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청론직설]"정책 실패를 나랏돈으로 메꿔...재정지출 점검 시스템 서둘러야"

■박형수 서울시립대 교수(前조세재정연구원장)

現정부, 세금 쓰면서 대놓고 선거운동 벌이는 격

재정 풀어도 규율부터 갖춰야 실질적 성과 가능

'넓은 세원·낮은 세율' 원칙으로 증세 검토할 때

중장기 로드맵 만들어 국민적 합의도출 주력을




연말 예산시즌을 맞아 국가재정의 적절성을 둘러싼 공방이 뜨겁다. 내년도 확장예산을 편성한 정부는 ‘작물이 곳간에서 썩어서는 안 된다’는 논리까지 내세워 남은 예산마저 남김없이 쓰라고 독려하는 데 반해 야당과 학계에서는 재정 만능주의의 폐해를 막아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국민들은 나라 살림에 대한 걱정이 커질 수밖에 없다. 박형수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전 조세재정연구원장)는 “국가재정은 근본적으로 시장의 역할을 대신할 수 없다”며 “재정 건전성을 유지하기 위한 법적·제도적 기반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갈수록 급증하고 있는 재정지출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규율과 절제가 절실하다는 얘기다.

-국회에서 2020년 예산안을 놓고 막바지 심사작업이 한창이다. 내년은 513조원의 초슈퍼 예산으로 짜여 있는데.


△내년을 포함해 재정지출 증가율이 3년 연속으로 경상성장률의 두 배를 웃도는 것은 극히 이례적인 현상이다. 이처럼 세출이 늘어나는 것은 크게 세 가지 이유로 볼 수 있다. 우선 정부가 더불어 잘사는 나라를 만들겠다며 복지 지출을 크게 늘렸기 때문이다. 공약을 실현하겠다며 돈을 더 앞당겨 쓰자는 식이다. 두 번째는 집권 초기부터 여러 정책을 동원했다가 먹히지 않으니 재정으로 틀어막고 있다. 정책이 실패하고 부작용을 빚는 문제를 나랏돈으로 메꾸는 셈이다. 마지막으로 경기가 안 좋다며 사회간접자본(SOC) 투자나 산업계 지원까지 마구잡이로 늘리다 보니 이런 상황에 이르렀다.

-정부는 어려운 경제를 살리자면 마중물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과연 경제 활성화 효과가 있다고 보나.

△내년도 예산 내용을 살펴보면 효율성 측면에서 별로 기대할 게 없다. 정부 지출은 복지와 일자리, 소재·부품·장비산업 육성, 생활 SOC 등 네 가지 분야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하지만 어느 것 하나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운 형편이다. 생활 SOC만 해도 경제에 무슨 도움이 되느냐를 면밀하게 따져 봐야 한다. 그나마 도로를 만들면 낫겠지만 도서관이나 짓고 상하수도 고치는 것만으로는 역부족이다. 대부분의 지역 숙원사업은 경제성이 없어 예비타당성 조사마저 통과하지 못했는데 이를 정치적으로 풀겠다는 것이다. 효율성에 초점을 맞춰 풀어야 하는데 지금은 경제를 정치화하겠다는 구조다. 재정을 자신의 돈으로 생각하고 엉뚱한 데 돈을 잔뜩 푸니 국민 세금으로 선거운동을 벌인다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

박형수 서울시립대 교수는 한국과 같은 소규모 개방경제에서 재정건전성은 경제와 국가운영의 ‘최후의 보루’라면서 건강할 때 재정을 지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오승현기자박형수 서울시립대 교수는 한국과 같은 소규모 개방경제에서 재정건전성은 경제와 국가운영의 ‘최후의 보루’라면서 건강할 때 재정을 지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오승현기자


-그래도 사회안전망 확충이나 소득재분배 차원에서 정부 역할이 필요한 것 아닌가.

△우리 여건상 재분배정책을 더 강화하는 것은 맞지만 문제는 다른 나라에 비해 효과가 크게 떨어진다는 사실이다. 규모도 그렇거니와 정책수단으로 따져도 효과가 낮다. 복지정책도 효율성을 따지지 않고 그냥 지출되면 전달 효과가 떨어지게 마련이다. 예컨대 아동수당만 따져봐도 고소득자일수록 많이 받는다. 도입취지와 현실이 따로 도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실제 정부가 복지정책을 열심히 펼친다고 하지만 효과가 거의 없다. 애초부터 포장만 화려하고 알맹이는 없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중앙정부나 지방자치단체들은 현금복지에 적극 나서고 있다. 불필요한 행정비용을 줄여 오히려 정책효과가 높다는 주장도 나온다.

△정부는 행정비용이 안 들어간다고 둘러대지만 꼭 필요한 곳에 제대로 투입되는지 의문이다. 특히 현금복지가 문제다. 현물은 필요한 곳에 들어가지만 현금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어디에 쓰는지도 모르고 내준다. 청년 구직수당만 봐도 그렇지 않나. 보편복지는 행정비용이 안 들어간다고 주장하지만 지원 대상을 선정하고 관리해 효율성을 높이는 측면은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이를 교묘하게 공무원이 비용을 떼먹는다고 둘러대니 궤변 아니냐. 현금복지는 한 번 풀면 다시 거둬들이기 어렵다. 더욱더 신중해야 하는 이유다. 이제는 지원정책을 체계적으로 점검하고 사후평가를 통해 정책 효과를 극대화함으로써 맞춤형 복지로 바꿔야 할 때다.

-국제통화기금(IMF) 등은 한국에 대해 재정확대 정책을 쓰라고 권고하지 않나. 정부나 여당의 주요 논리이기도 하다.

△IMF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재정 확대를 권고하면서 두 가지 전제조건을 내세운다. 하나는 한국의 국가채무비율이 선진국에 비해 여력이 있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조세부담률이 상대적으로 낮아 증세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세입과 세출을 모두 늘려 경기 침체에 맞대응하라, 적극적으로 해결해보라는 권고다. 다만 재정이 망가지지 않는 범위에서 말이다. 한마디로 세입 확충이라는 전제 아래 재정을 풀라는 것이다. 하지만 정부는 자신들이 원하는 것만 선택적으로 받아들인다. 세출은 늘리겠지만 증세는 선거 때문에 안 된다는 식이다. 증세와 국가채무를 적절히 섞어 정책을 펼치라는 얘기인데 이를 무시하고 세출만 늘리니 안타까운 일이다.

-최근 한 포럼에서 세출증가 폭은 커지는 반면 세입증가 폭은 감소한다며 ‘악어의 입’에 비유하기도 했다. 재정위기에 대한 불안감도 갈수록 높아지고 있는데.


△돈을 풀었는데 경기가 안 살아나고 악순환에 빠지면 재정위기다. 경제가 망가지고 세입이 줄면서 오히려 지출을 더 늘려야 하는 악순환이 닥쳐온다. 무엇보다 조세의 기본기능이 국가재정 조달인데 이를 무시하는 게 큰 문제다. 대놓고 지출만 하겠다고 나서니 답답한 일이다. 지출을 늘리려면 법인세 인상만으로 부족하다며 세수 증대를 추진해야 한다고 역설했지만 이를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세제 개편안도 이런저런 주문사항을 한꺼번에 집어넣어 종합선물세트를 내놓으니 정책효과를 기대하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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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도 세입이 줄어들자 내년에는 지출 구조조정에 나서겠다는데.

△재정 건전성을 지키자면 보다 강력한 지출 구조조정과 효율성 제고를 통해 국민 부담을 크게 늘리지 않고 국가재정을 운영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특히 여러 부처에 흩어져 제대로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는 각종 유사·중복사업을 통폐합하고 정책 우선순위에 입각해 기존 사업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주요 OECD 국가들이 채택했듯이 범부처 차원에서 재정 지출을 점검해 보다 과감히 지출을 억제하는 ‘전략적 지출검토제’를 서둘러 도입해야 한다.

-재정의 규율이 무너졌다는 얘기도 많다.

△통상적으로 예산을 짜면 한두 개는 줄이게 마련이다. 올해 예산안에는 12개 분야가 모두 늘어났다. 재정의 규율이 무너졌다는 얘기다. 재정을 풀더라도 규율체계를 갖추고 크게 망가지지 않도록 풀어야 성과가 나고 영이 서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 최근 예비타당성 조사 면제나 잇따른 추가경정예산안 편성, 국세감면율 제한 등은 재정규율이 약화하고 있다는 명백한 증거다. 재정기강이 완전히 무너졌고 재정 당국이 위기에 몰려 있다. 비록 몸은 편할지 몰라도 재정 당국의 위상이 한마디로 땅에 떨어졌다고 볼 수 있다.

-일찍이 재정 건전화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역설해왔던 것으로 알고 있다.

△2016년에 국가부채가 늘어난다는 경각심을 갖고 조세재정연구원 차원에서 정부에 제안했다. 세출을 늘리려면 어느 정도 세입을 같이 늘리라는 것이다. 그래서 국가채무 비율을 45% 이하로 억제하도록 재무준칙을 도입하는 내용의 재정 건전화법을 마련한 것이다. 보수든 진보든 세출을 늘리려면 어느 정도의 증세를 같이해야 한다는 안전장치였다. 하지만 국회에서 막혀 결국 좌절되고 말았다.

-과도한 세금 부담이 기업 활동을 억누르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상속세도 중소업계에서 계속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데.

△우리가 선진국에 비해 조세 부담률이 높은 편은 아니지만 현 정부 들어 꾸준히 올라가고 있는 것은 문제다. 특히 법인세만 해도 기업규모에 따라 세율을 달리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이러다 보니 쓸데없이 기업을 분사해야 하고 대기업으로 올라갈 중견기업들이 자회사·손자회사를 많이 만드는 부작용을 빚게 된다. 그런 점에서 법인세는 과표구간을 축소하는 방향이 맞다. 소규모 기업만 면제하되 밑의 부담을 높이고 위의 부담을 낮춰가야 한다. 상속세는 일반인들과 관계가 없지만 가업승계에 대해서는 전향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증세문제는 어떤가. 이제는 본격적으로 검토할 때가 됐다는 의견도 있다.

△‘넓은 세원, 낮은 세율’이라는 원칙에 따라 증세 대상을 현재보다 확대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국민의 절반 정도가 한 푼도 안 내고 고소득자만 많이 부담하는 구조다. 그러니 세금 많이 낸다는 불만이 쌓이고 억울한 일도 생기게 마련이다. 밑에도 조금씩 내게 만들어 다 같이 배를 띄우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국가의 혜택을 받아도 명분이 생긴다. 현 정부에서는 증세가 정치적인 측면이 한층 커졌다. 징벌적인 증세만 하겠다고 선언했기 때문에 중산층을 감히 건드리지 못한다. 정부가 중장기적인 로드맵을 제시하면서 그 일환이라고 설득해야 그나마 국민들이 승복한다. 이럴수록 패키지로 묶어야 너도 내고 나도 낸다는 공감을 얻는다. 그런데도 정부는 남이 낸 세금으로 내가 혜택을 본다고 얘기한다. 세금으로 사회에 기부한다고 대놓고 말하는 셈이다. 가장 나쁜 증세 홍보다. 세입은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다. 모름지기 국가지도자란 리스크 관리에 역점을 둬야 하는 법이다. 그래서 이념과 관계없이 중장기 로드맵을 만들어 좌우를 아우르는 큰 합의점을 찾아내 정책을 펼쳐야 한다. 정상범 논설위원 ssang@sedaily.com

He is…

1967년 전남 화순에서 태어나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캘리포니아대(UCLA)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은행을 거쳐 한국조세연구원 재정분석센터장·예산분석센터장·연구기획본부장을 두루 지냈으며 2013년 통계청장으로 임명돼 ‘역대 최연소 통계청장’ 기록을 세웠다. 2015년 한국조세재정연구원장을 맡아 재정 건전화에 대한 소신을 펼치기도 했다. ‘재정 건전화를 위한 국가채무 관리방안’ ‘재정준칙의 도입에 관한 연구’ 등 다수의 논문을 썼다.

정상범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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