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수능이 전 국민의 관심 속에 치러졌다. 앞으로 수시 비율이 줄어들 가능성이 있는데다 수능 고득점은 정시에서 일류대 합격을 보장하기 때문에 그 중요성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특히 학생부종합전형(학종)의 스펙 쌓기가 사회적 문제로 대두하면서 입시에서 공정성을 담보하는 방법은 수능밖에 없다는 주장도 설득력 있게 나오고 있다. 어떻든 수능은 외국인들에게는 설명이 어려운 우리만의 독특한 관행임은 틀림없다.
그러나 세계에서 벌어지는 변화를 들여다보면 우리는 수시·정시 비율 같은 구시대의 소모적 논쟁을 벌일 만큼 한가하지 않다. 비록 미중 무역갈등, 각국 시위 등 정치적 이슈에 잠시 가려져 있기는 하지만 지금 세계는 4차 산업혁명의 한가운데 놓여 있다. 기계의 지능이 인간을 대체하고 모든 인간과 사물이 연결되는 4차 산업혁명은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사고와 행동양식을 요구한다. 이러한 혁명적 변화에 대응하려면 규제 혁파, 산업체질 혁신 등 바꿔야 할 부문이 많다.
가장 시급한 분야는 교육이다. 사람이 바뀌지 않으면 변화는 기약하기 어렵다. 2차 세계대전 패전국이었던 독일과 일본이 폐허를 딛고 20년도 걸리지 않아 기적적 부흥을 이룬 것은 전쟁으로 모두 파괴됐어도 ‘사람’은 남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은 4차 산업혁명을 이끌 인재를 기를 수 있는, 교육에서의 혁명적 변화를 시작할 시점이다.
지금까지의 교육은 평균주의의 산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는 지능지수(IQ)를 잣대로 놓고 그 숫자의 높고 낮음으로 개인의 능력을 재단해왔다. 그러나 수능 같은 시험으로는 측정이 곤란한 감성지수(EQ)가 IQ보다 개인의 성공에서 더 중요하다는 것이 정설이다. 또 다중지능이론과 같이 인간 지능에는 여러 면이 있으며 IQ는 그중 극히 일부라는 이론이 받아들여지고 있다.
19세기부터 시작된 산업화 시기에 각국은 자국 인력의 효용성을 최대로 높이기 위해 평균주의에 입각한 획일화를 시작했다. 당시는 개인의 특장점을 부각할 수단이 없었기에 그것이 최선의 방법이었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살고 있으며 인공지능·빅데이터처럼 개인의 특성을 고려할 수 있는 수단을 가지고 있다. 이 시대에 성공적으로 적응하려면 협업 능력, 감성처럼 숫자로 평균화해 표현하기 어려운, 수능으로는 측정 불가능한 요소들이 더 중요하다. 국·영·수를 조금씩 잘하는 인재보다 어느 한 분야에서 뛰어난 인재가 필요하다.
세계는 지금 새로운 형태의 교육기관들이 넘쳐난다. 강의실도 교수도 없이 세계를 돌며 학습하는 ‘미네르바스쿨’, 학생들끼리 프로젝트를 통해 프로그래밍을 배우는 ‘에꼴42’ 등 혁신적 대학들의 인기가 기존 일류대학들을 능가한다. 졸업생들의 평판도 기대를 뛰어넘는다. 우리 교육도 새로운 모습으로 바뀌어야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대비할 인재를 기를 수 있다. 그러려면 우선 입시가 바뀌어야 한다. 대학입시가 우리 교육 문제의 정점에 있기 때문이다.
일류대학 입학이 출세의 지름길이라고 믿는 학부모들은 아이들이 유치원에 들어가기도 전부터 사교육으로 내몬다. 아이들은 학원에서 덧셈과 뺄셈을 지겹도록 반복하며 수학에 일찌감치 흥미를 잃어버린다. 대학 서열화도 획일적 입시제도에 기인하는 바가 크다.
우리는 지금까지 대학입시에 대해 수없이 실험을 해봤지만 아직 해보지 않은 것이 있다. 바로 대학이 입시에서 자율권을 가지는 것이다. 우리는 유례없는 출산율 감소를 경험하고 있다. 몇 년 안에는 현재 대학의 30%가 문을 닫아야 한다. 대학이 살아남고 서열화를 깨기 위해서는 잘하는 분야에 집중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자율적으로 학생을 뽑고 새로운 방법으로 교육해야 한다. 정부는 그 과정에서 위법·탈법이 있는지 감시자로서의 역할만 하면 된다. 인구절벽이 시작되는 지금이야말로 대학입시를 획기적으로 바꿀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