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15일 미중 양국이 명운을 걸었던 무역협상이 제1단계 합의 서명을 앞두고 있다. 그러나 이 합의가 문제를 해결할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별로 없다. 오히려 양국이 ‘가치와 이념의 거리’를 벌리면서 각자도생의 길을 갈 것이라고 보고 있다. 실제 중국은 마르크스주의의 기치를 다시 내걸었다.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기관지 ‘구시(求是)’ 신년 호에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중국 특색 사회주의를 견지하자는 문장을 실었다. 국정운영 곳곳에 중국공산당의 지도를 강조하는 한편 ‘당 중앙의 핵심’ 반열에 오른 시진핑 사상에 대한 학습열도 나타나고 있다. 지난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만나 했던 “국제와 지역정세가 어떻게 변하든 사회주의 북한에 대한 지지는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발언도 이러한 맥락에서 나온 것이다.
이는 중국의 부상에 따른 체제 자신감의 표출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국제정세의 불확실성과 체제 원심력이 커지는 상황에 대한 위기의식의 발로이기도 하다. 새해부터 중국 관변 언론은 ‘일찍이 없었던 백년의 대변국(大變局)’을 바로 봐야 한다고 선전전을 벌이며 국민들의 애국심을 고취하고 있다. 시 주석도 신년사에서 “애국주의 감정은 우리의 눈시울을 더욱 뜨겁게 만들었고 애국주의 정신은 우리 민족의 근간을 이뤘다”는 등 감성에 호소하고 있다. 또 2019년 말 기준 1인당 국내총생산이 1만달러를 돌파한 상태에서 ‘중진국 함정’을 극복하고 ‘전면적 소강사회(생활이 초보적으로 풍요로운 상태)’를 건설하기 위한 총동원을 내렸다. 이렇게 해야만 내년 중국공산당 창당 100년을 앞두고 업적정당성(performance legitimacy)을 과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중국은 고도로 집중된 권력이 공산당의 위기를 가중시켰다고 보고 당과 정부를 분리해 권력분산을 추진해왔다. ‘개혁개방의 총설계사’로 불렸던 덩샤오핑의 정치적 업적도 바로 여기에 있었다. 이는 정치의 숨통을 틔워야만 개혁개방도 안착할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이후 지도부들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집단지도체제의 틀을 대체로 지켜왔고 ‘붉은 자본가’를 당원으로 받아들이는 등 혁명당에서 집권당으로 변신을 꾀했다. 서구와 같은 야당이나 재야의 개념이 없는 상태에서 나름대로 당·국가체제를 탄력적으로 유지해왔던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보면 시 주석 집권 이후 당 우위 체제와 집단지도체제의 약화, 홍콩 문제 처리과정에서 나타난 거버넌스 위기, 불평등 확산, 지식사회의 통제와 위축 등은 중국 정치개혁의 역류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중국 정치의 흐름은 미국 민주주의와 패권의 문법을 벗어난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미국 우선주의’와 맞물려 적대적 공존이 더욱 고착됐다. 미국은 더 이상 자유주의 규범을 제공하는 데 실패했다. 연초 이란 군부실세 암살은 미국 외교의 철학적 빈곤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중국도 인류운명공동체와 일대일로와 같은 중국식 세계화 담론을 발신하고 있으나, 역사적 기억을 가진 주변 국가들은 이를 수용할 의지가 약하고 경계심마저 보이고 있다. 이처럼 미국과 중국 모두 안정적 규범(stable norm)을 제공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한중 양국의 ‘보편가치의 거리’도 넓어지고 있다. 이것이 바로 지금 여기서 “중국은 우리에게 무엇이고, 무엇이어야 하는가”를 다시 질문하는 이유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어떤 매력자산을 가지고 있는지 자문해볼 필요도 있다. 현재 행복지수(better life index)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의 평균 이하이며 “나는 지금 행복하다”는 만족도는 10점 만점에 4.0점에 불과하다. 더욱이 공론장이 무너지고 광장의 정치가 만연하면서 정당의 위기가 가중되고 있다. 결국 ‘아무도 흔들 수 없는 국가’는 민주주의의 자산을 축적할 때 장기적인 대중국정책 수립의 맷집과 상상력을 제공해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