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5년 12월12일, 독일의 한 정당이 미래를 위한 장기 프로젝트 ‘레벤스보른(Lebensborn)’을 시작했다. 목적은 우수한 아리아인의 혈통 보전과 전파. 세 차례 총선을 통해 권력을 다진 ‘국가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나치)’의 핵심조직인 무장친위대(SS)가 기획과 실무를 맡았다. ‘SS 국가지도자(장관)’ 하인리히 힘러는 ‘파란 눈에 금발 머리, 큰 체격’을 순수 아리안의 특성으로 규정하고 수를 늘리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였다. 처음에는 아리안의 특징이 두드러지는 젊은 SS 남녀 단원을 결혼시켜 아이를 많이 낳도록 장려하는 수준이었으나 시간이 흐를수록 정도가 심해졌다.
인종적으로 순수하다고 판정된 남녀의 교배를 강요하고 아리안의 유전인자가 많이 남았다는 노르웨이에도 시설을 만들었다. 길거리에서 금발 소녀를 납치해 SS 장교의 씨를 받게 하는 만행도 조직적으로 저질렀다. 어머니들 대부분이 출산과 동시에 양육을 포기한 아이들은 친위대 가정에 입양돼 길러졌다. 강간을 포함한 인위적 교배에도 아리안의 특성을 갖지 못한 채 태어나는 아기는 죽여버렸다. ‘생명의 탄생’ ‘생명의 원천’이라는 뜻의 레벤스보른을 통해 얼마나 많은 아이가 태어나고 버려졌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나치가 자료를 없앤 탓이다. 1939년 말 8,000여명의 부모들이 2~3명씩은 낳았다는 추정만 있을 뿐이다.
신생아뿐 아니라 ‘우량 아리안’으로 판별되는 10세 이하 동구권 어린이들도 납치돼 부모와 생이별한 채 레벤스보른을 거쳐 나치 가정에 입양됐다. 레벤스보른은 라벤스라움과 쌍둥이로 추진됐다. ‘생활권’을 의미하는 라벤스라움은 1901년 독일의 지리학자 프리드리히 라첼이 주창한 국가확대론이다. 독일의 생활권이 영국과 프랑스처럼 커진 지리적 결과인 라벤스라움에 채울 사람을 키우는 방편이 레벤스보른이었다. 레벤스보른과 라벤스라움은 단순히 후발 제국주의 국가인 독일의 발명품일까.
연혁이 깊다. 플라톤은 국가론에서 체력과 지성이 우량한 남녀를 교배시켜 정부가 공동 양육해 안보와 정치를 맡기는 사회를 이상 국가로 봤다. 찰스 다윈의 진화론 이후 퍼진 사회적 진화론과 우생학도 영향을 미쳤다. 올더스 헉슬리의 디스토피아 소설 ‘멋진 신세계(1932)’도 레벤스보른과 닮았다. 아기 공장 레벤스보른은 오랜 옛날 전체주의·인종차별주의가 판치던 시대의 광기에 머물지 않는다. 유럽과 미국에서 가끔 등장하는 극우 백인우월주의자부터 모든 것을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에 맡기자는 신자유주의에까지 흔적이 남아 있다.
/권홍우선임기자 hongw@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