톨스토이의 소설 ‘안나 카레리나’의 유명한 첫 문장처럼 불행의 이유는 제각각이지만, 가정을 불화에 빠뜨리기 쉬운 상황은 분명 존재한다. 두 영화 ‘결혼 이야기’와 ‘러브 앳’에서 결혼생활의 빛이 바래가는 과정은 엇비슷하다. 결혼 후 재능을 발휘하며 성공을 거듭하는 남자과 그의 그늘에 가려져 점점 자아와 자존감을 잃어가는 여자. 하지만 국적이 다른 이 두 영화는 서로 다른 방식과 맛으로 자아와 사랑을 찾아가는 부부의 모습을 그려낸다. ‘결혼 이야기’가 쌉싸름한 다크 초콜릿과 같은 미국식 이혼 법정 드라마라면, ‘러브 앳’은 달콤한 마카롱과 같은 프랑스식 판타지 로맨스다.
“세심한 배려로 주변인들을 자기편으로 만든다. 뛰어난 능력을 지닌 연극 연출자다” “배우로서 뛰어난 자질을 갖췄다. 남의 말에 귀 기울이며 맞장구를 잘 쳐준다“
기분 좋을법한 칭찬으로 시작되는 첫 장면. 하지만 이 말이 이혼 조정관을 앞에 둔 부부가 서로의 장점을 이야기한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 순간 영화는 냉랭한 기운을 뿜어낸다. 아니나 다를까, 부인인 니콜은 장점을 읽자마자 ‘필요 없다’며 자리를 박차고 나가며 이 영화가 ‘이혼 이야기’임을 단도직입적으로 알려 준다. 이혼 앞에서도 관대한 찰리가 안쓰러워질 즈음 관객 앞에 니콜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결혼 전 스타였지만 결혼 후 연극 연출가인 남편의 그늘에 가려져 피폐해져 가는 이야기 말이다. 영화는 이때부터 이혼 법정 드라마가 된다. 니콜과 찰리, 이들이 각각 선임한 최고의 이혼 전문 변호사들까지 한치도 물러서지 않는 변론은 스크루볼 코미디(1930년대 유행했던 코믹극의 일종으로 남녀가 빠르게 주고받는 대사가 특징)‘를 연상하게 한다. 부부의 밑바닥까지 드러나는 이혼 과정을 통해 영화는 결혼과 부부 사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일깨운다. 이혼 후 니콜이 풀어진 찰리의 운동화 끈을 묶어 주는 장면은 이 작품이 전하는 메시지다. 결혼이라는 제도에서 벗어나면 상대에게 관대해질 수 있다는 아이러니 말이다. 봉준호 감독은 올해 가장 마음에 드는 영화로 이 영화를 꼽았다. 27일 메가박스 개봉, 12월 6일 넷플릭스 방송.
‘러브 앳’은 ‘러브 액츄얼리’나 ‘어바웃 타임’을 등을 떠올릴만한 로맨틱 코미다.라파엘(프랑수아 시빌)과 올리비아(조세핀 자피)는 고등학교 시절 첫눈에 반해 사랑하고 결혼한다. 결혼 후 베스트셀러 작가로 유명해지는 라파엘과 달리 피아니스트를 꿈꿨던 올리비아는 ‘라파엘의 부인’으로 머물고, 라파엘이 두 사람의 정서적 유대는 약해진다. 올리비아의 결혼에 대한 회의감과 자괴감이 극에 달할 때쯤, 올리비아와 크게 싸우고 만취한 라파엘이 다음날 깨어나자 믿을 수 없는 현실이 눈 앞에 펼쳐진다. 베스트셀러 작가였던 자신은 중학교 문학교사가 돼 있고, 아내였던 올리비아는 세계적인 피아니스트가 돼 자신을 몰라본다. 현실 세계와 평행선 상에 놓인 다른 세계로 들어간 것이다. 상황이 역전된 라파엘이 그제야 아내를 이해하고, 다시 그녀의 사랑을 얻기 위해 분투하는 전형적인 ’로코의 공식‘을 따르는 영화다. 2000년대 초 겨울이면 찾아왔던 ’로코‘는 이제는 희귀한 장르가 됐지만, ’러브 앳‘ 하나만으로도 올 겨울은 충분히 ‘달달’하다. 27일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