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제약사들이 미래 먹거리를 찾기 위해 인수합병(M&A)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질병의 근본 원인을 개선하는 유전자치료제 등 기존 의약품의 문법을 흔드는 첨단바이오의약품이 새로 떠오르고 있는 만큼 관련 노하우 전체를 장악하기 위해서다.
9일 제약바이오업계에 따르면 글로벌 제약사 노바티스는 최근 미국 바이오벤처 ‘더 메디신스 컴퍼니’를 97억달러(약 11조4,000억원)에 인수했다. 메디신스는 현재 혈중 저밀도지단백(LDL)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춰주는 신약 ‘인클리시란’을 개발하고 있는데, 이 약은 유전자 발현 자체를 억제하는 RNA(리보핵산) 간섭 방법으로 혈중 LDL 수치를 떨어뜨린다. 지난해 미국 식품의약국(FDA)에서 허가한 온파트로가 세계 첫 RNA 간섭 치료제다. 메디신스는 올해 안에 미국에서 이 약의 신약 승인을 신청할 계획이다.
노바티스는 이에 앞서 지난해 유전자치료제 회사 아벡시스를 87억 달러(약 10조4,000억원)에 인수했다. 아벡시스는 척수성근위축증(SMA) 유전자 치료제 ‘졸젠스마’의 원개발사인데, 이 약은 아데노바이러스벡터(AAV)라는 기술을 사용해 결핍된 유전자를 채워넣어 병을 한 번에 치료할 수 있다. 1회 투약에 25억원이 필요한 세상에서 가장 비싼 약, 졸젠스마는 지난 5월 FDA 품목허가를 받았다.
글로벌 제약사의 M&A는 이 뿐만이 아니다. 올 초 글로벌 제약사 BMS가 세엘진을 740억달러(약 88조원)에 인수한 것을 시작으로 애브비가 앨러간을 630억달러(약 75조원), 화이자가 어레이를 120억달러(약 14조원)에 인수했다. 이 밖에 릴리는 록소 온콜로지를 80억달러(약 9조원), 로슈가 스파크 테라퓨틱스를 43억달러(약 4조7,000억원)에 사들이는 등 굵직한 M&A가 이어졌다. 업계 관계자는 10년간 M&A를 위해 투입된 돈 절반 가량이 최근 20개월 간 집중됐다고 설명했다.
글로벌제약사의 M&A가 활발한 이유로 이들의 현금이 풍부한 상황에서 주력 의약품들의 특허 만료일이 다가오고 있다는 점이 꼽힌다. 새로운 먹거리를 찾아나서야 하는 만큼 관련 기술을 가진 바이오벤처들이 인수 타깃이 된다는 것이다.
아울러 신약 개발 트렌드가 기존 합성의약품, 항체의약품에서 유전자치료제로 바뀌며 신약후보물질 도입만으로는 개발역량을 얻어낼 수 없다는 점도 잇따른 대형 M&A의 이유다. 기술도입은 해당 물질의 일부 개발권과 판권만 획득할 수 있지만, 회사 자체를 사버리면 물질 뿐 아니라 개발에 참여한 연구진과, 물질을 다루는 노하우를 얻어내고 아울러 이 기술을 활용한 다른 물질 자체를 만들어낼 수 있다.
이 때문에 내년 상반기에도 대형 M&A가 잇따라 일어날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생선에서 나온 기름을 활용한 심장마비 및 뇌졸중 치료제 ‘바세파’를 개발한 아마린이 대표적이다. 업계는 아마린이 심혈관 질환 시장에 관심이 많은 화이자, 암젠 등에 200억달러를 웃도는 인수가에 팔릴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희귀질환 치료제 개발 제약사들의 인기도 높다. 환자가 많지 않지만, 그만큼 비싼 약가를 받아낼 수 있는데다 품목허가도 비교적 쉽기 때문이다. 초고가 치료제 솔리리스, 울토미리스 등을 보유한 알렉시온 파마슈티컬스, 낭성 섬유증 치료제 시장을 지배하는 버텍스 파마슈티컬스, 바이오마린 파마슈티컬스 등이 주요 매물로 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