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가 16일 오전 외교부 기자들 앞에서 북측 카운터파트에게 회동을 공개적으로 제안한 것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등 북한의 무력위협이 현실화될 가능성은 높아졌지만 북측과의 소통·접촉은 더 어려워졌기 때문인 것으로 판단된다. 비건 대표가 북한과의 협상에 “데드라인(시한)은 존재하지 않는다”면서 외교와 대화를 계속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북측에서 이에 반응할지는 미지수다. 또 비건 대표가 북한의 협박성 발언인 ‘연말 시한’과 ‘크리스마스 선물’을 의식한 듯 “크리스마스는 신성한 날”이라며 도발에 대한 경계감도 우회적으로 드러냈지만 전문가들은 북한의 ICBM 기술이 완성단계에 오른 것으로 분석하며 우려감을 드러냈다.
“이젠 일(협상)할 시간...마무리하자”
이날 오전8시40분께 외교부 본부로 들어선 비건 대표는 조세영 1차관, 이도훈 한반도교섭본부장과의 잇단 면담을 시작하는 과정에서 취재진 앞에서 별다른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하지만 외교부를 떠나기 전 브리핑룸을 찾은 비건 대표는 통역도 없이 미리 준비해온 듯한 발언을 쏟아냈다.
그는 늘 그렇듯이 동맹 파트너인 한국과의 긴밀한 협조를 강조하는 데 더해 북한을 향한 메시지도 현장에서 공개했다. 비건 대표는 “오늘 북한의 내 카운터파트들에게 직접 말하겠다”며 “이제 우리가 일을 할 시간이다. 일을 마무리하자”고 제안했다. 북한이 지난 13일 밤 또다시 ‘중대 시험’을 감행하면서 북미 협상팀의 판문점 접촉 가능성이 낮아졌지만 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 등 북측 협상팀에 회동을 제안한 것이다.
北 ‘성탄 선물’ 위협 속 “기독교인에게 신성한 날”
특히 비건 대표는 입장발표 말미에 “곧 크리스마스가 다가오고 나를 포함해 기독교 신자들에게는 매우 신성한 날”이라며 “이 기간이 평화로운 날들로 인도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인들이 즐거운 연말을 보내기를 진심으로 바란다”며 북한이 무력도발을 시도해서 안 된다는 점을 우회적으로 거듭 강조했다.
하지만 북한은 동창리에서 13일 밤 또다시 중대 시험을 했다는 사실을 비건 대표 방한 직전인 14일 공개했을 뿐 추가적인 담화 등은 내놓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외교가에서는 북한이 미국과의 협상에 응하지 않을 것이라는 데 무게를 두면서 비건 대표의 이날 공개 발언 역시 협상 무산에 대비한 ‘명분 쌓기’ 차원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문재인 대통령을 예방한 자리에서 “대화와 협상을 통한 비핵화와 평화 구축이라는 역사적 과제를 포기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히기는 했지만 국면이 더 악화될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전문가들은 지난주 말 발표된 북한의 중대 시험 발표와 정보당국 등에 포착된 최근 대북 동향 등을 바탕으로 북한의 ICBM이 주요 요건을 모두 갖췄다는 해석을 내놓았다.
국방硏 “협상 결렬시 北 보복능력 보이려 할 것”
미국의소리(VOA) 방송에 따르면 미들버리국제학연구소 동아시아 비확산센터의 제프리 루이스 소장은 “2017년에 시험한 화성-14형과 15형은 미국 본토 대부분에 다다를 수 있다”며 “특히 15형은 미국 어디로든 핵무기를 싣고 날아갈 수 있을 만큼 충분히 크다”고 밝혔다. 또 그는 대기권 재진입 능력에 대해서도 “ICBM 기술을 가지고 있으면서 재진입체를 만들지 못하는 나라는 없었다”고 말했다.
또 국방부 산하 한국국방연구원은 이날 공개한 ‘2020 국방정책 환경 전망 및 과제’라는 제목의 보고서에서 “북한은 북미협상이 결렬되는 경우 미국의 군사적 압박을 견제하기 위해 대미 보복능력을 신뢰성 있게 보여주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게 될 것”이라며 그 대상으로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과 다탄두 ICBM 개발 가능성을 지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