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희상 국회의장을 만나보니 영어로 원 플러스 원(1+1)이라는 말을 하더라. 들을 때는 몰랐는데 생각해보니 어처구니가 없고 어처구니가 없다. 국회의장 문희상은 그런 소리를 집어치우라고 분명히 하겠다. 나는 무엇으로 어떻게 한다 해도, 일본한테 사죄를 받아야 한다. 명예를 회복해야 한다.”(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
일제 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배상문제 해결방안으로 ‘문희상안’이 떠오른 가운데 시민사회에서는 연일 반대의 목소리가 크다. 경색된 한일 관계를 풀 수 있는 현실적인 방안이라는 의견과 일본에 면죄부를 준다는 의견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위안부 피해 할머니까지 직접 반대의 목소리를 높이면서 해법 찾기에 난항을 겪을 전망이다.
7일 시민사회단체에 따르면 시민단체들이 최근 집회 및 정책 토론회를 연일 개최하며 문희상안의 폐기를 촉구하고 있다. 아베규탄시민행동은 지난 5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강제동원 피해자를 지워버리고 아베에게 면죄부를 주는 문희상안을 즉각 중단하라”며 아베 신조 일본 총리 사진에 모형 돈을 뿌리는 퍼포먼스를 벌였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정의기억연대 등은 지난 6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정책토론회를 열고 전문가들이 문희상안의 문제를 쏟아냈다. 문희상 국회의장이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법안을 다음주 중 발의할 것으로 알려지면서 시민단체들이 반대 여론을 공론화하는 데 박차를 가하는 모양새다.
◇문희상안이 뭐길래
문희상안이란 한일 양국 기업과 국민(1+1+α)이 자발적으로 낸 성금으로 ‘기억인권재단’을 설립해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위자료 또는 위로금을 지급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문 의장이 지난달 도쿄 와세다대학교에서 ‘제2의 김대중-오부치 선언, 문재인-아베 선언을 기대합니다’라는 주제로 특강할 당시 제안했다.
문희상 국회의장실 측은 최근 설명회에서 문희상안의 3원칙으로 △강제징용 문제의 근본적이고 포괄적인 해소 △재단의 위자료 지급을 민사소송법상의 ‘화해’로 간주한 대위변제 △한일청구권협정 관련 피해자들의 배상 문제 시한을 설정해 일괄적으로 해결 등을 꼽았다.
문 의장 측은 “강제징용 피해를 실질적으로 보상하고 최근의 한·일 관계를 풀 수 있는 가장 현실적 방안”이라며 이 같은 내용을 담은 법안을 다음주 발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시민단체 왜 반대할까
문 의장의 취지와 달리 시민단체에서는 문희상안이 오히려 갈등을 증폭시키는 안이라는 입장이다. 가해자인 일본 정부와 전범 기업이 강제징용한 데 사죄하기는커녕 인정조차 하지 않는 상황에서 한국에서 이같은 안을 제시하는 게 면죄부를 준다고 보기 때문이다.
나아가 문희상안에 따라 재단에서 위로금을 수령한 경우 대일 청구권은 법적으로 소멸된다. 일본 기업에 자발적으로 기부금을 내도록 강제할 수 없는 상황에서 결국 기부에 참여한 한국 기업의 돈으로 일본의 법적 책임이 소멸될 가능성이 높다.
민변 소속 송기호 변호사는 “문희상안이 독일을 참고했다고 하나 독일은 별도의 청구권 실현이 불가능하도록 규정한 데 비해 문희상안은 재단 기금 외에 소송을 명시적으로 차단하지 않아 일본 기업 입장에서 자발적으로 기금에 참여할 이유를 느끼지 못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당장 문희상안이 적용될 대상에도 논란이 예상된다. 문희상 국회의장실은 법안이 적용될 피해자로 강제징용 피해보상 관련한 소송이 진행 중인 피해자와 소를 제기할 예정인 피해자 등 1,500명으로 추정하고 있다. 시민단체에서 소송 당사자를 넘어 피해자 전체를 포함한 안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다. 또 고용 주체가 일본 정부인 군인, 군속 피해자, 국내 미진출한 일본 기업의 피해자 등도 위로금을 받을 수 없어 피해자 간 갈등이 예상된다.
김민철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위원은 “전체 피해자를 고려하지 않고 일부만 갖고 한다면 피해자의 불만은 더 증폭될 것”이라며 “갈등을 증폭시키고 분열시키는 문제”라고 꼬집었다.
◇정치권 관심은 글쎄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연일 목소리를 높이고 있지만 정작 법안을 논의할 정치권은 크게 관심을 갖지 않는 모습이다. 지난 6일 국회에서 열린 토론회는 강창일·박지원·장병완·천정배·최경환 의원이 공동 주최했지만 토론회에 참석한 의원은 장 의원에 그쳤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이용수(92) 할머니가 2시간 넘게 진행된 토론회 자리를 지킨 것과 대조적이다.
이 할머니는 “저는 이제 시간이 없다. 나이 구십 넘어서 이렇게 오기도 힘들고 활동하기도 힘들다”며 “저뿐만 아니고 피해자들이 다 그렇다. (일본의) 사죄를 받아야 명예 회복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