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오늘의 경제소사] 여기자 넬리의 무한도전

1889년, 72일 만에 세계일주

넬리 블라이 /위키피디아넬리 블라이 /위키피디아



1889년 11월14일 목요일 오전9시40분 뉴욕. 항구를 빠져나가는 여객선 아우구스타 빅토리아호에 이목이 쏠렸다. 75일 안에 세계를 일주하겠다고 공언한 25세의 미국 여기자 넬리 블라이(사진)가 승선했기 때문이다. 여성의 권리가 억압받고 참정권도 없이 여기자도 극소수였던 당시 환경에서 여자 혼자 세계 일주에 나섰다는 점부터 세간의 화제를 모았다. 뉴욕 월드지에서 일하던 블라이가 세계 일주를 기획한 것은 1년 전. 신문사에서는 제안을 받아들이되 위험하니 남성 기자를 보냈다고 통고해왔다.


블라이는 신문사에 맞받아쳤다. ‘남성 기자를 보내세요. 그러면 다른 신문사(로 이직해) 대표로 뛰어 그 남성을 이기고 말 테니.’ 결국 뉴욕 월드지는 손을 들었다. 기획취재에 블라이를 내보낸 결과는 대성공. 예정보다 3일을 앞당겨 72일 만에 뉴욕으로 돌아왔다. 실론(오늘의 스리랑카)에서 닷새를 허비하는 차질을 딛고 이룬 성과다. 블라이는 여행기사에 영감을 불어넣어 준 ‘80일간의 세계 일주’를 지은 쥘 베른도 만났다. 여행지의 이면과 사회 특성 파악에도 남다른 촉감으로 깊이 있는 기사를 쏟아냈다. 여행기에는 후발산업국가 일본이 외국의 은퇴 기술자를 초빙해 국내 인력을 양성하는 과정도 자세히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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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큰 위기는 홍콩에서 확인한 경쟁지의 추격. 블라이의 동료 여기자를 스카우트하고 일정이 빠른 배를 구하는 데 돈을 아끼지 않으며 한때 블라이를 4일 이상 앞선 적도 있다. 뒤진 순간에도 냉정을 잃지 않았던 블라이는 최종 결과도 3일 차이로 앞섰다. 그는 탐사 기획보도의 대가라는 평가도 이어나갔다. 2년 전에는 환자라고 속이고 잠입한 정신병동의 실상을 낱낱이 까발려 의료행정 개혁에 불붙인 적도 있다. 언론사는 그를 탐사 기획보도의 선구자로 기억한다.

주목할 것은 그의 성장과 입문 과정. 가난하고 자녀가 많은 가정에서 태어나 단 한 학기 밖에 학교 교육을 못 받았던 블라이가 기자가 된 과정이 흥미롭다. 그가 보낸 독자 투고를 눈여겨본 한 편집국장에 의해 수습기자로 채용돼 이민과 이혼, 노동 현실 등 사회 문제를 날카롭게 지적하며 필명을 날렸다. 무학력 여성이라는 차별과 편견을 극복한 여기자 블라이를 떠올리며 우리를 본다. 한국적 환경에서 학교에 다니지 못한 젊은 여성이 기자든, 회사원이든 소질을 계발하고 꿈을 이룰 수 있는가. 블라이를 발굴해낸 작은 신문의 편집국장과 같은 혜안이 우리에게 있을까. 그렇다고 말하기 앞서 부끄럽다. 우울하다.
/권홍우기자 hongw@sedaily.com

권홍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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