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지원 끊겨 다시 쪽방行”...운좋게 나가도 결국 돌아오죠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의 하소연]

임대주택으로 옮겨가는 순간

쪽방촌서 받던 혜택 사라지고

이웃과도 단절된채 외로운 삶

정부 유인책이 궁지 내모는 셈

생활고 심하지만 상실감 더 커

이웃과 함께해야 자립 힘 생겨

30일 서울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 주민들이 사랑방을 나서고 있다. /손구민기자30일 서울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 주민들이 사랑방을 나서고 있다. /손구민기자



# 30대 후반인 여성 A씨는 2년 전 서울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에서 나와 번듯한 임대주택에 입성했다. 쪽방촌 주민들의 부러운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임대주택에 입주할 때만 해도 A씨는 새로운 보금자리에서 ‘제2의 인생’을 시작할 수 있다는 장밋빛 희망에 부풀었다. 하지만 그로부터 2년이 흐른 지금 A씨는 다시 동자동으로 돌아오게 될 처지에 내몰렸다.

쪽방촌 주민들을 대상으로 임대주택을 지원하는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정책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커지고 있다. 이들이 임대주택에 입주하는 순간 쪽방촌에서 누리던 각종 지원혜택이 사라지면서 경제적 어려움에 내몰리는 탓이다. 쪽방촌을 벗어난 임대주택 입주민의 적응을 도울 수 있도록 주거비 현실화와 정서적 유대감 확보 등 보다 세심한 대책 마련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30일 동자동 쪽방촌 내 사랑방에서 만난 A씨는 매달 10만원씩 내야 하는 월세를 1년 넘게 내지 못해 현재 180만원이나 밀린 상황이다. 더군다나 내년까지 임대차 연장을 하려면 증액보증금 100만원을 추가로 내야 하는데 목돈을 마련할 형편도 못 된다고 한다. A씨는 “당장 31일까지 증액보증금을 내지 못할 경우 나중에 관계기관이 소송을 걸면 집에서 쫓겨날 수 있다고 한다”며 하소연했다. 답답한 마음에 자문이라도 구해볼 요량으로 동자동 사랑방을 다시 찾은 그는 “괜히 임대주택으로 가서 이렇게 됐다”면서 “솔직히 월세가 밀릴 때마다 죽을 생각도 많이 했다”고 자책했다. A씨는 매달 받는 기초생활수급비 65만원 말고는 별다른 소득이 없는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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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일 서울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의 한 다세대주택. 낮고 낡은 주택과 뒤편의 고층건물이 대비를 이루고 있다. /이희조기자30일 서울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의 한 다세대주택. 낮고 낡은 주택과 뒤편의 고층건물이 대비를 이루고 있다. /이희조기자


동자동 쪽방촌 주민들은 서울역 쪽방상담소와 동자희망나눔센터, 동자동 사랑방 등을 통해 생활물품을 지원받는다. 쪽방상담소는 사회복지법인 온누리복지재단이 서울시로부터 위탁받아 운영하는 복지기관으로 매년 10억원 정도의 예산을 지원받고 있다. 동자동 쪽방촌 주민이라면 누구나 상담소의 회원이 돼 라면 등 식료품과 전자제품 등을 제공받는다. 쪽방상담소 관계자는 “이곳 주민들은 무엇보다 생필품 지원을 가장 좋아하고 필요로 한다”고 전했다. 동자동은 서울의 대표적 주거 열악지역으로 알려지면서 정부 지원뿐 아니라 종교계의 자원봉사와 정치권의 지원 등을 항상 받아왔다.

쪽방촌


하지만 이러한 지원과 관심은 쪽방촌을 벗어나는 순간 사라진다. 당장 쪽방상담소 회원 자격이 박탈되면서 모든 지원이 끊긴다. 서울시에 따르면 현재 쪽방촌에서 살던 1,484명은 시세보다 저렴한 임대주택 1,133채를 지원받아 생활하고 있다. 주로 보증금 100만원에 월세 10만원이며 월세와 첫 보증금 납부는 정부에서 일부 지원된다. 하지만 입주민 대다수가 경제적 자립도가 떨어지다 보니 당장 생활고에 직면하게 된다. 쪽방촌에서 받던 생필품 지원이 끊기고 전기세와 도시가스비도 스스로 해결해야 하기 때문이다. 서울시 측은 “생활 용품 등을 지원해주는 사업도 하고 있다”는 입장이지만 임대주택 거주자들은 관련 정보를 알지 못하고 있다. 쪽방상담소 관계자는 “임대주택으로 갔다가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다시 동자동으로 돌아오는 사람들이 수두룩하다”고 설명했다. 서울시는 아직 이러한 통계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또 이들의 건강과 경제상황 등을 점검하고 상담해주는 역할을 하는 사례 관리자들이 턱없이 부족한 것도 문제다. 사례관리자 11명이 1,000명 넘는 주민들을 살피는 실정이다.

30일 서울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의 한 다세대주택에 방이 늘어서 있다. /손구민기자30일 서울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의 한 다세대주택에 방이 늘어서 있다. /손구민기자


쪽방촌 주민이 임대주택에 성공적으로 안착하기 위해서는 일자리 알선 등 실질적인 자립지원과 함께 관리인력 확충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석재은 한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기초수급을 받더라도 임차료를 내다보면 최저생활이 안 되는 경우가 많다”며 “보증금 납부 등 주거비 지원을 좀 더 현실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쪽방촌 이웃주민들이 함께 임대주택에 입주해 정서적 유대감을 갖도록 하는 것도 대안으로 제시된다. 서울시 관계자는 “LH와 서울주택공사(SH)가 10개 세대를 마련해 쪽방촌 주민들이 같이 들어가면 유대감이 생겨 버텨나갈 수 있다”며 “실제로 최근 7세대에 함께 입주한 쪽방촌 주민들은 지금도 잘 생활하고 있다”고 말했다.

손구민·이희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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