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무역전쟁으로 중국에서 조립해 미국으로 들여오는 아이폰 등에 관세 폭탄을 맞게 된 애플이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환심 사기에 나섰다. 연내 미중 1단계 무역합의가 어려워질 조짐을 보이자 국내 투자 및 일자리 창출을 내세워 애플 제품의 관세 면제를 받아 내기 위해서다. 이를 위해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는 20일(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을 텍사스주 오스틴 애플 공장으로 초청해 신사옥 착공 및 고용 확대 계획을 발표했고 트럼프 대통령은 관세 면제를 시사하며 화답했다.
이날 발표에 따르면 애플은 오스틴에 10억달러(약 1조1,785억원)를 투자해 오는 2022년까지 27만9,000㎡ 규모의 신사옥을 건립할 예정이다. 신사옥 개소 초기에는 직원 5,000명 고용으로 시작해 단계적으로 1만5,000명까지 확대된다.
앞서 애플은 지난해 초 향후 5년간 미국에 3,500억달러를 투자하고 전국적으로 2만명을 추가 고용해 미국 경제에 기여한다는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또 이 계획의 일환으로 지난해 12월 엔지니어링과 연구개발(R&D), 재무·판매, 컴퓨터 지원 부문 등의 인력이 상주할 신사옥을 짓겠다고 했다. 당시 애플은 시애틀·샌디에이고·컬버시티 등 다른 도시 3곳에도 새 사무소를 열고 각각 1,000명 이상의 인력을 고용하겠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과 쿡 CEO의 공개 회동은 이날이 처음은 아니지만 미중 무역전쟁으로 미국이 중국산 제품에 대한 관세장벽을 높이면서 애플이 중국에서 들여오는 부품 및 제품들에 대한 관세 부담이 날로 커지는 가운데 이뤄진 것이어서 관심을 모았다.
트럼프 행정부는 예고한 대로 다음달 15일부터 1,560억달러 규모의 중국 수입품에 15%의 추가 관세 부과를 강행할 뜻을 고수하고 있으며 여기에는 중국에서 생산돼 미국으로 들어오는 아이폰도 포함된다. 앞서 애플은 맥프로에 들어가는 15가지 부품에 대한 관세 면제를 요청했지만 5개 부품에 대해서는 거절당했다. 또 중국에서 수입하는 애플워치와 아이맥, 아이폰 수리부품 등 11건의 관세 면제 요구도 계류돼 있다. 미 뉴욕타임스(NYT)는 “미중 무역전쟁이 애플 사업을 극심하게 위협하고 있다”면서 “애플은 이미 일부 제품의 관세를 내고 있으며 다음달 새 관세가 부과되면 더 많은 돈을 지불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쿡 CEO는 지난 8월 트럼프 대통령과 만찬을 함께하거나 직접 통화를 하며 트럼프 대통령에게 애플 제품 및 부품의 관세 면제를 요청해왔고 9월에는 맥프로 조립에 필요한 중국산 부품 15개 중 10개에 대한 관세 면제 조치를 받아내는 데 성공했다. 이에 따라 맥프로를 중국에서 조립하려던 계획을 철회하고 오스틴에서 계속 생산하기로 했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도 무관세인 삼성 스마트폰과 달리 애플이 관세를 내는 것은 불공평하다고 지적한 바 있어 이날 애플 공장을 방문한 자리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애플에 대한 관세 면제를 약속할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돼왔다. 삼성은 미국 수출용 스마트폰 대부분을 인도와 베트남에서 생산하는데 이 제품들은 세계무역기구(WTO) 정보기술협정(ITA)에 따라 무관세이나 아이폰은 미중 무역전쟁으로 인해 관세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은 애플의 신사옥 투자 소식이 전해지자 관세 면제로 화답할 뜻임을 내비쳤다. 그는 오스틴 방문을 앞두고 기자들과 만나 “애플이 거대한 돈을 투자에 쏟아붓는다”면서 “쿡에게 우리 행정부는 애플이 여기(미국)에서 조립하는 것을 보고 싶다, 그런 방식으로 당신은 관세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조언했다”고 말했다.
오스틴에서 쿡 CEO와 공장을 둘러본 트럼프 대통령은 애플의 최대 라이벌인 삼성전자를 또다시 언급하며 애플 제품에 대한 관세 면제의 뜻을 더욱 강하게 드러냈다. 그는 쿡 CEO와 나란히 서서 “우리의 문제는 삼성이다. 삼성은 훌륭한 회사지만 애플의 경쟁자”라며 “애플을 삼성과 어느 정도 비슷한 기준으로 처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애플의 관세 부담이 나날이 늘어가는 반면 삼성이 중국 휴대폰 생산라인을 완전히 철수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트럼프 대통령과 쿡 CEO 간 밀월이 더욱 강해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삼성전자가 스마트폰 생산시설을 중국 밖으로 이전하기로 했다”면서 “장비가 (중국 아닌) 어느 곳에서 생산되든 그들은 중국산 수입품 관세에 적용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