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가전·정보기술(IT) 전시회인 ‘CES 2020’ 현장에서 만난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굉장한 위기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이번 CES에서 확인됐듯이 업종 간 장벽이 빠르게 무너지고 있지만 우리 기업들은 규제 장벽에 막혀 해외 기업의 시장 잠식을 바라만 보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박 회장은 “규제의 틀을 근본적으로 바꿔 우리 기업이 새로운 사업기회를 적극적으로 찾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9일(현지시간) ‘CES 2020’이 열리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서울경제와 만난 박 회장은 “데이터 3법이 통과된 것은 다행이지만 아직 문제가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박 회장은 전날 라스베이거스에서 데이터 3법의 국회 통과 소식을 들은 직후 페이스북에 “만세! 드디어 데이터 3법 통과! 애써주신 모든 분들 정말 감사드린다”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하지만 이날 만난 박 회장은 ‘데이터 3법’ 다음으로 시급한 규제개혁 과제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규제 문제의 심각성은 개별 사안에 있는 게 아니다”라며 “규제정책의 틀 자체를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개별 규제를 해결해도 다른 규제가 기다리고 있다가 기업의 앞길을 다시 막는 악순환을 이제 끝내야 한다는 것이다.
박 회장은 “지금 규제는 모든 리스크를 원천봉쇄하는 방식”이라며 “우선 허락해주고 사후 관리하기보다 사전에 (정부가) 다 보고 허락해주는 것만 하라는 식이라 기업들이 새로운 일을 벌일 수 없다”고 하소연했다. 박 회장은 규제에 가로막혀 발전이 더딘 국내 드론 산업을 예로 들었다. 그는 “우리 드론 기업들이 규제로 어영부영하는 사이 중국이 전 세계 드론 시장을 다 먹어버렸고 우리 기업들은 전체적으로 뒤처지고 있다”고 말했다.
박 회장이 지적한 대로 규제에 갇힌 대한민국은 ‘CES 2020’이 열린 라스베이거스 컨벤션센터에서 그대로 볼 수 있었다. 인공지능(AI)과 드론·로봇이 한데 모인 컨벤션센터 사우스홀에서 존재감을 뽐낸 국내 기업은 수소연료전지 드론을 선보인 두산뿐이었다. 사우스홀은 사실상 다양한 드론·로봇 제품을 공개한 중국 기업들의 독무대였고 맨 앞의 가장 좋은 자리도 ‘드론의 맹주’인 중국 DJI가 차지했다.
박 회장은 “기술이 빠른 속도로 발전해가는데 어떻게 (정부가) 다 판단해 허락할 때까지 기다리고 허락해주는 것만 할 수 있겠냐”며 “규제 관련 법과 제도를 기업이 자유롭게 일을 벌일 수 있도록 개방적인 네거티브 형태로 바꾸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포지티브 규제’가 허가된 것만 할 수 있다는 것이라면 ‘네거티브 규제’는 불법으로 규정한 것 외에는 모두 자유롭게 허용하는 개방적 방식이다.
박 회장은 직접 본 CES에 대한 소감을 “전시장을 둘러보니 업종 간 구분이 없어지고 기술발전 속도도 예전보다 굉장히 빨라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올해 CES에서는 개인용 비행체를 들고 나온 현대자동차 부스에서 자동차를 찾아볼 수 없고, 가전의 대명사인 일본 전자업체 소니가 자율주행전기차를 전면에 내세우는 등 업종의 경계가 무너지는 현상이 두드러졌다.
박 회장은 올해 CES의 트렌드로는 ‘융복합’과 ‘AI’를 꼽았다. 그는 “기술과 산업의 융복합이 우리 생활에 굉장히 밀접하게 영향을 미치고 AI가 발달하면서 우리가 도구와 사물을 바라보던 사고를 바꿔나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 과정에서 생기는 산업적 기회에 우리 기업들이 어떻게 대처해나갈지가 걱정”이라고 말을 맺었다.
/라스베이거스=이재용기자 jylee@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