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경제의 신년 설문에 참여한 전문가들은 새해 경기 부진을 타개할 핵심 방편으로 ‘최저임금 동결’을 지목했다. 또 노동개혁을 통해 잠재성장률을 끌어올리는 한편 데이터·인공지능(AI)·바이오 분야의 규제를 철폐해 신(新)산업 육성에 속도를 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최저임금 올라 자영업자 벼랑끝에
이번 설문에서 내년도 최저임금 수준에 대한 물음에 전문가의 46%는 ‘동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올해(2.87%)보다 낮은 수준으로 결정해야 한다’는 답변은 41%였으며 ‘2.87~5.0% 인상’ ‘5.0% 인상’ 등은 각각 8%, 3%에 불과했다. 최저임금은 지난 2017년 출범한 문재인 정부가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추진하면서 2018~2019년 무려 29.1%나 급등했다. 산업계를 중심으로 속도 조절의 필요성이 제기되면서 올해는 지난해보다 2.87% 오른 8,590원으로 책정됐다. 최저임금의 가파른 상승은 자영업자의 소비 부진을 초래하면서 국내 경기가 침체의 늪으로 빠져드는 악재로 작용했다. 전문가들은 지난해 한국 경제를 떠받치는 허리 세대인 40대 일자리 시장이 급격히 위축된 원인으로도 최저임금 인상을 꼽았다. 복수응답으로 진행한 이 문항에서 43%는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을 언급했으며 59%는 ‘대내외 경기 침체’를 택했다. ‘노동시장의 경직성 및 이중구조’를 지목한 전문가도 55%에 달했고 ‘생산가능인구 감소 등 인구구조 변화(19%)’ ‘공장 자동화 및 해외 이전(15%)’ 등도 고용 시장 악화의 요인으로 거론됐다. 올해도 한국의 경제 성장률이 잠재 성장률(2.5~2.6%)을 밑돌 것으로 예측되는 가운데 상당수 전문가가 경기 활력을 제고하기 위해 제시한 중장기 과제도 노동 부문의 구조개혁이었다. 역시 복수응답이 가능한 이 문항에서 전문가 100명 가운데 무려 73명이 ‘노동시장 유연성 강화 등 노동개혁’을 주문했다. 지금처럼 해고 요건이 까다롭고 대기업·정규직 노조와 비정규직 근로자의 격차가 심한 이중구조를 해소하지 않으면 저성장의 어두운 터널을 빠져나오기 쉽지 않다는 조언을 건넨 셈이다. 또 58명의 전문가는 분야를 가리지 않고 대못처럼 박혀 있는 ‘규제 완화’의 필요성을 역설했고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걸맞은 교육개혁’을 지목한 응답자도 51명이나 됐다.
정부, 민간 지원 시스템 구축해야
전문가들은 렌터카 기반의 차량호출 서비스인 ‘타다’ 등 신산업에 대한 정부의 정책 구상에는 거침없는 질타를 쏟아냈다. 앞서 정부는 지난달 중순 발표한 ‘2020년 경제정책방향’을 통해 신산업과 기존 사업 플랫폼이 충돌할 경우 ‘상생혁신기금’을 조성하고 이익공유 협약 체결 등을 유도해 사회적 대타협에 이른다는 로드맵을 제시한 바 있다. 이번 설문에서 ‘정부의 구상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답한 전문가는 55%에 달한 반면 ‘바람직하다’고 말한 응답자는 29%에 불과했다. 정부 계획을 부정적으로 평가한 전문가 중 한 명은 “사회적 타협은 결국 무책임한 허구적 선동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또 다른 전문가는 “정부의 역할은 갈등을 조율해 신산업 성장의 장애 요인을 제거하는 것”이라며 “신산업을 시도하는 경제 주체에 사회적 부담을 지우는 것 자체가 신산업의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행위”라고 꼬집었다.
‘성장동력 회복’과 ‘신산업 발굴’을 위해 가장 주력해야 할 분야에 대한 질문에도 다양한 의견들이 제기됐다. 우선 가장 많이 언급된 분야는 ‘데이터 경제’로 전문가 75명의 선택을 받았다. 4차 산업혁명 시대의 핵심 기술인 AI는 73명, 급속한 인구 고령화로 시장 규모도 덩달아 커지고 있는 바이오·의료는 64명이 지목했다. 이밖에 미래 차(38명), 5세대(5G) 이동통신(33명), 핀테크(26명) 등도 다수 응답자가 성장동력 회복의 견인차로 꼽았다. 이와 관련해 한 전문가는 “‘찬밥·더운밥’을 가릴 시간이 없다”며 “정부가 민간 부문의 활동을 제약하지 않으면서 든든한 지원으로 뒷받침하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종=나윤석기자 nagija@sedaily.com
■설문에 참여해주신 분들
권태신 한국경제연구원장, 김낙회 율촌 고문(전 관세청장), 김동수 고려대 미래성장연구소장(석좌교수), 김소영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김상봉 한성대 교수, 김용근 경영자총협회 상근부회장, 김주훈 KDI 선임연구위원,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 김태준 동덕여대 교수, 김호원 서울대 산학협력중점 교수, 김홍기 한남대 경제학과 교수, 김현욱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류기정 경총 전무, 류덕현 중앙대 경제학부 교수,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전문위원, 박재환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 박정수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 박창균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박철성 한양대 교수, 박태호 법무법인 광장 국제통상연구원장, 박진 KDI대학원 교수, 박훈 서울시립대 교수, 박형수 전 조세재정연구원장, 배상근 전국경제인연합회 전무,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 송두한 NH금융연구소장, 송인호 KDI 경제전략연구부장, 송홍선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 신석하 숙명여대 교수, 신성환 홍익대 교수, 신세돈 숙명여대 명예교수, 안재빈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오동윤 동아대 경제학과 교수, 윤동열 건국대 경영학과 교수, 이경상 대한상공회의소 경제조사본부장, 이민희 IBK투자증권 애널리스트, 이성호 이노디랩 대표, 이병태 KAIST 교수, 이인실 서강대 경제대학원 교수, 이창목 NH투자증권 리서치본부장, 이필상 서울대 경제학부 초빙교수, 장보형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수석이코노미스트, 장세진 인하대 경제학과 명예교수, 장윤종 포스코경영연구원장, 전병목 한국조세재정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정철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부원장, 조경엽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장, 조병선 중견기업연구원장, 조동근 명지대 교수, 조장옥 서강대 명예교수, 주동헌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 최인 서강대 경제학부 교수, 추광호 한국경제연구원 일자리전략실장, 한순구 연세대 교수, 홍기용 인천대 경영학과 교수, 홍우형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 홍종호 서울대 교수, 허재준 한국노동연구원 고용정책연구본부장, 허윤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 <가나다순> *익명 요청한 응답자 41명은 제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