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을 극복한 조선시대의 명재상이자 민간설화 ‘오성과 한음’으로 유명한 오성부원군 이항복(1556~1618년)의 초상화(사진)가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됐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이항복의 15대 종손 이근형씨로부터 종가에서 400년 이상 간직해온 이항복의 초상화를 비롯해 공신(功臣)으로 임명될 때 받은 문서인 ‘호성공신 교서’와 친필 ‘천자문’ 등 17점을 전날 기증받았다고 21일 밝혔다.
이항복은 23세 때부터 교류한 정치적 동료 한음 이덕형(1561~1613년)과 관련된 해학적 일화가 유명하다. 이항복은 25세인 1580년 알성문과에 급제해 최고 관직인 영의정까지 오르며 39년간 관직 생활을 했다. 오늘날의 대통령비서실장 격인 정3품 도승지로 재직할 당시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선조를 의주로 피신시켰고 명나라에 원병을 청하기도 했다. 다섯 차례 병조판서를 지내며 국방과 외교에서 공적을 세웠다. 이에 이항복은 다섯 차례 공신에 임명됐다.
이번에 기증된 ‘호성공신 교서’는 1604년 선조 임금에게 받은 것으로 이항복의 업적이 상세하게 기록돼 있다. 현존하는 유일한 호성공신 1등 교서로 보물급 문화재로 평가된다. ‘초상화’는 공신에게 주는 혜택으로 나라에서 하사한 것이다. 가문의 영광이기에 후손들이 귀히 보존하다 낡으면 베껴 그린 후모본(後模本)으로 계승했다. 이항복 초상화 2점은 1604년에 그린 호성공신 초상과 1613년에 받은 위성공신 초상을 18세기에 모사해 보존한 것이다. 두 점 모두 원본인 17세기 초상화의 특징을 갖고 있지만 얼굴이나 복식에 명암을 표현하는 등 18세기 초상화의 특징도 반영됐다. 정양모 전 국립중앙박물관장은 “두 초상화 모두 후모본이나 이항복의 국란 극복 기개와 영웅적 면모가 잘 표현된 수작”이라고 평했다.
‘천자문’은 52세의 이항복이 여섯 살 손자를 위해 직접 적은 것이다. 전해지는 손으로 쓴 천자문 중에서 가장 시기가 이른 것이라 가치가 높다. 이항복 관련 유물 6점과 함께 증손 이세필(1642~1718년) 초상화 1점, 다른 후손의 교지 등 문서류 5점, 초상화 함과 보자기 5점이 함께 기증됐다.
경주 이씨 백사공파 14대 종부 조병희씨는 “백사 할아버지 초상화를 지금까지 모시고 있다가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하니 마음이 편안하고 좋다. 박물관에서 널리 알려주시기 바란다”고 소감을 밝혔다. 국립중앙박물관은 내년 3~7월 상설전시실 서화관에서 이항복 종가 기증 기념 전시를 개최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