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김장 배추만큼이나 인도에서 필수 식자재로 꼽히는 양파가 인도 정부의 최대 골칫거리가 되고 있다. 연초 가뭄으로 양파 값이 폭등하더니 올 여름에는 폭우까지 내리면서 양파 가격을 통제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도 경제성장률이 뒷걸음질치고 물가는 고공행진을 이어가는 최악의 상황 속에서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는 양파 파동으로 정치적 입지가 크게 흔들릴 것을 우려해 방어책 마련에 총력전을 펴고 있다.
16일 인도 매체 이코노믹타임스에 따르면 양파 소비자 가격은 최근 1kg당 80~90루피(1,300.80~1,463.40원)로 치솟았다. 3개월 전인 올 7∼8월 양파가 1kg당 20∼25루피에 거래됐던 것과 비교하면 가격이 약 4배 급등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가 인도 뉴델리 농산물직판장 자료를 인용해 보도한 내용에 따르면 도매 가격도 연초 대비 500% 폭등해 40kg당 1,908루피에 거래됐다. 1kg당 47~48루피에 거래되고 있다는 뜻인데 소비자들에게 적용되는 소매 가격은 이보다 2배 더 높은 상황이다.
인도에서는 이상기후로 올 초부터 양파 대란에 시달리고 있다. 인도에서는 1년에 2번 양파를 수확하는데 올 상반기에는 극심한 가뭄으로 생산량이 전년 대비 절반으로 급감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원자재 분석업체 민텍의 루티카 고데카르 연구원은 “작물 피해가 극심해 양파 가격이 치솟았다”고 설명했다.
올 하반기에는 폭우에 따른 홍수가 말썽이었다. 최근 양파 수확이 한창이지만 몬순(계절풍) 기간 들이닥친 폭우로 수확이 저조하고 상품 질도 예년에 비해 크게 떨어졌다. 폭우가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어 내년까지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우려가 현지 농가에 팽배해 있다. 인도 일간 타임스오브인디아는 지난달 2일 인도 내무부의 통계(28개 주 중 14개 주 집계) 등을 인용해 지난 6월부터 9월까지 홍수와 연관된 사망자 수가 1,685명, 실종자 수도 수백명에 각각 이른다고 보도했다. 인도의 우기인 몬순 시즌은 해마다 6월 중하순부터 시작돼 9월까지 이어지며 이 시기에 연 강수량의 대부분이 쏟아진다.
인도인들에게 양파는 가장 중요한 생필품이다. 한국인이 김치를 먹듯 인도인들은 양파를 주된 반찬으로 먹을 뿐 아니라 비리아니(현지 볶음밥), 바지(야채 볶음) 등 많은 음식에 재료로 사용하기 때문에 소비자나 농민 모두 가격 변동에 예민하다. 2013년 코트라 자료에 따르면 인도에서 1인당 연간 양파 소비량은 8.2㎏에 달해 세계평균 소비량인 1인당 6.2㎏보다 많다.
특히 인도에서는 양파 값은 선거를 좌우할 정도로 정치적으로 민감한 문제로 양파 가격이 요동칠 때마다 정치권은 긴장에 휩싸인다. 지난 1980년 총선과 1998년 델리 주의회 선거 때 당시 집권당인 인도국민당(BJP)이 양파가격 대응 실패로 패배했던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인도 전체 인구 13억5,000만명 중 70%가 농촌에 몰려 있는 만큼 인도 선거에서 농촌 표심 확보가 승리를 위한 최대 관건으로 꼽힌다.
양파 값이 얼마나 중대한 문제인지 잘 알고 있던 모디 총리는 지난 4월 총선을 앞두고 농가 표를 얻기 위해 ‘TOP’ 가격 안정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TOP은 토마토(tomato)와 양파(onion), 감자(potato)를 뜻한다. 2015년에도 양파 가격이 폭등하면서 모디 총리와 여당인 BJP가 긴장한 사례가 있었다. 정국 향방을 좌우할 동부 비하르 주 의회 선거가 그해 11월 예정된 상황에서 양파 가격 폭등이 선거의 쟁점으로 부각된 것이다. 당시 정부는 내수 시장 양파 공급 확대를 위해 양파 수출 가격을 1톤당 700달러 이하로는 매길 수 없게 하고 이웃 국가로부터 1만톤의 양파를 긴급 수입하며 긴급 대처에 나선 바 있다.
올해 총선에서 농가에 고소득을 약속해 당의 압승을 이끈 모디 총리는 민심을 수습하기 위해 긴급 대응에 나섰다. 올해 6년 만에 최악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양파 가격을 잡지 못해 물가 급등이 이어질 경우 장기 집권을 꿈꾸는 모디 총리의 구상에 차질이 불가피해지기 때문이다. 인도 중앙은행이 경기 둔화에 대응하기 위해 올 들어 5번 금리를 내린 상황에서 양파 값 급등은 국민들의 극심한 민생고로 이어질 수 있다. 특히 양파 값 폭등에 따른 민심 동요가 최근 칠레, 볼리비아, 레바논 등 각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대규모 반정부 시위를 인도에서도 초래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인도 정부는 크게 긴장하는 모습이다.
이에 따라 인도 정부는 지난 9월 양파 값을 관리하기 위해 정부가 확보해 둔 양파 5만톤을 시중에 공급했다. 또 양파 값 추가 급등을 막기 위해 트레이더들의 거래를 제한했고 지난달 29일 양파 수출을 전면 금지했다. 인도 정부는 지난 9일 해외에서 양파 10만톤을 수입하겠다며 추가 대책을 내놓기도 했다.
지난해 양파 220만톤을 수출한 수출 대국 인도가 양파 수출을 차단하자 인접국들도 비상에 걸렸다. 양파 수요의 3분의 1 가량을 인도에서 수입하는 방글라데시가 대표적이다. 인도의 수출 중단으로 최근 방글라데시 현지 양파 값은 평소 킬로그램당 30타카에서 130타카로 치솟았다. 인도의 양파 수출 중단에 직격탄을 맞은 방글라데시의 셰이크 하시나 총리는 최근 인도를 찾아 “우리나라도 양파를 구하기 힘들어졌다. 내 주방장에게 양파를 빼고 요리하라고 말했다”며 조치를 풀어달라고 요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