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8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중국이 무역협상을 파기했다”고 트윗을 날리며 고율관세 부과를 위협했고 실제로 며칠 후 실행했다. 앞서 4월에 거의 합의한 듯 보인 협상안에 대해 중국이 대폭 수정해 제시하자 그가 폭발한 것이다. 당시 중국이 돌변한 이유는 아직까지도 불분명하지만 초기 합의안에 담긴 일부 쟁점에 대한 지도부 내의 반대인 것으로 전해졌다. 중국이 제동을 걸지 않았다면 무역전쟁은 7개월 전에 타결될 수도 있었던 셈이다. 최근 극적으로 ‘미니딜’ 수준의 1단계 무역합의가 성사됐지만 시장의 반응이 우호적이지만은 않은 이유다. 핵심쟁점을 다룰 내년 2~3단계 협상 과정에서 5월의 데자뷔가 나올 가능성도 크다.
미중 양국 모두에서 2020년 안에 무역합의 최종 타결을 볼 것이라고 기대하는 전망은 희박하다. 한편으로 대화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싸우는 ‘무한갈등’ 관계가 내년에도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오히려 지배적이다. 이른바 ‘전시경제’를 더 잘 버티는 쪽이 승리할 것으로 예상된다는 시각이다.
일단 내년 중국 경제는 한숨을 돌렸다. 비록 1단계이기는 하지만 장장 21개월의 미중 무역갈등 상황에서 처음으로 ‘합의’가 나왔기 때문이다. 이러한 분위기를 반영해 1단계 무역합의 타결 직후 국제통화기금(IMF)은 중국의 내년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5.8%에서 6.0%로, 국제신용평가사 피치도 5.7%에서 6.0%로 각각 상향 조정했다. 성장률 6.0%는 중국 정부가 ‘사회안정’과 ‘통제’를 위해 고수하려는 ‘바오류(保六)’이기도 하다. 1단계 무역합의가 중국 경제에 어쨌든 좋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의미다.
미국도 내년 대선을 앞두고 트럼프 대통령은 중요한 성과를 거뒀다. 중국으로부터 시장개방에 대한 일정한 양보를 얻었고 특히 최대 2,000억달러 규모 미국산 제품의 판로를 확보했기 때문이다. 미국 뉴욕증권거래소에서 다우존스 30 산업평균지수는 13일 이후 2% 가까이 오르며 상승세를 이어갔다.
다만 1단계 합의가 핵심쟁점을 뒤로 미뤄놓은 데 불과하다는 우려가 크다. 윌버 로스 미 상무장관도 최근 인터뷰에서 “1단계 합의는 무역 자체를 다룬 것으로, 끝이 아니라 그냥 첫 단계”라고 말했다. 로스 장관이 “더 어렵고 복잡한 문제를 앞에 두고 신뢰를 구축하려고 (1단계 합의를) 체결한 것”이라고 설명했는데 이는 미국 정부 스스로가 ‘합의’를 평가절하한 의미가 됐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무역전쟁은 더 골치 아파지고 길어질 수 있으며 경제 개혁에 대한 중국의 저항도 더 경직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중국국제교류센터의 왕쥔 부주임도 “1단계 합의는 일시적 화해로 완전한 휴전이 아니다. 두 나라의 관계가 무역전쟁 전으로 돌아가는 것은 어렵다”고 말했다.
미국이 그동안 중국과의 무역전쟁을 벌인 것은 사실상 중국의 ‘국가자본주의’를 성공하게 한 산업보조금 정책의 해소를 위해서였다. 중국은 이른바 ‘중국제조 2025’라는 이름으로 오는 2025년까지 의료·바이오, 로봇, 통신장비, 항공우주, 반도체 등 10대 첨단 제조업에 대한 ‘기술굴기’ 목표를 세웠는데 이것이 보조금으로 운영되는 ‘불공정 행위’라는 것이 미국의 주장이었다.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지난해 중국의 상장사들이 무려 1,562억위안(약 26조원)의 보조금을 중국 정부에서 지원 받았다고 집계한 바 있다. 이는 5년 전에 비해 두 배로 늘어난 것이다. 이들은 상장사이기 때문에 그나마 통계가 있는 것이고 그외 비상장사를 포함하면 중국의 산업보조금은 천문학적인 규모가 된다.
이런 상황에서 2단계 합의 절차는 아직 오리무중이다. 실제 2020년 안에 협상 시작이 가능할지도 의문이다. 일단 1단계 무역합의가 서명절차까지 완료되면 2단계 협상이 시작되는데 미중의 입장은 서로 다르다. 미국은 2단계 협상이 서둘러 시작되기를 원하는 반면 중국은 두고 보자는 입장이다. 중국은 “1단계 이행사항을 봐가면서 2단계 시작 여부를 판단할 것”이라고 선언한 상태다. 그리고 중국은 ‘핵심이익’은 절대로 양보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농산물 등 미국산 제품 수입과 미국의 대중 관세 인하를 맞바꾼 ‘1단계 합의’는 어쩌면 쉬운 협상이었다는 게 시장의 평가인 셈이다. 특히 5월 협상결렬이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당시 미국은 합의안을 중국이 깼다며 관세폭탄을 날렸고 중국은 중국대로 핵심이익이 침해당했다고 반발했다. 양국은 일단 제한된 범위의 ‘미니딜’에는 성공했지만 향후 2단계 무역협상 과정이 5월 직후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 조야의 분위기도 그렇고 트럼프의 개성도 마찬가지인데 중국에 대한 완전한 승리를 선언하기까지 공세를 멈추지는 않을 것으로 외신은 전망한다. 과거 미국·일본 간의 무역분쟁과는 달리 단순히 무역 문제만이 아닌 ‘패권전쟁’이라는 구도로 전개되기 때문이다.
문제는 양국의 경제다. 내년 11월에 대통령 선거를 해야 하는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는 언제까지나 ‘완전한 승리’에 집착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지난해 전년 대비 분기별 성장률이 한때 3%를 넘기도 했지만 최근에는 2% 초반으로 떨어진 상태다. 상대적으로 경제가 더 취약한 중국도 이는 마찬가진데 무조건 자존심만 내세울 수 없는 상황이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스인훙 인민대 국제관계학원 교수의 말을 인용해 1단계 무역합의가 “어려운 문제를 미래로 미룬 것”이라고 전했다. /베이징=최수문특파원 chsm@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