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정책

기업당 최대 182억 지원···기술자립 '제2 ASML' 키운다

특허·R&D 등 기술역량 우수

"혁신·성장성 높은 中企 발굴"

비상장 38곳·절반이 매출 300억 ↓

나머지 45개는 내년 선발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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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5년 설립된 알피에스는 국내 최초로 반도체와 스마트폰 등 첨단 산업 분야에 쓰이는 ‘에어베어링 스핀들’ 양산에 성공했다. 지난해 회사 매출액은 127억원, 직원은 55명으로 작지만 일본 업체들이 70%를 장악하고 있는 전 세계 반도체 제조용 에어베어링 시장에 도전하기 위해 한 우물을 파고 있다. 무모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지만 정부는 일본의 수출규제 이후 기술독립을 위해 알피에스와 같은 소재·부품·장비(소부장) 분야 강소기업 55개사를 선정해 집중 지원하기로 했다. 선정 소식을 들은 이동헌 알피에스 대표는 “세계 두 번째로 ‘툴홀더형 에어베어링 스핀들’도 개발했다”며 “에어베어링 스핀들 분야에서 국가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국내 유일의 회사가 되겠다”고 강조했다.

9일 중소벤처기업부가 발표한 ‘소부장 강소기업 100 프로젝트’에는 알피에스를 포함해 아이티켐·풍원정밀·부국산업 등 55곳이 포함됐다. 이번 프로젝트는 일본의 수출규제 이후 기술독립에 대한 필요성이 고조되면서 정부가 소부장 분야 전문기업을 육성하기 위한 첫 로드맵이다. 중기부는 ‘스타트업 100, 강소기업 100, 특화선도기업 100 프로젝트’ 가운데 첫 번째로 소부장 강소기업 100개 가운데 우선 55개 기업을 선정하고 내년에 나머지 45개 기업을 선정할 계획이다. 김영태 중기부 기술혁신정책관은 “기술혁신성뿐만 아니라 시장성, 사업화 성공 가능성을 고려해 선정된 기업들”이라며 “현재의 수치(매출 등)보다 성장 가능성에 방점을 찍었다”고 말했다.

1996년 설립된 풍원정밀은 디스플레이 분야에서 쓰이는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증착용 ‘파인메탈마스크’ 사업에 뛰어들었다. 이 제품은 종이보다 얇은 합금, 수천만개의 미세한 구멍 등 제작 기술의 난도가 높다. 현재 일본기업이 독점하고 있는 분야이기도 하다. 유명훈 풍원정밀 대표는 “국내 기업이 파인메탈마스크에 대한 일본 의존도를 낮춰 안정적인 공급, 원가절감 효과를 누릴 수 있게 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이번에 선정된 기업들은 소부장 분야 국산화를 이뤄낼 수 있는 역량을 갖췄다는 평가를 받는다.


55개 기업은 앞으로 5년간 기술개발부터 사업화 단계, 연구인력, 수출, 마케팅 등 전 분야에 걸쳐 30개 사업에서 최대 182억원씩 지원받을 수 있다. 연구인력을 쓰거나 시제품 테스트, 수출국 인증 획득과 같이 현장에서 이뤄지는 세세한 업무도 지원 대상이다. 기술을 개발하더라도 판로 개척에서 어려움을 겪는 기업이 많다는 현실적 요구도 지원에 담겼다. 일반 정책금융 지원이나 전용 연구개발 사업 등을 감안하면 실제로는 기업당 평균 100억원 이상 지원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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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산화가 시급한 분야 내 기업들이 선정됐다. 분야별로는 전기·전자가 16개(29.1%)로 가장 많고 반도체, 기계금속·디스플레이, 자동차 순이다. 그동안 우리나라는 화학·자동차·디스플레이와 같은 핵심소재 부품을 물류상 이점과 가격경쟁력이 있는 일본에 의존해왔다. 선정 기업의 기술력은 여러 지표로 입증됐다. 평균 특허권이 42개로 7.9배(중소제조업 5.3개), 매출액 대비 연구개발 투자(R&D 집약도)가 6.1%로 3.8배(중소제조업 1.6%) 뛰어났다.

정부가 소부장 강소기업을 집중 육성하려는 데는 반도체 핵심장비인 극자외선(EUV) 노광장비를 생산하는 네덜란드 ASML과 같은 글로벌 기술력을 자랑하는 기업으로 키우겠다는 의지가 반영됐다. ASML 노광장비는 반도체 업체의 사활을 쥐고 있을 만큼 핵심 중의 핵심으로 통한다. 업계 관계자는 “중국의 반도체 산업이 크지 않은 주요 원인으로 네덜란드 ASML이 차세대 장비를 중국에 납품하지 않는 것이 꼽힐 정도로 ASML의 장비는 전 세계적으로 핵심 부품 중 하나”라며 “그만큼 앞으로는 핵심부품을 만들 수 있느냐 없느냐로 국가경쟁력이 좌우될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도 이 같은 이유로 상장기업보다는 묵묵히 핵심기술을 개발해온 비상장 기업에 더 많은 점수를 줬다. 나중에 기업공개(IPO)를 통해 더 큰 규모로 성장할 수 있는 발판도 마련됐다. 실제 55개 기업 가운데 비상장 기업이 38개로 상장기업(17개) 보다 두 배 이상 많다. 게다가 매출 300억원 이하의 중소기업이 절반 가까이를 차지했다. 더구나 일반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대기업 등이 강력 추천한 강소기업이 포함됐다는 점에서 판로 등의 선순환도 기대되고 있다.


양종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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