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한반도 24시] 미군철수 요구한 이라크, 남의 일 아니다

■홍관희 성균관대 정치외교학과 초빙교수

美·이란 사이 새우등 터진 이라크

친미vs친중·친북 분열 韓과 유사

자유민주국가 정체성 부정 안돼

동맹강화·안보확보 총력 다해야

홍관희 성균관대 초빙교수



미국이 이란의 실세 2인자 가셈 솔레이마니를 드론으로 사살한 후 급속히 고조됐던 전운이 이란 측의 계산되고 절제된 대응으로 가라앉고 있다. 이란으로서는 미국과의 힘의 불균형이 워낙 커 전면전을 불사할 입장이 아니다. 그러나 핵 개발과 반미 이슬람 팽창주의를 포기하지 않는 한 미국과의 마찰은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새뮤얼 헌팅턴이 지적했듯 중동 분쟁의 원인은 단순한 현안 이견이 아닌 세계관과 문명의 충돌이라는 근본적 성격을 띠므로 상황이 복잡하다.

미·이란 관계가 악화하는 와중에서 최대 피해자는 이라크라는 분석이 나온다. 현재 이라크는 사담 후세인 독재정권 붕괴 후 힘의 공백지로 변모하면서 국민들이 친이란계와 친미계로 나뉘어 대리 싸움터가 되고 있다. 이란과는 시아파 이슬람 종파, 미국과는 이슬람국가(IS) 격퇴와 민주화에 대한 명분을 공유한다. 미군과 이란 준군사조직이 이라크 영토 안에서 세력쟁투를 벌이는 가운데 이라크가 미국과 이란 사이에서 양자택일해야 하는 최악의 국면을 맞게 됐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라크가 미국을 배척하며 신정 독재인 이란 영향권에 들어가면 스스로 노예의 길을 선택하는 것과 진배없다.

미국이 솔레이마니와 그와 동행한 이라크 친이란 민병대 간부들을 제거한 직후 이라크 의회는 미국이 영토 주권을 침해했다며 미군 철수를 전격 결의했다. 이어 이라크 자주파로서 친이란 성향을 보이는 아딜 압둘마흐디 이라크 총리마저 미군 철수 이행 절차를 밟자고 미국에 요구했다. 압둘마흐디 총리는 신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이라크가 5,000마일 떨어진 친구인 미국과 5,000년 이웃으로 지내온 이란 사이에 끼어 있으며 지정학과 역사를 바꿀 수 없는 것이 이라크의 실상”이라고 토로했다. 과거 노로돔 시아누크 캄보디아 총리의 ‘중국과 가까운 캄보디아는 중국을 떠날 수 없다’는 인식을 상기시키는데 21세기 통신·교통의 획기적 발달로 지정학적 한계가 극복되고 ‘상호의존’이 확대돼 국제관계의 핵심이 지리적 위치에서 보편적 가치관·세계관으로 바뀌는 현실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미국은 철군 요구에 처음에는 당황했지만 IS 격퇴를 위한 미군기지 건설비용 보상, 대(對)이라크 제재 경고 등 대응논리를 갖춰 철수 요구를 거부했다. 특히 미군 주둔의 목적이 외부 위협으로부터 이라크 국민과 이라크 주재 미국인 및 동맹군을 보호하기 위한 것임을 강조했다. 수니파와 쿠르드계 의원 다수가 표결에 불참해 의회 결의의 합법성을 인정할 수 없음도 분명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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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이란 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이라크로부터 대한민국의 현실을 유추하는 것은 결코 비약이 아니다. 현재 우리는 친미(자유민주주의) 대 친중·친북(인민민주주의)간 이념적 분열이 극심한 가운데 정부가 앞장서 자유민주국가 정체성을 부정하고 적대세력인 북한과 연합하며 동맹정신을 훼손하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7일 신년사에서 국가안보를 위협하는 북한 핵·미사일에 대해서는 한마디 언급도 없이 개성공단·금강산관광 재개 등 대북지원 의지를 표명해 맹목적인 북한 추종이자 비현실적 망상이라는 내외 비판을 받았다.

이에 따라 대북제재를 일관되게 추진하고 있는 미국과 정면충돌할 조짐마저 나타난다. 해리 해리스 주한 미 대사가 남북관계와 비핵화 병행 및 동맹과의 협의 필요성을 언급하자 통일부가 나서 한국이 한반도 문제의 ‘당사자’라며 독자 행동 의도까지 내비쳤다. 북한과의 공조를 위해 한미동맹을 희생시킬 수 있다는 강력한 시사가 아닌가. 지난해 말 64명의 친여 의원들이 중·러의 대북제재 완화 요구를 수용하라는 대미 성명을 낸 것도 이라크 의회의 반미 움직임을 연상시킨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해 12월 말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공언한 ‘새로운 전략무기’란 다탄두(MIRV)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이거나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및 핵 전자기파(EMP)탄일 것이라는 충격적인 분석이 나왔다. 동맹강화와 안보확보가 어느 때보다 시급하다. 호르무즈 파병도 생존에 필수적인 석유 해상수송로 수호를 위해 미국이 주도하는 호위연합체 가담이 정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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