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의회가 40조원에 육박하는 내년도 시 예산을 16일 통과시켰다. 시의회는 시 편성 예산안보다 6,000억원 이상을 감액한 뒤 이 중 상당수를 ‘쪽지 예산’으로 증액해 원래 예산안과 유사한 규모로 맞췄다. 세부적인 내역을 들여다보면 지하철역 에스컬레이터·엘리베이터 설치, 등산로 정비, 전통시장 ‘보이는 라디오’ 설치 등 지역구를 겨냥한 선심성 예산이 대거 포함됐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지방의회에서도 ‘쪽지 예산’이 판을 치고 있는 것이다.
서울시의회는 이날 본회의를 열고 내년도 서울시 예산을 가결했다. 총 정원 110명 중 재석 87명, 찬성 86명, 기권 1명이다. 수정 가결된 예산은 39조5,359억원으로 서울시가 제출한 39조5,282억원보다 77억원 늘었다. 총 예산의 규모는 맞췄지만 증액, 감액 규모는 각각 6,135억원, 6,059억원으로 전년의 4,406억원, 4,834억원보다 크게 늘었다.
지역구의 선심성 예산이 대폭 늘어 증감액의 규모도 따라서 증가한 것으로 분석된다. 서울시는 애초에 한 푼도 편성하지 않았던 지하철역 승강편의시설(에스컬레이터·엘리베이터) 설치·설계 사업이 새로 들어왔다. 총 39개 역이 대상으로 346억원이 증액됐다. 주무부서인 도시교통실 관계자는 “사당역에는 에스컬레이터가 두 개 설치되고 3호선 잠원역은 에스컬레이터 설치에 엘리베이터 설계까지 들어갔다”며 “아직 설치되지 않은 역을 감안하면 한 해에 하나만 해도 된다”고 꼬집었다.
교통 예산 중에서도 선심성이 적지 않았다. 도시철도 출구에서 눈과 비를 가려주는 투명한 가림막인 캐노피 설치에 23억원, 도보에 높게 설치된 도시철도 환기구의 높이를 낮추는 사업에도 12억5,000만원이 신설 배정됐다. 버스정류장에 온열기능 의자를 설치하는 사업은 ‘시범 설치’라는 이름을 달아 광진구에만 콕 집어 9,000만원이 배정됐다. 버스 정류장에 대기부스를 마련하고 공기청정기·에어컨·와이파이·전광판을 설치하는 ‘스마트쉘터’ 사업도 성동구에만 3억5,000만원을 들여 추진된다.
예년 같으면 자치구 예산으로 편성됐을 사업들도 대거 포함됐다. 금천구 독산1·4동의 골목상권 활성화와 마포구 합정동 먹자골목 활성화에 각각 2억5,500만원, 1억원이 들어간다. 전통시장 현대화 사업에는 성동구 마장축산물시장·금남시장·뚝도시장, 대림동 우리시장, 방산시장 등 9개 시장이 선정됐다. 심지어 중곡제일시장과 뚝섬역상점가에 상인들이 지역 방송을 하는 ‘보이는 라디오’를 설치(1억3,000만원)하고 남문시장·영동시장·강북구 전통시장에는 이벤트 지원에 5억원을 들이는데, 모두 시예산으로 처리된다.
구로구 안양천에는 파크골프장이 조성(8억원)되며 동대문구 전농동에는 작은 체육관(10억원)을 짓는다. 봉화산로·돌곶이로·보라매로 등 총 15개 지역 도로의 가로등을 개량(73억원)하고 공원 보수공사에 184억원, 등산로 정비에 178억원을 배정했다.
내년 예산이 총선용 선심 예산이 될 것이라는 점은 편성 때부터 예상됐다. 시의원의 공천권은 각 지역구의 당협·지역위원장이 행사하며 국회의원은 이를 겸하기 때문에 결국 시의원과 상사·부하 정치인의 관계가 형성된다. 총선이 껴 있는 해에는 시의원들이 자신이 모시는 국회의원의 당선을 위해 지역구 예산 따오기에 전념을 기울일 수밖에 없는 구조다. 지역구 예산이 특정 선거구에 밀집된 것은 그 때문이다. ‘지하철역에 에스컬레이터 설치’라는 현수막을 달고 지역위원장을 홍보해줄 거리를 만드는 것이다.
시와 시의원들 사이에서도 “올해 예산은 정도가 지나치다”는 목소리가 높다. 시의원들이 지역구 예산을 챙긴 만큼 시에서 올린 예산은 삭감됐다. 국공립 어린이집 확충에 100억원, 저소득층 미세먼지 마스크 보급에 40억원이 각각 줄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시의원은 “누이 좋고 매부 좋다는 말처럼 더불어민주당에서 국회의원이 많이 당선되면 박 시장도 국비를 확보하기에 좋지 않겠느냐”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