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가 저문다. 올해가 온전히 행복과 행운으로 충만했던 사람은 드물 것이다. 이따금 이게 행복인가 싶어 웃었고, 그보다 더 자주 고통과 피로를 느끼면서도 내게 주어진 책임들을 감당하며 계속 살았을 뿐이다. 그 모든 게 부질없다고, 내게 남겨진 건 왜 이것뿐이냐고, 새해에는 더는 그렇게 바보같이 살지 않겠다고 도리질하고 후회하기는 쉽다. 그러나 내가 저지른 무수한 잘못과 실수, 돌이킬 수 없는 말과 행동까지 기억하며 그 또한 나였음을 받아들이는 용기는 쉽지 않다. 우리 삶에서 완벽하게 도려낼 수 있는 부분이란 거의 없다.
신영복 선생은 공안사건으로 20년20일 동안 감옥에서 갇힌 몸으로 살았다. 세상 속 그의 시계는 멈췄고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은 방 한 칸 크기로 쪼그라들었다. 그러나 그는 그곳에서조차 삶과 사색을 이어갔다. 단정한 필체와 단단한 필력으로 지인들에게 편지를 썼다. 그 고결한 옥중 서간들은 선생이 출옥한 지 3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감옥 철창을 넘어 후대를 살아가는 이들의 가슴에 수신되고 있다.
나이 들수록 운신의 폭은 좁아지고 생각도 삶도 감옥에 갇히는 것만 같다. 그러나 나이와 세월이라는 감옥 속에서도 자르고 기억하고 간직하며 사색하는 자의 삶은 결코 시간에 갇히지 않는다. 춥고 힘든 겨울의 한복판에, 새해가 오고 있다. /이연실 문학동네 편집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