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이 숫자가 왠지 익숙하다면 혹시 추억의 만화영화 ‘우주의 원더키디’를 떠올리신 건 아닌가요? 1989년 KBS2TV에서 방영했던 이 만화는 2020년을 배경으로 지구에서 새로운 행성으로 떠나는 13세 소년 아이캔의 여행을 다루고 있는데요. 비행선을 타고 우주를 날아다니고 캡슐에 담긴 알약으로 식량을 대체하는 아이캔의 모습은 당시 어린이들에게 ‘2020년이 되면 나도 저렇게 할 수 있겠지’란 상상을 하게 만들었죠. 원더키디 외에도 많은 SF영화와 소설들은 우주·로봇·뇌·범죄 등 다양한 영역에서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했는데요. 과거 우리가 예상했던 대로 미래가 변했을까요? 서울경제와 함께 추억 소환하러 떠나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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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발짝 더 가까워진 우주왕복의 꿈
서기 2020년 지구에서 폭발적인 인구 증가, 자원 고갈의 위기, 심해진 환경 오염 문제 등으로 생활고를 겪게 될 처지에 놓인 인류. 원더키디가 설정했던 미래의 지구입니다. 사실 지구 환경의 황폐화나 기술 발전으로 인류가 다른 행성으로 이주하는 이야기는 SF 장르의 단골 손님입니다. ‘인터스텔라’, ‘패신저스’도 지구 밖으로 떠나는 인류의 모습을 담고 있죠.
현실에서도 비슷한 도전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일론 머스크의 민간 로켓 업체 ‘스페이스 X’가 대표적인데요. 스페이스X는 지난해 테슬라의 전기차를 실은 팔콘 헤비 로켓을 우주로 쏘아 올렸고, 지난 4월에는 초대형 ‘팔콘 헤비’ 로켓 발사에 성공했습니다. 특히 ‘팔콘 헤비’에 사용한 추진체 로켓 3개를 모두 회수한 것은 로켓 재활용이 가능해졌다는 의미여서 전 세계를 떠들썩하게 했지요. 이에 질세라 아마존 CEO 제프 베조스가 설립한 우주 벤처기업 ‘블루 오리진’은 자사가 개발한 로켓 ‘뉴 셰퍼드(New Shepard)‘의 6차 시험 발사와 캡슐 회수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고 올해 5월 발표했습니다. 베조스는 사전에 지구촌 곳곳의 어린이들에게 엽서를 실어 우주로 쏘아 올린 후 우주에서 돌아온 캡슐에서 엽서를 꺼내 인증 도장을 찍어 어린이들에게 되돌려주는 이벤트도 했다고 합니다.
■‘현실판 리얼스틸’ 로봇 스포츠는 어디까지 왔나요
‘로봇 복싱’이라는 독특한 소재를 들고 찾아온 2011년 미래 SF 영화 ‘리얼스틸’ 기억하시나요? 영화 리얼스틸은 1950년 리처드 매드슨의 원작 소설 ‘스틸’을 각색해 만든 영화인데요. 영화 속 복싱 로봇은 사람처럼 두 발로 걷고 두 팔을 휘둘러 싸웁니다. 잽, 스트레이트, 어퍼컷 같은 복싱 기술도 자유자재로 구사합니다. 최근 로봇 연구가 점점 진화하며 이런 인간형 로봇 조작이 현실화하고 있는데요. 지난 7월 중국에서 열린 ‘로봇 파이팅 챔피언십’에서는 선수들이 모션 인식 컨트롤러를 착용하고 로봇을 조종했습니다. 로봇은 착용자의 움직임에 따라 반응하며 승부를 겨루고 조종사가 팔을 휘두르면 그 동작에 맞춰 움직입니다. 싱크로율이 좋아 현장에서는 “현실판 리얼스틸이 탄생했다”는 반응이 나왔습니다
로봇을 이용한 스포츠경기는 다양한 영역에서 시도되고 있습니다. MIT 생체모방연구소에서 만든 치타 로봇은 몇 걸음 걷다가 넘어지고 공을 잘못 인식해 헛발질을 하기도 하지만 축구 시합 비슷한 규칙으로 승부를 겨루는 단계에는 도달해있다고 합니다. 대회 주최 측은 “2050년이면 로봇들이 인간 월드컵 우승팀을 상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하니 앞으로 어떻게 로봇이 진화해있을지 기대가 되네요. 바둑도 로봇과의 경쟁이 한창입니다. 구글 딥마인드의 바둑AI ‘알파고’는 2016년 3월 이세돌9단을 꺾어 한국 사회에 한차례 충격을 안겨줬죠. 2017년 딥마인드는 한 번 더 진화한 ‘알파고 제로’를 개발해 입력된 정보 속에서 가장 좋은 수를 찾았던 알파고와 달리 백지 상태에서 스스로 학습하며 실력을 닦는다고 합니다. 머지않은 미래 우리는 어떤 로봇 스포츠를 마주하게 될까요.
■당신의 뇌 속에 칩을 심을 수 있다면
1987년부터 8편의 ‘컬처 시리즈(Culture Series)’를 발표하며 자신이 생각하는 미래 사회의 유토피아를 그린 이언 뱅크스. 그가 남긴 미래 사회의 모습에는 ‘뉴럴 레이스(neural laces)’라는 말이 등장합니다. ’신경 그물망‘으로 번역되는 이 기술은 사람의 뇌와 인공지능을 연결한다는 뜻인데요. 영화 매트리스에도 이 기술이 연상되는 장면이 있었죠. 주인공 네오가 순식간에 무술의 달인이 되고, 기능을 뇌에 다운로드해 전 세계 언어를 구사하는 모습 말입니다. 구글의 이사이자 미래학자인 레이 커즈과일은 2020년을 두고 “인간의 몸에 나노 로봇을 넣을 수 있을 것”이라고 예언했는데요.
2016년 일론 머스크는 “AI가 인간보다 더 똑똑해지면 인간이 AI의 애완 고양이 신세가 될 수 있다”며 뉴럴링크라는 회사를 설립했습니다. 뉴럴링크의 목적은 인간의 뇌를 인공지능 수준으로 만들어 정보처리 능력을 높이는 것으로 인간의 지능을 더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데 있습니다. 지난 7월 뉴럴링크 연구진은 쥐의 뇌에 이식했던 센서 1,500개에서 정보를 전송받아 읽어내는 데 성공했습니다. 또 원숭이를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는 원숭이 뇌에 이식된 임플란트를 통해 외부 컴퓨터를 제어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현재 뉴럴링크는 인간에게 직접 테스트하기를 희망한다며 미 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을 기다리고 있는 상태입니다. 뉴럴레이스가 상용화된다면 우리는 당장 암기하고 계산하는 일들을 할 필요가 없어지게 될까요?
■10년간 우리 손 안에서 변화한 기술, 스마트폰
기술 변화를 가장 체감하기 좋은 도구가 하나 있습니다. 바로 ‘스마트폰’ 인데요. 스마트폰 도입 초기인 2010년대에는 일부 IT에 관심 많은 20대와 30대가 주요 고객층이었지만 지금은 스마트폰을 쓰지 않는 사람을 찾기 힘듭니다. 스마트폰 이용자가 늘어나면서 애플리케이션 시장도 동시에 진화했습니다. 사용자들은 백화점 쇼핑하듯 앱스토어에서 원하는 기능을 가진 애플리케이션을 다운로드 받습니다. ‘네이게이션 폰’, ‘게임폰’ 등 기능성 폰을 살 필요가 없어진 겁니다. 비슷한 시기인 2010년 3월, 모바일 인스턴트 메신저 ‘카카오톡’이 탄생했죠. 이제 카톡은 비즈니스 업무에서도 무리 없이 통용될 정도로 막강한 기능을 자랑합니다. 2010년 후반에는 ‘mp3폰’, ‘pmp폰’ 등 동영상을 볼 수 있는 기능성 폰이 보급됐고, 3G, 4G 등 인터넷 망이 개선되며 이젠 어디서나 원하는 것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는 스트리밍 시대가 열렸습니다. 스마트폰은 충전기, 스피커, 헤드셋, 블루투스, 결제시스템 등 과거에 없던 새로운 시장도 창출했습니다.
■디지털포렌식부터 DNA 검증까지…첨단 범죄 수사의 진화
과학 기술의 진화가 가져온 또 다른 반가운 소식은 바로 ‘범죄 수사’ 영역입니다. 가장 대표적으로 1980년대 국민을 공포로 몰아넣었던 화성 연쇄살인 사건을 예로 들 수 있는데요. 무려 33년간 미제 사건으로 남아있던 이 사건은 지난 9월 유력 용의자의 30여 년 전 증거품에서 경찰이 DNA를 추출해내며 범인을 잡아낼 수 있게 됩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따르면 현장에서 채취된 극히 적은 양의 시료에서도 DNA를 검출할 수 있고, DNA를 증폭하는 ‘중합효소 연쇄반응 기법’을 이용해 1ng(나노그램)의 시료로도 감정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DNA 추출 외에도 놀랍게 진화한 수사기법이 바로 ‘디지털 포렌식’ 기법인데요. 디지털 포렌식 기술이란 전자증거물을 사법기관에 제출하기 위해 스마트폰, PC, 서버 등에서 자료를 수집, 분석하는 디지털 수사과정을 뜻합니다. 디지털 포렌식의 발전으로 세월호 참사 당시 승객과 가족이 나눈 카카오톡 대화, 숙명여고 시험지 유출사고의 결정적 증거, 정준영 카톡방 대화 등 결정적 자료들이 복원됐고 그 결과 사건의 전말이 세상에 드러나게 됐습니다. 이런 추세라면 영화 ‘마이너리티리포트’가 예측한 세계처럼 30년 뒤인 2050년에는 범죄를 한 발짝 예측해 범인을 지목하고, 로봇이 현장에서 용의자의 특징을 분석하는 일들이 정말 가능해질지도 모를 일입니다.
/정수현기자 구현모·조성준 인턴기자 value@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