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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뱅'으로 100억 송금 받고 스타트업 창업하고…'벤처 허생전'에 네티즌 열광

윤필구 빅베이슨캐피탈 대표/사진=윤필구 대표 페이스북


‘허생은 성수동에 살았다. 곧장 중량천 밑에 닿으면, 뚝섬역을 지나 헤이그라운드 건물이 서 있고, 서울숲을 향하여 허름한 오피스텔이 있었는데, 주변 공장의 소음과 먼지를 막지 못할 정도였다. 그러나 허생은 테크크런치 읽기만 좋아하고, 그의 처가 남의 회사 외주 개발 일을 받아서 입에 풀칠을 했다.’

낯익은 조선 후기 박지원이 쓴 단편소설 ‘허생전’을 2019년 대한민국의 현실과 접목해 새롭게 구성한 ‘벤처 허생전’이 온라인 상에서 화제를 모으고 있다.

남산 아래 묵적동 오막살이집에 살면서 독서에만 열중한 탓에 아내의 삯바느질로 근근이 먹고 살던 허생. 일상에 지친 아내가 던진 “무능하다”라는 푸념에 집을 나서 한양 제일가는 부자 변씨에게 빌린 돈 만 냥으로 큰 돈을 벌어 가난한 사람들을 구제했다는 게 허생전의 줄거리다.

‘벤처 허생전’은 원작의 큰 줄기를 따라가면서도 곳곳에 지금 현실을 고스란히 담아내는 기발한(?) 설정과 비유로 보는 이들의 눈을 사로잡는다.

예를들면 한양 제일 가는 부자 변씨는 강남 테헤란로에 사무실을 갖고 있는 강남 부자 손씨(孫氏)이고, 손씨는 허생이 빌려달라는 100억을 ‘카뱅’으로 즉시 송금해주는 식이다.

원작에서는 허생이 빌린 돈을 갖고 안성에 내려가 과일 장사로 짭짤한 수익을 올리고, 제주도에 들어가 말총 장사를 하지만 ‘벤처 허생전’에서는 서울과 경기도 창업자들이 마주치는 테크의 길목인 판교로 내려가 유능한 개발자와 디자이너를 영입해 돈을 쓸어모은다.


이어 제주가 아닌 미국 샌프란시스코로 날아가 홈리스들을 끌어모아 스타트업 회사를 차려 막대한 수익을 올린다는 설정에서는 “기발하다”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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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태에 대한 절묘한 풍자와 따끔한 지적도 잊지 않았다. 허생의 사연을 듣고 찾아와 유니콘 육성 방안을 묻는 청와대 창업지원실 김실장을 따끔하게 혼내는 대목이다.

허생은 여러 방도에 대해 팁을 주지만 ‘이건 이래서 안 되고, 저건 저래서 안된다’라는 김실장에게 쓴소리를 날린다.

“소위 엘리트란 것들이 무엇이란 말이냐? 금수저로 태어나 국가 고시만 준비하면서 자칭 엘리트라 뽐내다니, 이런 어리석을 데가 있느냐? 학벌이나 스펙을 중히 여기는 것은 80년대 습속에 지나지 못한데, 대체 무엇을 가지고 미래에 먹고 살려 한단 말인가? 스티브 잡스는 애플을 만들기 전에 아타리(Atari)에서 인턴생활을 마다하지 않았고, 빌 게이츠는 하바드를 때려친 뒤 IBM에 머리를 숙이고 MS-DOS 납품한 걸 부끄럽게 여기지 않았다. 이제 4차 산업혁명을 대비해 청년 창업을 육성한다고 하면서, 있는 규제들도 과감히 철폐해야 하는 판국에 없는 규제까지 만들면서 유니콘을 기대한단 말이냐? 내가 세가지를 들어 말하였는데, 너는 한 가지도 행하지 못한다면서 그래도 신임받는 신하라 하겠는가? 너 같은 자는 아이스버킷 챌린지를 받아야 할 것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정부의 혁신 기조와는 달리 규제의 덫이 이어지는 현실을 꼬집은 허생의 ‘사이다 발언’에 뜨거운 호응이 쏟아진다.

네티즌들은 “무릎을 탁 치고 간다”, “대단한 풍자와 비유에 감탄할 수 밖에 없네요”, “신박한 아이디어와 매칭이 놀랍네요” 등의 의견을 올리고 있다.

‘벤처 허생전’을 쓴 이는 윤필구 빅베이슨 캐피탈 대표다. 지난 2013년 설립된 빅베이슨캐피탈은 전자상거래, 소프트웨어개발, 교육기술(에듀테크) 등 다양한 분야의 32개 스타트업에 투자했다. ODK 미디어, 굿타임, 쿠캣, 스윙비 등 주로 설립 3년 미만의 스타트업에 집중 투자하며 투자금은 평균 6억원 내외다.

윤 대표는 반도체 엔지니어 출신이다. 서울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한 후 카네기멜론대학교에서 석사를 마치고 와튼스쿨 MBA(경영대학원)에 다니면서 투자심사역으로 변신했다. 2008년 인텔캐피탈과 월든인터내셔널에서 실리콘밸리의 투자방법을 익혔다.

김경훈 기자
styxx@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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