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딘가 아프면 우리는 일단 약국부터 찾습니다. 배가 아프면 배탈약을 먹고 손가락을 다치면 약과 밴드를 바르죠. 약국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2019년 현재 대한민국에서 약국(2만 3,000곳)은 치킨집, 편의점만큼이나 흔히 볼 수 있는 곳이거든요. (전국 프랜차이즈 치킨집 2만5,000곳, 전국 CU-GS25 편의점 2만 6,000곳)
지난 11일 보건복지부는 지역별 의료격차 해소 대책을 발표했습니다. 병원이 부족한 9개 권역에 지방의료원을 확충하고 전공의와 간호사 등 의료 인력을 파견하는데 힘쓰겠다는 내용이었죠. 정부가 지역의료 강화 대책을 내놓은 배경에는 심각한 지역별 의료격차가 자리합니다. 수도권과 지역은 입원·응급·뇌혈관질환 사망비가 최대 2.1∼2.5배나 차이 나거든요.
지방의료원과 의료인력 못지않게 꼭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바로 동네 약국입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정기적으로 각 국가별 인구 10만 명당 약국 수를 조사해 발표해오고 있는데요, OECD 평균은 25.1개(2015년 기준)입니다. 한국은 평균보다 많은 41.8개로 OECD 국가 중 스페인(47.2개), 일본(45.0개), 벨기에(43.9개)에 이어 4위에 올랐죠.
그런데 서울경제가 직접 확인해본 결과 도심에선 흔하디 흔한 약국이 도심에서 멀어질수록, 지방으로 갈수록 쉽게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읍·면·동 단위로 잘게 쪼개면 동네에 약국이 단 한 곳도 없는 지역은 수 백여 곳에 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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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별 편차를 좀 들여다볼까요. 서울 중구의 인구 10만 명당 약국 수는 134.6개, 서울 종로구의 인구 10만 명당 약국 수는 115.5개로 매우 집중돼 있죠. 대구광역시 중구는 인구 10만 명당 약국 수가 무려 190개에 이릅니다. 반면 울산광역시 북구는 인구 10만 명당 23.1개로 OECD 평균에 못 미칩니다. 인천광역시 옹진군도 19개에 그쳤습니다. 인구 2만여 명의 인천 옹진군은 군 전체에 약국이 4개 뿐입니다. 비슷한 인구의 경북 영양군 역시 약국이 단 4개 밖에 없죠. 그나마 약국이 없는 동네보다는 나은 형편입니다. 서울 종로구 사직동이나 삼청동처럼 도심 번화가 동네에도 ‘무약촌’은 존재합니다.
그런데 조금 이상합니다. 약국 영업 인허가 건수는 해마다 큰 폭으로 증가하고 있었거든요. 행정안전부 지방행정인허가 데이터에 따르면 지난해에만 2,000여 곳이 넘는 약국이 신규 영업 허가를 받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 많은 약국들은 다 어디로 간 것일까요? 사실 약국의 절반 가까이(49.5%)는 서울과 경기 등 수도권에 집중돼있습니다. 부산, 대구, 대전, 광주, 울산 등 5개 광역시를 포함하면 10곳 중 7곳(69.96%)의 약국이 대도시에 편중돼있습니다.
각 시군구별 약국 집중도 차이 직접 눌러서 보기 |
우리나라는 고령화 속도가 세계에서 가장 빠릅니다. 의료비를 많이 지출할 수 밖에 없는 노인도 빠르게 늘고 있지요. 노인 1인당 연간 진료비는 평균 454만 4,000원으로 전체 평균 152만 원의 3배에 이릅니다. 국민 1인당 의약품 판매액(연간 75만원)은 OECD 최상위권 수준입니다.
특히 ‘무약촌’으로 확인된 대다수 읍면 등 농촌 지역에는 홀몸 어르신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기도 합니다. 이들은 혼자 아플 때 멀리 있는 병의원은 커녕 동네 약국마저 가볼 수 없어 작은 병도 키우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앞서 보건복지부가 인용했던 자료인 ‘수도권-지역 사망비율 2배 차이’로도 확인되지요. 동네 약국의 역할이 강조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약국과 치킨집 개·폐업수 비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