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인기 아이템인 펭수 다이어리마저 없었다면 인쇄소가 멈출 뻔했습니다.”
매년 연말이면 캘린더와 다이어리를 찍어내는 기계 소리로 요란했던 서울 충무로 인쇄 골목에서 연말특수가 사라진 지 오래다. 대다수의 기업이 직원 배포용 물량 외에는 제작물량을 절반 이상 줄인데다 젊은 직장인들 역시 회사에서 배포하는 다이어리 대신 자신의 취향에 맞게 구입한 다이어리를 선호하는 탓이다. 특히 비용절감을 위해 아예 중국에서 제작하는 기업들이 늘었다는 게 인쇄 업체들의 전언이다. 한 인쇄소 사장은 “기업의 경우 이제 일반인 배포물량은 거의 절반 이하로 줄었고 그나마 제작하는 물량도 VIP용 고급용지라 영세 인쇄 업체는 손대기 어렵다”며 “선거특수까지 사라진 요즘은 기업에서 수 천부 단위의 소량주문만 받아도 감지덕지”라고 토로했다.
매년 여행사진전 등을 통해 특색 있는 달력을 만들어왔던 대한항공은 올해부터 벽걸이 달력 배포를 중단했다. 대신 직원들에게 매년 2개씩 제공하던 탁상용 달력을 올해는 3개씩 제공하기로 했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스마트 기기를 통한 일정관리가 보편화되면서 벽걸이용 달력은 제작이 축소되는 추세이고 대외적으로도 벽걸이 달력을 선호하는 비중이 줄어들어 탁상용만 제작하게 됐다”고 밝혔다. 삼성전자 등 정보기술(IT) 업체들 또한 회사 로고가 새겨진 직원용 다이어리 정도만 배포할 뿐 별도로 달력 등은 제작하지 않고 있다. 한 그룹사 관계자는 “예전에는 주요 계열사에서 달력 요청 등이 있었지만 스마트폰 보급 등이 확산된 수년 전부터 관련 요청이 없다”며 “단순 비용절감 차원을 넘어 내부 수요가 없기 때문에 달력 제작을 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은행권도 차츰 연말 홍보용 달력과 수첩 제작을 줄여가는 추세다. 2000년대 초반만 해도 연간 달력 제작 부수가 은행마다 500만부에 달했지만 요즘은 300만부선에 그친다. 한국씨티은행은 스마트폰으로 일정을 관리하는 데 익숙해진 라이프스타일의 변화에 발맞춰 이미 지난 2017년부터 고객 배포용 달력과 다이어리 제작을 중단했다. 대신 제작비용 일부를 세계자연기금(WWF)에 기부하고 고객 편의 제고를 위해 은행의 디지털뱅킹 역량을 강화하는 데 쓰기로 했다. 씨티은행 관계자는 “예전처럼 종이 달력을 많이 쓰지 않다 보니 달력 제작비용을 자연을 위해 기부하고 고객 혜택 강화에 투자하는 게 더 낫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라고 말했다. 신한은행의 한 관계자도 “올해는 지난해와 비슷한 규모로 달력을 제작했다”면서도 “예전에 비하면 달력이 필요하다고 본점에 요청하는 영업점이 줄어드는 추세여서 제작 부수도 서서히 줄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은행들은 다른 업권에 비하면 달력이나 다이어리 제작을 대폭 줄이기 어렵다는 반응이다. 아직도 연말이면 ‘은행표’ 달력과 다이어리를 기다리는 고객들이 많기 때문이다. 매일 영업점에서 고객과 만나다 보니 고객서비스 차원에서 유지해야 할 필요도 있다. 실제 A은행의 경우 2015년 말 390만부 제작했던 달력과 포켓용 수첩을 2016~2017년 말 380만부로 줄였다가 지난해부터 다시 385만부로 늘려 제작했다. B은행도 올해 내년도 벽걸이·탁상 달력과 수첩을 지난해와 똑같은 수량으로 만들어 배부했다. 은행권 관계자는 “11월부터 영업점을 찾아 내년도 달력을 요청하는 고객들이 많다”며 “비대면 채널 거래가 늘면서 종이 달력에 대한 수요도 감소할 줄 알았는데 상대적으로 다른 업권에서 달력 배포가 줄다 보니 대신 은행에서 찾는 것 같다”고 말했다. /빈난새·양철민기자 binthere@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