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금융가

[기자의 눈]오픈뱅킹시대 '나르시시즘'에 빠진 은행

빈난새 금융부




“다른 분야에서는 수십년 전부터 이미 해왔던 일을 이제야 하면서 스스로 ‘대단하다’고 자화자찬하고 있는 게 현재 은행들의 모습이죠.”

최근 금융권에서 가장 큰 화두는 단연 오픈뱅킹이다. 은행 애플리케이션 하나로 다른 모든 은행 계좌를 조회하고 송금도 할 수 있는 이 서비스가 지난달 30일 개시되면서 은행들은 그야말로 새로운 ‘무한경쟁’ 시대에 들어섰다는 얘기들이 안팎에서 쏟아졌다. 실제로 은행들은 각자 모바일 앱을 전면 개편하고 타행 이체 수수료를 완전 무료화하는 등 오픈뱅킹 시대 고객유치 경쟁에 열을 올리고 있다.


하지만 사실 이 오픈뱅킹이라는 개념은 우리나라에서도 새로운 것이 아니다. 오픈뱅킹은 송금·조회·대출 등 은행의 특정 기능을 표준 방식으로 집약한 API를 은행 밖으로 개방(오픈)해 제3자도 이용할 수 있도록 한 시스템이다. 쉽게 말해 API가 은행이라는 건물을 만들기 위한 하나하나의 ‘블록’이라면 토스·카카오페이 같은 핀테크 업체도 수수료를 내고 이 블록을 가져다 쓸 수 있게 허용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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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별 은행은 이런 식의 API 개방을 ‘오픈 API’ 구축이라는 이름으로 2015년부터 자체적으로 추진해왔다. 이번에 개시된 오픈뱅킹의 차별점은 정부가 주도해 △수수료를 10분의1 수준으로 낮추고 △개방 대상을 넓히며 △은행결제망 개방을 법으로 의무화했다는 점이다. 은행의 독점적인 권한을 허물었다는 점에서 엄청난 혁신이지만 개념 자체가 새로운 것은 아니다.

금융권 밖으로 눈을 돌리면 얘기는 또 달라진다. 오픈 API는 정보기술(IT) 분야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활발했다. 그 결과물은 우리 생활 곳곳에도 스며들어 있다. 일례로 전 세계를 들썩이게 했던 증강현실(AR) 모바일게임 ‘포켓몬 고’는 게임업체 나이언틱이 구글이 외부에 무료 공개한 ‘지도 API’를 가져다 만든 게임이다.

요즘 들어 오픈뱅킹 시대를 대비하느라 분주한 은행들의 움직임을 본 A은행의 한 고위관계자가 “현재 우리 은행들은 나르시시즘에 빠져있다”며 자조를 날린 것도 이 때문이다. 다른 분야에서는 이미 당연하게 이뤄지고 있는 개방과 혁신의 흐름을 우리 은행들은 이제야 따라잡고 있는데 그나마도 기존 은행 간 출혈경쟁과 눈치 보기로 너무 더디다는 우려에서다. “개방과 혁신은 기술이 아니라 정책의 문제”라던 그의 말을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기술이 없어서 개방과 혁신을 못 하는 것은 분명히 아니다. binthere@sedaily.com

빈난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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