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부문 강화를 위해 팹리스(반도체 설계전문) 업체들과의 공동 성장에 한층 힘을 준다. 글로벌 파운드리 1위인 대만 TSMC와의 점유율 격차가 다시금 벌어지는 가운데 후발주자인 삼성전자가 상생에 기반한 승부수를 던진 것으로 풀이된다.
송용하 삼성파운드리 마케팅 그룹장은 11일 서울 양재동 엘타워에서 열린 ‘시스템반도체 융합얼라이언스 세미나’에서 “삼성전자는 에코시스템 프로그램인 ‘세이프(SAFE·Samsung Advanced Foundry Ecosystem)’를 통해 파운드리 생태계 개발자들과 기술 동향을 공유하고 협력을 강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삼성은 지난해 초 세이프를 공개한 이후 팹리스 업체들에 ‘자동화 설계툴(EDA)’과 ‘설계 방법론(DM)’ 등을 제공하고 있다. 또 삼성전자와 파트너사들이 다양한 파운드리 설계자산(IP)을 쉽게 접할 수 있도록 하는 방식으로 협력관계를 강화하고 있다. 팹리스 업체들은 파운드리사의 기술 로드맵 등을 보고 1년여 정도 검토 끝에 생산을 위탁한다는 점에서 이 같은 생태계 조성은 고객사 확보에 큰 도움이 된다. 삼성은 지난 10월에는 미국 산호세에서 사상 첫 ‘세이프 포럼’을 개최하는 등 파운드리 생태계 조성에 적극적이다.
삼성전자 측은 기술력에 기반한 ‘초격차’ 전략으로 파운드리 고객사 확대를 자신하고 있다. 송 그룹장은 “삼성전자는 32나노 저전력 HKMG(하이-케이 메탈 게이트) 공정을 2010년 파운드리 업계 최초로 개발한 데 이어 14나노 핀펫 공정, 7나노 극자외선(EUV) 공정 등을 세계 최초로 선보였다”며 “경쟁력 있는 IP 제공, 설계 및 분석 기술 지원, 멀티프로젝트웨이퍼(MPW) 운영 프로그램 확대, 디자인하우스 기술교육 지원 등으로 팹리스 업체와 상생을 추구하겠다”고 강조했다. 삼성전자는 3나노 공정부터는 반도체 효율을 높이는 GAA(Gate-All-Around)와 MBCFET(Multi Bridge Channel FET) 등의 기술을 적용해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 확대에 한층 속도를 낸다는 방침이다.
업계에서는 삼성전자 파운드리 사업부의 이 같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직 갈 길이 멀다는 평가를 내놓는다. 시장조사기관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올 4·4분기 파운드리 시장에서 삼성전자의 점유율은 17.8%로 올 1·4분기 대비 1.3%포인트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TSMC의 4·4분기 점유율은 52.7%로 1·4분기 대비 4.6%포인트 상승했다. TSMC가 퀄컴, 엔비디아, AMD의 반도체를 양산하고 있는데다 하이실리콘(화웨이 자회사), 애플 등 스마트폰 업체들이 대부분 물량을 TSMC에 맡기고 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퀄컴의 보급형 모바일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 외에 IBM의 메인프레임용 중앙처리장치(CPU) 등을 생산하며 고객사를 늘리고 있지만 수십년간 협력해온 TSMC와 주요 팹리스 업체 간의 틈을 비집고 들어가기엔 시간이 필요하다는 분석이다.
다만 삼성전자 파운드리 사업부의 올 4·4분기 예상 매출이 34억7,000만달러로 파운드리 매출 상위 10개 사업자 중 가장 높은 19.3%(전년 동기 대비)의 성장률을 기록한 점은 긍정적이다. TSMC는 올 4·4분기에 102억5,000만달러의 매출을 올렸지만 성장률은 삼성전자의 절반 수준인 8.6%에 그쳤다. 초미세공정 포기를 선언한 글로벌파운드리는 4·4분기에 전년 동기 대비 0.1% 증가한 15억6,400만달러 매출을, 자국 팹리스 생태계 덕을 본 대만 UMC는 15.1% 늘어난 13억3,100만달러의 매출을 각각 기록했다. 이 같은 추세라면 내년께에는 UMC와 글로벌파운드리 간 순위 바꿈도 가능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