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면 요양병원에 입원하지 않은 암환자는 진료비의 5%만 내면 돼 수백만~수천만원 하는 건보재정 부담분까지 내기 부담스러운 환자들이 요양병원을 집단 퇴원하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
암환자단체인 한국암환자권익협의회는 최근 정부서울청사 정문에서 관련제도 개선을 촉구하는 집회를 열었다. 협의회에 따르면 요양병원 입원 암환자들이 대형병원에서 외래로 항암·방사선치료 등을 받을 때 요양병원 의사가 발행한 진료의뢰서를 받아 제출하도록 한 개정 건강보험법 시행규칙이 지난 1일부터 시행되자 곳곳에서 이런 문제가 불거지고 있다. 대형병원에서 암환자의 주민등록번호를 치면 요양병원 입원자인지 알 수 있게 조회 시스템도 보완됐다.
환자가 입원한 요양병원이 항암·방사선치료를 한 대형병원을 대신해 건강보험재정 부담분 진료비 심사청구를 하도록 돼 있기 때문이다. 청구만 대행하는데 해당 진료비가 요양병원 수익으로 잡혀 세금까지 부담해야 하고 청구한 진료비가 삭감되면 요양병원이 책임을 떠안아야 한다.
김성주 협의회 대표는 “요양병원 입원 암환자가 상급종합병원에서 1회당 40만원인 방사선치료를 30회 받은 경우 건강보험법령은 총진료비 1,200만원 중 본인부담분 60만원(5%)만 내도록 하는데 (건강보험 당국에 지급 신청해 수개월 뒤 받게 되는) 건강보험재정 부담분 1,140만원(95%)을 환자에게 대리 선납하고 납부영수증을 요양병원에 제출해 정산받으라는 횡포를 부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김 대표는 “암환자 진료비의 95%는 암환자를 치료한 상급종합병원 등이 요양병원과 협의해 정산하는 것이 원칙인데 복잡한 진료비 정산을 피하려고 의료약자인 암환자에게 부담을 떠넘기고 있다”며 “암에 걸려 생업을 포기한 경우도 많은데 ‘돈 없으면 집에서 통원하라’고 강요하는 것은 ‘무전퇴원, 유전입원’에 다름 아니다”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협의회는 “이런 부조리를 방치한다면 지방에서 상경해 대형병원에서 항암·방사선치료를 받아야 하는 암환자들은 수십일간 모텔에서 지내거나 매일 그 힘든 항암·방사선치료를 받기 위해 서울과 지방을 오가야 할 판”이라며 신속한 제도개선을 촉구했다.
상급종합병원에서 수술받은 암환자들의 평균 입원일수는 위암 4.3일, 유방암 7.6일에 불과하다. 그래서 퇴원 후 요양병원에 입원한 상태에서 외래로 항암·방사선치료 등을 받는 경우가 많다.
반면 대형병원들은 외래진료를 받는 암환자 가운데 요양병원 입원자가 많아 본인부담진료비만 받을 경우 전국에 산재한 요양병원들을 경유해 나머지 95%를 받는 데 들어가는 행정부담이 상당해 어쩔 수 없다고 항변한다. 보건복지부도 대형병원의 행정처리가 불법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이중규 복지부 보험급여과장은 “관련 고시를 고쳐 암환자에 한해 외래진료를 한 대형병원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진료비의 95% 지급 심사를 직접 청구하도록 이른 시일 안에 개선할 계획”이라며 “입원한 암환자가 대형병원에서 외래진료를 받는 날에 대해서는 요양병원 일당(日當) 정액수가를 깎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요양병원은 진료량에 관계없이 일당 정액을 보상하는 수가 체계를 가져 입원 상태에서 다른 병원 외래진료를 광범위하게 허용할 경우 의료 이용의 중복이 발생한다. 입원 중 다른 병원에서 진료받는 건수의 67%가 요양병원 입원환자에게서 발생한다. /임웅재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