 종말을 선언했는데.

△대한민국의 민주화라는 성취를 1987년 6월 항쟁이 오롯이 만들었냐고 묻는다면 그건 아니라고 본다. 1960년대부터 쌓아온 민주화를 위한 노력들이 1987년 6월 민주화 항쟁을 통해 큰 성취를 이룬 것은 사실이다. 이를 신화로 가져가면서 (개혁파의) 명분을 확보했는데 조국 사태와 함께 그 신화가 완전히 깨졌다. 10대·20대가 정당하다고 인정하지 않는 순간 1987년 이후로 이어져 온 개혁파의 명분은 끝난 것이다. 시간이 갈수록 20대의 마음은 더 떠나고 10대의 관심은 다른 곳을 향할 것이다. 지금의 60~70대 유신세대가 청년과 멀어지면서 고립됐듯이 386세대의 미래도 머지않아 그렇게 될 것이다. 지금이라도 기득권을 내려놓고 20대·30대 후배들의 길을 터줘야 그나마 세대 간 화해라도 가능할 것이다.

-정치적 이슈에 묻혀 각종 경제 지표는 악화되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경제 정책을 종합 평가하자면 안 놓치는 게 없다는 거다. 청년들의 분노는 하부구조, 즉 경제문제와 관련된 것들이다. 사회적 격차와 경제적 불평등, 이런 부조리를 해결하라는 요구다. 하지만 ‘조국 사태’에서 볼 수 있듯이 청와대와 여당은 사법 개혁만 줄곧 주장했다. 문재인 정부 임기 절반을 지나는 동안 제대로 된 경제 개혁 청사진이 나온 게 있는가. 돈이 필요한 곳으로 자연스럽게 흘러가게 해야 하는데 금융시스템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 일례로 제조업에 관심도 없다가 일본의 수출 규제를 계기로 소재부품장비 제조업을 살린다고 난리다. 하지만 갈수록 공동화하는 지역경제에 대한 종합 설계도 없고 4차 산업혁명 관련 정밀 산업에 대한 분석도 없이 기존 산업단지만 리뉴얼하는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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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문제를 제대로 풀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집권 초기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 때만 해도 큰 그림을 그리려는 노력이라도 있었는데 지금은 아니다. 김수현 실장 체제에서는 경제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대안이나 장기적인 비전이 부족했다. 지금 김상조 실장 체제도 마찬가지다. 그때그때 발생하는 현안에 방어형으로만 대응하고 있다.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에 대해 김상조 실장이 직접 나서서 ‘롱 리스트가 있다’는 등 불필요한 발언을 할 필요가 없었다. 현안 대응은 산업통상자원부나 외교부 실무 파트가 하면 된다. 오히려 정책실장이 나서면서 실무 파트의 운신의 폭을 줄였다. 긴 안목에서 정책 과제를 발굴하고 이를 실행할 사람을 찾아내는 게 청와대의 역할이다. 그런데 현재 청와대 참모진의 대부분이 공무원들로 채워져서 현안에만 대응하는 모양새다. 그나마 변양균 전 실장은 장기 계획이라도 짜고 비전을 만드는 역할이라도 했는데 지금은 그런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다. 방어형 경제관료 체제가 집권 하반기에 들어선 문재인 정부의 경제 기조를 움직이는 기본 시스템이 된 셈이다. 디플레이션 우려 등 각종 경제 지표가 좋지 않은 것도 사실이지만 경제가 위기라서가 아니라 정치가 위기라서 벌어지는 악순환 같다.

-경제 문제를 좀 더 구체적으로 짚는다면.

△이번에 발표된 정부의 ‘대도시권 광역 교통 정책’에는 대규모 토목 사업이 담긴다. 주요 거점을 30분대로 연결하는 광역철도망이 구축되고 대심도 지하도로도 신설된다. 현 정부는 토목 사회간접자본(SOC)을 통한 경기 부양은 지양해왔다. 그런데 경기가 위축되니까 토목건설에 눈을 돌리는 것이다. 100조원에 달하는 엄청난 재원이 투입돼야 한다. 건설을 통한 지표 관리가 가장 빠르니까 그런 선택을 하는 것이다. 좋은 경제 정책은 잠재성장률을 높이는 정책이다. 주요 재원을 미래 핵심 자산, 소프트웨어 기술 혁신이나 인적 자원 투자 등에 써야 한다. 출산율을 높이고 지역 불균형을 해소하는 데 투입해야 한다. 당장 가시적인 성과가 없어도 지속성장을 위해서는 잠재성장률에 집중해야 한다. 하지만 지금 정부는 장기적 경제 정책은 포기한 것 같다. 당장 내년 총선을 대비해야 하니 건설 경기라도 부양하고 발생하는 현안에 대응이나 하자는 방어형으로 잡은 것 같다. 민주화를 외쳤지만 경제는 여전히 군사 독재정권 시절처럼 밀실 행정이다. 국민들은 배제돼 있고 슬쩍 발표해서 언론을 통해 간 보고 반응이 좋으면 시행하는 식이다. 내부에 경제 전문가가 없다고 하지만 열심히 듣고 적극적으로 전문가를 찾아다 적재적소에 앉히면서 해법을 찾아야 한다.

-장기적 비전이 나오지 않는 것은 인적 구성의 문제인가.

△시스템의 문제다. 청와대도 그렇고 정부의 주요 보직에는 ‘보은형’이 아니면 ‘정거장’이 되고 있다. 다음 자리에 앉기 위해 정거장으로 쓰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한 사람 한 사람 목숨을 바쳐서 해도 될까 말까 인데 국정이 정거장이 되고 있다. 전략적으로 선거가 중요하니까 한 자리 한 자리를 정거장으로 활용하는 거라고밖에 안 보여진다. 지난 정권에선 회전문 인사라고 비난도 받았지만 차라리 회전문이 나을 수도 있겠다. 돌리다 보면 실력 있는 사람도 들어올 수 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국민의 세금으로 월급을 받는 사람들이 자신의 직분에 충실하지 않고 다음 자리만 쳐다보는 형국이다. 이러니 장기 비전도, 국가 미래를 위한 설계도 나오지 못하는 게 아닌가.

-지금과 같은 위기 상황에서 정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우리나라 정치를 이끄는 지도자들이 스스럼없이 만나야 한다. 국회의장, 여야 대표들이 1주일에 한번이라도 모여서 차라도 한 잔 하면서 격론을 벌여야 한다. 보여주기식 제스처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각자 해법을 치열하게 고민하고 이를 갖고 토론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바란다. 일치하지 않더라도 이견을 조금이라도 좁혀나갈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기성세대인 우리 386세대가 보여줘야 하는 모습은 소통하고 협력하면서 젊은 세대에게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자 노력하는 모습이 아닌가 한다. /정민정 논설위원 jminj@sedaily.com

He is

1968년 서울에서 태어나 연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파리 제10대학교대학원에서 경제학 박사를 마쳤다. 현대환경연구원·에너지관리공단·금융경제연구소에서 일했으며 새정치민주연합(더불어민주당) 부설 정책연구소인 민주정책연구원 부원장을 지냈다. 박권일과 공저한 ‘88만원 세대’로 명성을 얻었으며 현재 성공회대 외래교수로 재직 중이다. ‘조직의 재발견’ ‘촌놈들의 민주주의’ ‘괴물의 탄생’ ‘사회적 경제는 좌우를 넘는다’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정민정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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