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2일 건물 규모만 2,322㎡(702평)에 달하는 베벌리힐스의 대저택이 1억5,000만달러(약 1,750억원)에 거래됐다. 침실만 11개에 욕실 18개, 1만2,000병을 보관할 수 있는 와인 저장실, 수영장, 개인 정원 및 비밀 지하 터널을 갖춘 집이다. 초고가 주택이 즐비하고 기업 회장은 물론 스포츠·할리우드 스타들이 모여 사는 곳으로 유명한 베벌리힐스에서도 흔치 않은 규모의 거래 금액이다. 이 집 또한 본래 제럴드 페렌치오 유니비전 회장이 보유했다. 그리고 새 주인으로는 미국 ‘미디어 황제’ 루퍼트 머독의 아들인 라클란 머독 폭스 회장을 맞는다.
워낙 규모가 거대하다 보니 매물이 나오고 팔리기까지만 414일이 걸렸다. 본래 2억4,500만달러(약 2,858억원)에서 시작한 가격은 한 차례 1억9,500만달러(약 2,275억원)로 내려갔다가 최종 1억5,000만달러에 거래가 종료됐다. 베벌리힐스 일대에서 부동산 중개업을 하고 있는 크리스틴 지 리맥스 중개사는 “거래가 희귀한 베벌리힐스의 부동산은 이같이 장기간 시세를 맞춰나가는 게 일반적”이라면서 “주변의 이전 거래 가격이 다음 매물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치곤 한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영화·드라마에서만 보던 베벌리힐스의 부동산은 어떤 특성이 있을까. 현재 나와 있는 두 매물을 통해 베벌리힐스를 엿본다.
◇베벌리힐스는 LA가 아니다?=베벌리힐스가 전 세계적인 유명세를 떨친 것은 1990년대 방영된 TV드라마 ‘베벌리힐스의 아이들’을 통해서다. 원제는 ‘Beverly Hills 90210’으로 90210은 베벌리힐스의 대표적인 우편번호다. LA의 대표적인 부촌이자 관광지이기도 한 이곳은 사실 LA시에 둘러싸여 있지만 별도의 행정구역이다. 10년마다 조사하는 인구 통계에 따르면 2010년에는 3만4,290명이 살고 있었다. 이들을 위해 베벌리힐스 시청에서 상당한 자치권을 갖고 있다. 오는 2021년부터 구역 안에서는 담배판매를 전면 금지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보안에서도 LA의 관할이 아니라 독립적인 시 경찰이 있어 주변보다 더 치안이 잘 돼 있다.
그렇지만 부동산 시장에서 베벌리힐스의 주택이라고 부르는 영역은 이보다 넓다. 행정 구역은 15㎢ 면적이지만 주변 벨에어(16.5㎢), 브렌트우드(38.4㎢)와 함께 LA 부동산 시장에서 ‘스리 비에스(three Bs)’라고 불린다. 일반적으로 이 일대 초고가 주택이면 베벌리힐스로 묶어 통칭한다. 면적당 가격으로 보면 벨에어에 초고가 주택이 더 밀집해 있다. 앞서 1억5,000만달러에 거래된 대저택도 벨에어에 속한다.
현재 벨에어에 가까운 ‘트렌턴 621’에 위치한 대지 면적 932㎡ 저택은 750만달러(약 87억원)에 매물이 나와 있다. 건축면적은 397㎡가량으로 4개의 침실과 7개의 욕실이 딸려 있다. 고급 나무 바닥, 벽난로, 카레라 대리석(Carrera marble)은 물론 냉장고·바이킹레인지·오븐 등도 포함돼 있다.
◇LA의 대치동+압구정+평창동=베벌리힐스는 주거환경만 고급스러운 게 아니다. LA지역에서 학군이 우수하기로도 유명하다. 베벌리 통합 교육구에는 초등학교부터 우리나라 중학교 수준인 8학년까지 K-8학교 4개가 있다. 고등학교는 대안학교 1개를 포함해 베벌리힐스 하이스쿨이 자리잡고 있다. 이들 학교에서는 부모가 사회 지도층인 만큼 재학생도 글로벌 마인드를 강조한다. 흥미로운 점은 각 학교 재학생 중 35%는 외국 태생이어서 41%가량은 영어가 아닌 언어를 모국어로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성장 과정에서 다양한 국가·인종을 만나 자연스럽게 여러 언어를 접할 수 있는 것이다. 고등학교 인종 구성은 백인이 70%로 많지만 흑인 5%이고 아시아인은 17%에 달한다.
실제 한국에서도 교육을 목적으로 베벌리힐스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상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임대료는 적게는 월세가 2,000달러(약 465만원)부터 수만달러까지 다양하다. 방 2개와 욕실 1개짜리 작은 집이면 월세가 최소 4,500달러(약 524만원) 수준이다. 지 중개사는 “투자나 휴양 목적으로 베벌리힐스 주택을 매입하는 한국사람들 외에도 휴가차 단기 임대하거나 교육을 목적으로 렌트하는 수요도 많다”고 전했다.
◇오래될수록 가치 있는 집=베벌리힐스 저택의 특이한 점 중 하나는 신축만큼이나 오래된 건물도 많다는 것이다. 앞에 나온 ‘트렌턴’ 주택도 1939년 지어져 우아한 근대 유럽풍으로 리모델링해 건물을 유지하고 있다. 베벌리의 언덕 꼭대기 가까이 위치한 ‘베벌리 이스테이트 Rd 1355’도 1948년 지어졌다. 9,104㎡의 넓은 대지에 침실 3개, 욕실 6개로 건축 면적은 445㎡가량이다. 평평한 지대가 높은 곳에 있어 LA 시내는 물론 태평양 바다까지 멀리 내려다 보인다. 넓은 대지에 산책로는 물론 오랜 기간 숲으로 자란 식생이 저택의 가치를 높인다.
특히나 유럽식 대저택을 표방하는 사례가 많다. 100년이 돼도 썩지 않는 최고급 목재를 활용하며 장식품도 자산 가치로 인정받는다. 문화재나 다름없는 동상, 분수, 샹들리에, 스테인드글라스 창문 등이 어우러진 집들이다. 수집에 관심 있는 사람들은 베벌리힐스의 고급 주택을 살 때 유럽에서 들여온 골동품에 특히 관심이 많아 이를 기준으로 주택을 선택하고 집값에도 포함해 구입하기도 한다.
그렇게 때문에 매매 거래가 오래 걸릴 수밖에 없다. 자산으로 집 한 칸을 사는 게 아니라 가구·인테리어부터 정원과 오래된 건축 양식까지 라이프스타일 전체를 통째로 사들이는 셈이다. /이재명기자 nowlight@sedaily.com 도움말=리맥스코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