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공감]연말, 무엇을 자르고 무엇을 간직할까

‘새해가 겨울의 한복판에 자리 잡은 까닭은 낡은 것들이 겨울을 건너지 못하기 때문인가 봅니다. 낡은 것으로부터의 결별이 새로움의 한 조건이고 보면 칼날 같은 추위가 낡은 것들을 가차 없이 잘라버리는 겨울의 한복판에 정월 초하루가 자리 잡고 있는 까닭을 알겠습니다. 세모에 지난 한 해 동안의 고통을 잊어버리는 것은 삶의 지혜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잊지 않고 간직하는 것은 용기입니다. 나는 이 겨울의 한복판에서 무엇을 자르고, 무엇을 잊으며, 무엇을 간직해야 할지 생각해봅니다.’ (신영복,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1998년 돌베개 펴냄)

2615A38 공감



한 해가 저문다. 올해가 온전히 행복과 행운으로 충만했던 사람은 드물 것이다. 이따금 이게 행복인가 싶어 웃었고, 그보다 더 자주 고통과 피로를 느끼면서도 내게 주어진 책임들을 감당하며 계속 살았을 뿐이다. 그 모든 게 부질없다고, 내게 남겨진 건 왜 이것뿐이냐고, 새해에는 더는 그렇게 바보같이 살지 않겠다고 도리질하고 후회하기는 쉽다. 그러나 내가 저지른 무수한 잘못과 실수, 돌이킬 수 없는 말과 행동까지 기억하며 그 또한 나였음을 받아들이는 용기는 쉽지 않다. 우리 삶에서 완벽하게 도려낼 수 있는 부분이란 거의 없다.


신영복 선생은 공안사건으로 20년20일 동안 감옥에서 갇힌 몸으로 살았다. 세상 속 그의 시계는 멈췄고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은 방 한 칸 크기로 쪼그라들었다. 그러나 그는 그곳에서조차 삶과 사색을 이어갔다. 단정한 필체와 단단한 필력으로 지인들에게 편지를 썼다. 그 고결한 옥중 서간들은 선생이 출옥한 지 3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감옥 철창을 넘어 후대를 살아가는 이들의 가슴에 수신되고 있다.

관련기사



나이 들수록 운신의 폭은 좁아지고 생각도 삶도 감옥에 갇히는 것만 같다. 그러나 나이와 세월이라는 감옥 속에서도 자르고 기억하고 간직하며 사색하는 자의 삶은 결코 시간에 갇히지 않는다. 춥고 힘든 겨울의 한복판에, 새해가 오고 있다. /이연실 문학동네 편집팀장



최성욱 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