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사설] 이쯤해서 ‘촉진자역’ 접는게 어떤가

북한 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문재인 대통령의 촉진자 역할이 난관에 봉착하고 있다. 북한과 미국 모두로부터 외면받으면서 문 대통령의 운신 폭은 급격하게 좁아지는 모습이다. 지난 10일까지만 하더라도 청와대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생일을 축하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메시지를 전달하며 가교 역할에 대한 기대감에 부풀었지만 하루도 안 돼 기대는 무참히 깨졌다. 김계관 북한 외무성 고문은 11일 담화에서 “조미관계의 중재자 역할을 해보려는 미련이 남아 있는 것 같다”며 “끼어들었다가 본전도 못 챙기는 바보 신세가 되지 않으려거든 자중하고 있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이 담화가 주목되는 것은 남북협력을 제안한 문 대통령의 신년사에 대한 북한의 첫 반응이기 때문이다. 북한이 “(북미) 연락통로가 따로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 같다”며 비아냥댄 점을 감안하면 앞으로도 통미봉남(通美封南)을 계속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문제는 미국도 한국의 중재 카드를 마뜩지 않아 한다는 점이다. 미국은 문 대통령의 신년사에 대해 “모든 유엔국은 제재결의를 이행해야 한다”는 냉담한 답변만 내놓았다. 사태가 이 지경이 된 것은 북한이 비핵화를 할 마음이 없기 때문이다. 북한은 김계관 담화에서 제재완화를 위해 핵시설을 포기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핵 폐기 이전에 제재부터 풀라는 뜻이다. 이로써 지난 2년8개월 동안 남북관계 개선을 통해 북미대화를 촉진하려던 문 대통령의 노력은 사실상 수포로 돌아갔다. 오히려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 등을 통해 북한의 핵 보유만 기정사실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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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정부는 북핵 정책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해야 할 때가 됐다. 김 위원장도 밝혔듯이 북한은 핵을 포기할 의사가 전혀 없다. 그런데도 우리만 몸이 달아 남북협력을 외치는 것은 사태를 해결하기는커녕 오히려 더 악화시킬 뿐이다. 정부는 되지도 않는 경제협력을 하느라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지 말고 북핵 폐기에 집중해야 한다. 그것만이 우리의 생존과 안위를 지키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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