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교육과정에 따라 내년 3월 새롭게 선보일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를 두고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국사 교과서의 3분의2를 차지할 정도로 비중 있게 다뤄졌던 선사시대~조선 후기의 전(前)근대사 교과서 비중이 전체의 4분의1로 줄어들고, 개항기부터 현대사에 달하는 근현대사가 전체의 4분의3으로 늘어난 다소 기형적인 교과서가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이처럼 근현대사 비중이 높은 역사 교과서가 등장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렇게 한국사 교과서가 근현대사 부문 기술에 지나치게 치중하게 되면서 무분별한 이념 논쟁을 촉발시키고 균형 있는 역사관 형성에도 지장을 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새로 편찬된 고등학교 한국사 검정교과서 8종은 320쪽 내외로, 이 중 선사시대부터 조선 후기에 이르는 전근대사의 분량은 전체의 4분의 1인 80쪽 내외에 불과하다. 이후 개항기에 80여쪽, 일제강점기에 80여쪽, 현대사에 80여쪽을 각각 할애하고 있다. 18세기 말부터 21세기에 이르는 불과 200여년도 되지 않는 짧은 기간에 전체 교과서의 75%나 할애한 반면 상고사로부터 조선 시대에 걸친 수천년의 역사 기술은 25%인 80쪽에 그친 셈이다. 조선 시대를 전·중기와 후기로 나눠 비중 있게 다뤘던 이전 교과서들에 비해 조선 말기인 개항기를 제외한 조선 시대 비중이 크게 줄었고, 고려사와 삼국시대 등 이전 역사도 간략한 기술에 불과할 정도로 분량이 압축됐다.
새 교과서는 현 고등학교 1~2학년이 학습하는 2009 교육과정의 한국사 교과서와 비교해도 개항기 이전의 우리 역사를 지나치게 축소한 것에 해당한다. 현 교과서는 선사시대부터 조선 시대를 1~3단원, 개항기부터 현대사를 4~6단원을 할애해 개항기 이전 역사 비중을 50%, 개항기 이후 역사 비중을 각각 50%로 두었다. 반면 새 교과서는 이전 교과서의 절반 분량이었던 1~3단원을 한 단원으로 묶은 반면 4~6단원은 그대로 둔 채 비슷한 분량으로 구성돼 비중 논란을 비껴가기 힘들게 됐다.
특히 이런 비중은 2015 교육과정 교과서 편찬기준에서 고교 한국사를 선사·고대·고려·조선·개항기·일제강점기·현대 등 7개의 대주제로 나누고 각각에 3~5개의 소주제를 부여해 학습 요소와 성취 기준을 제시한 것과도 매우 다른 결과다. 주요 소주제를 1~2쪽으로 압축하다 보니 만주와 한반도 지역의 선사문화, 고국천왕·고이왕·청해진(장보고), 기인제도·공음전·삼별초, 한산도대첩·명량해전과 같은 소주제 및 학습 요소가 상당수 교과서에서 생략된 채 기술됐다. 반면 현대사 부문이 늘어나며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등이 일부 교과서에 들어가는가 하면 발생한 지 10년도 안 된 천안함 폭침 등이 기술되는 등 이념 논쟁만 부추기는 결과를 낳았다.
게다가 이 같은 편제는 역사 연구를 위한 국가기관인 국사편찬위원회가 총괄해온 한국사능력검정시험의 출제 경향 및 빈도와도 차이가 두드러진다. 한국사능력검정시험은 우리 역사를 선사, 고대, 고려, 조선, 조선 후기와 개항기, 일제강점기, 현대 등 8개 단원으로 구분한 뒤 조선 후기까지 5개 단원에서 최소 21문항에서 최대 30문항, 이후 3개 단락에서 최소 16문항에서 최대 21문항을 출제한다. 이는 개항기 이전까지의 역사 비중을 60%, 개항기 이후 역사 비중을 40%로 둔 것으로 새 한국사 교과서와는 확연히 다른 셈이다.
새 교과서는 내년에 고교생이 되는 예비 고1부터 학습해 2023학년도 입시부터는 대학수학능력시험에도 적용된다. 수능 한국사의 출제 비중이 교과서 비중을 수렴해왔기에 근현대사 문항 비중이 75%에 달하는 한국사 수능이 나타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된 셈이다. 실제 최근 2개년도 수능 한국사 영역은 총 20문항 중 선사시대에서 조선 후기까지의 역사에 10~11문제를 할애해 개항기를 기점으로 1대1로 나뉜 현 교과서 비중을 반영했다. 만일 새 교과서대로 수능이 출제된다면 선사시대에서 조선 후기까지에 5문제, 개항에서 현대사에 15문제가 출제돼야 하고 현재 3문제가량인 현대사 비중도 5문제로 늘어나게 된다.
한국사 교과서가 역사 교육에 대한 일반의 함의를 넘어 이처럼 근현대사에 ‘올인’하게 된 것은 1997년 고시된 7차 교육과정에서 역사 교과서가 역사와 한국 근현대사로 분권됐던 데 배경이 있다. 이후 역사 교과서는 역사와 한국문화사로 나뉘었던 2007 교육과정을 거쳐 2009 교육과정에서 한국사로 다시 통합됐다. 분권됐던 교과서가 각각 일대일로 통합되는 과정에서 근현대사 비중이 이전의 30% 내외에서 절반가량으로 치솟았고 2015 교육과정 한국사에서 정점을 찍게 된 것이다. 이와 관련해 교육부는 중학교~고등학교 교과서의 연계 기술로 중학교 과정에서 전근대사 비중이 커 고교에서는 줄어든 것이라 설명한다. 하지만 반만년 역사 중 특정 부분만을 전체의 4분의3에 걸쳐 학습하는 것은 여전히 과도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특히 8개 교과서 모두가 동일한 구조로 구성돼 연말까지 교과서 선택을 마쳐야 하는 각급 학교 입장에서는 피해갈 여지도 없는 상태다.
교육계의 한 관계자는 “특정 시기를 과도하게 부풀린 역사 교과서는 특정 정권의 역사관이 반영된 국정교과서 못지않게 획일적이고 편향적일 수 있다”며 “역사적 평가가 마무리되지 않은 현대사의 기술을 적절히 제어하는 등 새 교과서에 개선이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