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현지시간) 이란 중북부 종교도시 쿰의 잠카란 모스크(이슬람 사원) 돔 정상. 전날 미군의 공습으로 사망한 가셈 솔레이마니 고드스군(이란 혁명수비대 정예군) 사령관의 영정을 앞세운 종교 관계자가 올라오더니 붉은 깃발을 꺼내 첨탑 위에 게양했다. 이란 국영방송은 이를 중계하면서 순교의 피가 흐를 격렬한 전투가 임박했다고 전했다.
이란이 솔레이마니를 살해한 미국에 대한 보복의 뜻을 천명하고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이란 52곳에 반격할 태세가 돼 있다고 재차 경고하며 중동지역의 전운이 한층 고조되고 있다.
이날 트럼프 대통령은 트윗을 통해 “그들이 다시 공격한다면 우리는 그들이 당해본 적 없는 강한 공격을 가할 것”이라며 “2조달러를 군비로 지출한 미국은 세계 최대이자 최고이며, 이란이 미국을 공격한다면 우리는 아름다운 최신 군사장비를 주저 없이 그들에게 보낼 것”이라고 경고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트윗은 이란 내 군사 움직임이 포착되자 나온 것으로 알려져 긴박함을 더했다. 뉴욕타임스(NYT)는 “이란 전역의 탄도미사일 부대가 전투태세를 강화하고 있다는 정보기관들의 첩보에 이날 트럼프 대통령이 경고성 발표를 내놓았다”고 전했다.
이에 이란은 미국에 ‘군사적으로 대응’하겠다며 맞섰다. 호세인 데간 이란 최고지도자 군사자문관은 5일 미 CNN방송과의 단독 인터뷰에서 “(이란의) 대응은 틀림없이 군사적일 것이며, (미국의) 군사기지를 대상으로 할 것”이라고 밝혔다. 데간 자문관은 “이 시국을 끝낼 유일한 방법은 미국이 타격한 것에 준하는 타격을 받는 것”이라며 “이후 새로 반복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4일에는 미국 연방정부기관의 인터넷 홈페이지가 이란 해커를 자처하는 세력으로부터 사이버공격을 당해 이란이 사이버전에 나선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왔다. 해커들은 미국 연방출간물도서관프로그램(FDLP) 홈페이지를 해킹하고 ‘범죄자들의 앞에는 가혹한 복수가 기다리고 있다’는 글을 올렸다. 이란이 그간 댐이나 발전소 등 주요 산업 인프라를 겨냥한 공격능력을 갖추고 맹목적 충성을 맹세한 ‘사이버군대’를 양성해온 만큼 추후 대대적인 사이버공격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라크에서도 전운이 감돌고 있다. 친이란 시아파민병대(PMF) 산하의 카타이브헤즈볼라가 이라크 내 미군기지 공격을 예고한 가운데 이날 미군이 주둔 중인 알발라드 기지와 미 대사관이 있는 그린존에 대한 포격이 잇달았다. 또 이라크 바그다드 북부 알타지 지역 도로에서 4일(현지시간) PMF 차량 1대가 공습당해 6명이 숨지고 3명이 중상을 당했다고 이란 국영방송 등이 보도했다. 다만 미군 주도의 국제동맹군 대변인 마일스 커긴스 대령은 자신의 트위터에 “국제동맹군은 알타지 지역에서 최근 공습작전을 펴지 않았다”고 밝혔다.
일촉즉발의 위기상황이 이어지자 미국은 이라크 내 미국인들에게 대피령을 내린 데 이어 중동에 대한 병력 증파를 본격화했다. 이날 AP통신은 미군 수백명이 노스캐롤라이나주의 포트브래그 기지에서 쿠웨이트를 향해 떠났다고 보도했다. 또 미군 82공수부대 대변인 마이크 번스 중령이 “82공수부대 내 신속대응 병력 3,500명이 수일 내로 중동에 배치될 것”이라고 밝히는 등 추가 파병이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일각에서는 이란이 예멘의 친이란 후티반군과 이라크 시아파 민병대, 레바논의 시아파 무장정파 헤즈볼라 등을 이용해 중동 전역에 혼란을 일으킬 가능성도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NYT는 “이라크 시아파 민병대는 이란에 가장 효과적이고 유용한 군사도구”라며 “솔레이마니를 대신해 새로운 고드스군 사령관에 임명된 에스마일 가니 준장도 (민병대를 활용하는) 기존 전략을 변경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미국과의 긴장이 고조될 때마다 원유수출로인 호르무즈해협 봉쇄 카드를 꺼내 든 이란은 또다시 이 전략을 이용할 가능성도 시사한 상태다. 국제유가는 최근 솔레이마니 사령관 사망 이후 중동산 원유 공급 차질에 대한 우려로 급등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