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정시 확대 방침에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재수생이 증가할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대학입시 공정성을 확보하겠다는 정부의 정책이 시험 점수에 목매는 ‘수능 낭인’을 양산해 공교육 정상화를 위협하는 원인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된다.
9일 사교육업체 유웨이는 626명의 고등학교 3학년 및 재수생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를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내년 수능 재도전을 염두에 두고 있다면 정부의 정시 확대 방침이나 내년 정시 정원 증가가 영향을 미쳤냐는 질문에 61.7%의 수험생이 ‘그렇다’고 응답했다. 지난달 28일 교육부는 2023학년도까지 서울 소재 16개 대학의 정시전형 선발비율을 40% 이상으로 늘릴 것을 권고하는 대입 정책을 발표했는데 올해 수험생들의 재수 결정에도 영향을 미친 것이다. 이만기 유웨이 교육평가연구소장은 “정부의 정시 수능 전형 확대 방침과 맞물려 수험생들은 재수에 대한 부담을 크게 느끼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수험생들의 재수 결심이 놀라운 이유는 다음 해 수능이 올해 시험과는 다른 교육과정에 기반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내년 2021학년도 수능은 올해 시험인 2020학년도 수능과 달리 2015 교육과정을 바탕으로 만들어진다. 교육과정이 바뀌면 국어와 수학 등 과목별로 시험 범위가 달라지기 때문에 수험생 입장에서는 혼란이 발생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60%가 넘는 수험생들이 재수를 염두에 두고 있는 점은 특이하다는 게 사교육 업계의 평가다. 이 소장은 “교육과정 개편으로 수능 범위가 바뀌는 전 해의 일반적인 양상과는 달리 하향·안전 지원 의사가 매우 적었다”고 분석했다.
내년 수능을 준비하는 재수생들이 많아지는 조짐은 교육현장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11월 14일 수능이 끝난 시점부터 내년 초 개강하는 재수학원 모집을 시작한 강남 학원들은 지난주 수능점수 발표를 기점으로 다시 원생 모집에 탄력이 붙었다는 설명이다. 사교육업체 관계자는 “내년 1월 개강하는 2021학년도 수능 준비반 1차 모집이 마감된 가운데 문의가 많아 2차 모집을 준비 중”이라며 “내년부터 정시 비중이 소폭이라도 오르는 것이 수험생과 학부모들에게 영향을 많이 미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재수생 증가가 현실화될 경우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사태를 계기로 정시 비중 확대를 추진한 정부에 대한 비판은 거세질 수 있다. 한 번의 시험에 모든 것이 결정되는 수능을 다시 보기 위해 재수를 결심하는 수험생들이 늘어나면 사교육 시장이 커져 공교육 정상화에 큰 해가 되기 때문이다. 권정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위원장은 “정시 확대 방침으로 강남 집값과 사교육 주가가 치솟고 있다”며 “정시 확대를 결정한 것은 안 그래도 기울어진 운동장을 더 기울어지게 하는 것으로 교육 불평등을 심화시킨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