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노동부는 25일 발표한 ‘2018년 전국 노동조합 조직 현황’을 통해 지난해 말 기준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의 조합원 수가 각각 96만8,035명, 93만2,991명이라고 밝혔다. 민주노총이 조합원 수에서 한국노총을 앞지른 것은 출범 23년 만에 처음이다. 이정희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공공 부문 중에서도 비정규직이 많은 곳에 민주노총이 선제적으로 접근하며 조직을 확대한 결과”라고 말했다.
노동계 대표선수 교체는 노사 및 노정관계 설정의 변화를 예고한다. 국내 노동계는 규모가 큰 쪽을 제1노총으로 부르며 대표성을 부여해왔다. 민주노총도 이날 보도자료를 내고 “정부는 명실상부하게 제1노총이 된 민주노총과 양극화·불평등 해소를 위한 노사·노정관계의 새로운 틀 마련, 현안 해결을 위한 노정협의 등에 적극 응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당장 경사노위의 대표성 문제가 논란거리다. 민주노총이 불참한 사회적 합의를 인정하지 않는 기류가 노동계에서 강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민주노총이 당장 경사노위에 결합할 가능성도 거의 없다. ‘제1노총’ 자리가 바뀌면서 각종 사회정책 관련 정부 위원회 구성에서 누가 다수 근로자위원을 차지할지도 힘겨루기가 예고된다. 해당 위원회의 면면을 보면 최저임금위원회를 비롯해 보건복지부 재정운영위원회, 중앙노동위, 전국 지방노동위원회 등 위상도 높다. 특히 근로자위원 전원이 공석인 최저임금위의 위원 구성이 관심사다. 민주노총은 이번 조사 결과를 기준으로 즉시 재배정을 주장했다.
노사관계의 분위기도 다소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최영기 한림대 객원교수는 “사용자 측에서는 한국노총만 해도 대화가 가능하다고 볼 텐데 민주노총이 비타협적이라 불편해할 것”이라며 “노사관계 안정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작동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반면 민주노총도 제1노총이 된 이상 앞으로 경사노위 참여를 비롯해 사회적 책임을 더 이상 회피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민주노총이 그간 타협이나 사회적 대화는 한국노총에 넘기고 비타협적 투쟁으로 선명성을 높여왔지만 앞으로 한국노총의 바람막이 효과는 기대하기 어렵다”며 “민주노총으로서는 앞으로 사회적 대화나 책임의 목소리를 어떻게 감당할지가 과제일 것”이라고 말했다.
또 이번 집계 결과로 양대노총 간 조직원 확대 경쟁도 치열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미 양대노총은 올해 조합원 수가 100만명을 돌파했다며 ‘제1노총’ 자리를 놓고 기싸움을 벌여왔다. 한국노총이 2월 지난해 말 기준 조합원 수를 103만명으로 보고하자 민주노총도 4월 임시 대의원대회에서 3월 기준 100만3,000명이라며 맞불을 놓았다. 법외노조 상태인 전국교직원노조(전교조) 노조원 5만여명을 포함하면 민주노총 규모는 더 커진다.
이미 건설업종에서는 양대노총이 소속 조합원을 더 많이 고용해줄 것을 요구하며 강하게 충돌하고 있다. 이런 상황이 타 업종으로 퍼지지 않으리라는 법은 없다. 특히 양대노총 산하 노조가 복수노조인 사업장이 변수다. 이 연구위원은 “복수노조 사업장의 단체교섭 창구를 어떻게 단일화할지를 두고 경쟁이 있을 텐데 바람직한 방향을 노동계도 고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일부에서는 한국노총이 민주노총에 밀리는 것은 선명성 때문이라는 판단 아래 내년 초 위원장선거를 앞두고 이를 강하게 내세울 수 있다는 전망도 내놓는다.
한편 고용부 집계 결과 노조 조직률도 전반적으로 늘었다. 지난해 말 기준 노조에 가입한 노동자 수는 233만1,000명이며 노조 조직률은 11.8%로 2000년 이후 최고치를 보였다. 고용부 관계자는 “법외노조였던 조합원 약 9만6,000명 규모의 전국공무원노조가 지난해 3월 규약을 개정하며 노조로 인정받았다”며 “그 외에는 공공 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에 따른 노조 가입이 늘어난 점과 네이버·카카오·넥슨 등 정보기술(IT) 업종에서 노조가 생겨난 점이 특기할 만한 사항”이라고 말했다.
/세종=박준호기자 violator@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