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총선의 명운이 걸린 공직선거법 개정안이 27일 본회의 자동 부의를 앞두자 여야의 세몰이 싸움이 가열되고 있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와 보수통합·리더십 문제로 각을 세우던 유승민 바른미래당 의원과 홍준표 전 한국당 대표가 일제히 황 대표의 단식 현장을 찾아 “선거법을 함께 막자”며 연대의 손을 내밀었다. 범여권이 추진하는 선거법의 통과를 막을 수 없다면 최대한 보수진영에 유리한 안을 관철하기 위해 분열했던 잠룡들이 뭉친 것이다. 반면 더불어민주당은 다음달 17일을 데드라인으로 정하고 “일주일간 집중적인 협상을 해보자”며 다음달 초에 법 통과를 밀어붙일 가능성을 열어뒀다.
유 의원은 26일 청와대 앞에서 단식 7일차를 맞은 황 대표를 찾았다. 유 의원은 바른미래당 비당권파 ‘변화와 혁신을 위한 비상행동’의 리더다. 유 의원은 “선거법과 공수처법에 문제의식을 갖고 국회의원들이 최선을 다해 막아야 하는데 건강을 해치시는 것 같아 걱정했다”고 말했다. 유 의원은 황 대표와의 만남 직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비공개 변혁 회의를 열고 “민주당과 2중대 정당들이 획책하면 필리버스터(합법적 의사진행 방해)를 해서라도 끝까지 막아보겠다”고 강조했다.
황 대표와 대립각을 세우던 홍 전 대표도 이날 “지금 여러분들(한국당 의원)의 무대책 행보는 마치 탄핵정국 당시 박근혜 전 대통령을 무방비로 방치해 비극을 초래한 것과 같은 모습”이라는 글을 본인의 페이스북에 띄우며 단결을 주문했다. 이어 “1986년 6월 청주지검에서 헤어진 후 33년 만에 단식장에서 처음 만나본 황 대표는 참으로 처절했다”며 “(의원들이) 합리적인 해결책을 찾으라”고 촉구했다. 선거법을 저지할 묘안을 모색하라는 당부다. 전날 홍 전 대표는 단식 현장을 찾아 “공수처법안을 내주고 선거법을 막자”고 제안한 바 있다.
선거법 개정안의 파괴력이 보수진영의 잠룡들을 전선에 모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민주평화당 등이 현행 253석인 지역구 의석을 225~250석으로 대폭 줄이고 정당 지지율에 따라 뽑는 비례대표를 50~75석으로 늘리는 논의를 하고 있다. 민주당(129석)을 포함한 범여권의 표가 150석을 넘어 법을 힘으로 통과(148석, 재적 295석 기준)시킬 수 있다. 한국당(108석)과 바른미래당 비당권파(15석)가 막을 수 없다면 최대한 이익을 관철시킬 협상을 해야 한다. 새 선거법에서 한국당은 지역구를, 바른미래당 변혁은 다소 높은 수도권 지지율로 비례대표 의석을 많이 가져가는 구조도 가능하다.
한국당은 ‘단일대오’를 형성하고 곧바로 행동에 돌입했다. 이날 한국당 소속 여상규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장이 문 의장에게 27일 선거법 개정안의 본회의 부의에 대한 연기를 요청하는 공문을 공식 발송했다. 공문에서 여 의원은 “공직선거법은 중대한 법률적 하자가 있다”며 “부의해도 법적 다툼은 물론 헌법재판소 권한쟁의심판에 청구돼 효력을 상실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했다. 한국당의 주장인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지정 자체가 불법 사임 및 보임으로 인한 것임을 재강조한 것이다.
보수야권의 예상외의 강공에 여당은 겉으로는 “협의하자”는 입장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시한은 단 일주일로 명시했다. 이인영 민주당 원내대표는 이날 오전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앞으로 일주일간 국회의 모든 지도자가 고도의 정치력을 발휘해야 한다”며 “모든 야당에 일주일간의 집중적인 협상을 제안한다”고 밝혔다.
일주일은 12월3일. 또 다른 패스트트랙 법안인 고위공직자수사처법이 본회의에 오르는 시간이다. 그 전에 선거법과 관련한 합의에 이르지 못하면 선거법과 공수처를 통으로 밀어붙이겠다는 의도를 숨기지 않았다. 이해찬 민주당 대표가 전날 제시한 협상 시한은 다음달 17일이다. 보수진영은 공수처법 역시 반대하고 있다. 동시 통과를 범여권이 밀어붙일 경우 ‘의원직 총사퇴’ ‘단체 단식’ 등 최악의 수를 고려하고 있다. 이 원내대표는 이날 오후 여야 3당 원내대표 회동에서도 이 같은 입장에 대해 “특별하게 할 이야기가 없다”고 답했다. /구경우·방진혁기자 bluesquare@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