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중 투자자금의 피난처로 불리는 단기상품들에 유입되는 자금이 지속적으로 늘고 있다. 대표적 단기상품인 머니마켓펀드(MMF)에 이달에만 10조원이 넘는 자금이 유입됐으며 종합자산관리계좌(CMA) 잔액도 이달 들어 2조원 이상 늘었다. 시중 유동성이 풍부해진 상황에서 미중 무역협상 타결에 대한 불확실성이 지속하는데다 시중 금리가 상승하는 등 투자자들이 방향성을 확신하지 못하면서 단기상품에 자금을 잠시 맡겨 두는 것으로 풀이된다.
19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이달 들어 지난 15일까지 국내 MMF 설정액은 지난달 말보다 10조1,861억원 늘어난 125조6,250억원에 달한 것으로 집계됐다. 지난달에도 MMF 설정액은 13조2,435억원이 늘었으니 두 달간 23조원 이상 급증한 셈이다. 지난달 금리 인하로 타격을 입을 것으로 예상했던 CMA 잔액도 15일 기준 49조1,871억원으로 이달 초보다 2조3,000억여원 증가해 다시 늘어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MMF는 수시입출금식 단기 채권형 펀드로 증권사가 고객의 돈을 모아 펀드를 구성한 뒤 이를 채권과 기업어음(CP) 등에 투자하는 상품이며 CMA는 증권사가 고객의 자금을 받아 CP나 국공채·양도성예금증서(CD)에 투자해 수익금을 돌려주는 수시입출금 통장이다. 단 하루만 맡겨도 이자를 돌려주는데다 예치하기 편하고 안정적인 수익률을 기대할 수 있어 단기 부동자금을 흡수하는 대표적인 상품으로 꼽힌다.
아울러 국공채나 지방채 등 만기가 길고 상대적으로 안전한 채권을 최소 1일에서 최장 1년 정도의 단기상품으로 만든 환매조건부채권(RP)으로 유입되는 자금도 늘고 있다. 지난달 RP 매매잔액은 74조6,000억원으로 전달보다 5조5,000억원가량 늘었으며 이달 들어서도 이와 같은 추세가 계속될 것으로 금융투자업계는 보고 있다.
단기 금융투자상품에 돈이 몰리는 것은 우선 시중 유동성이 풍부해졌기 때문이다. 실제로 9월 시중 통화량(M2)은 2,852조원으로 전달보다 2,833조원 늘었다. 윤지호 이베스트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MMF나 CMA 등에 자금이 유입되는 것은 결국 시중의 부동 자금이 늘어났기 때문이라고 봐야 하지 않겠느냐”고 설명했다.
유동성은 풍부해진 반면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하면서 투자자들이 단기상품에 자금을 잠시 보관해 두고 있다는 분석이다. 미중 무역협상이 여전히 안갯속을 걷고 있는 만큼 증시에 투자하기는 껄끄럽고 기준금리 인하 후 채권 가격도 조정을 받으면서 이탈한 채권 투자 자금도 일부 단기상품으로 잠시 자리를 옮겼을 것이라는 설명도 나온다. 실제로 증시 대기 자금인 고객예탁금은 지난달 초 29조원을 넘기며 반짝 증가했지만 이달 들어서는 24조~26조원대에서 유지되고 있으며 하루 평균 채권거래대금도 이달 들어 11조원대로 떨어졌다. 자산운용사의 한 관계자는 “뚜렷한 방향성을 찾기 어려웠기 때문”이라며 “거시경제나 금융시장의 불확실성이 큰 만큼 보수적으로 자금 운용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단기상품에 자금이 몰리는 경향은 불확실성이 어느 정도 걷히기 전까지는 계속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증권가에서는 결국 미중 무역협상의 타결 여부와 방식·내용이 앞으로의 자금 동향에 가장 중요한 변수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조용준 하나금융투자 리서치센터장은 “미중 무역협상이 ‘스몰딜’이 될지 관세 철회를 포함한 ‘미드딜’이 될지가 중요하다”며 “연말 한국 기업들의 수출 회복에 따른 실적 회복세가 가시화되면 이와 맞물려 자금 동향에도 변화가 생길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