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여객기 격추 사실을 뒤늦게 시인한 이란 정부와 군부를 규탄하는 대학생들의 시위가 사흘째 이어지면서 시위양상이 한층 과격해지고 지방으로도 확산되고 있다. 로이터통신은 13일(현지시간) 이란 시위대가 폭동 진압 경찰과 거리에서 대치하며 사흘째 집회를 이어갔다고 보도했다.
전날 저녁에도 테헤란 남서부 아자디 광장으로 수백명의 젊은이가 모여들었다. 이들은 무장군인과 경찰들이 아자디 광장을 원천봉쇄하자 인근 이면도로를 가득 메웠다. “그들(정부·군부)은 미국이 적이라고 거짓말을 했지만 우리 적은 바로 여기 있다” “부끄러운 지도자, 무능한 지도자” “비겁한 군인들” 등 이란에서는 좀처럼 듣기 어려운 수위의 구호가 울려 퍼졌다.
앞서 11일 테헤란 명문대인 샤리프공대와 아미르카비르과기대에서 이란 혁명수비대의 항공기 격추 희생자를 추모하는 집회에 참석한 학생 수백명이 정부와 군부를 규탄하자 이에 자극받은 시민들이 이튿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약속된 장소로 몰려든 것이다.
시위 참가자들은 체제를 책임지는 지도부가 거짓말을 했다는 점에 분노했다. 12일 시위대가 아자디 광장으로 밀고 들어가려 하자 군경은 최루탄과 공포탄을 발사했다. 고무탄을 맞았다는 시민도 있었다. 또 온라인에는 자욱한 최루가스와 함께 코와 입을 옷으로 가린 시위대의 모습을 담은 영상이 올라왔다. 또 다른 영상에는 보도를 따라 이어진 핏자국과 함께 “7명이 총에 맞는 것을 봤다. 사방에 피다”라는 남성의 목소리가 담겼다.
테헤란·시라즈·이스파한 등에서 시작된 시위는 타브리즈·케르만샤 등 다른 지역으로 번지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현재 집회 참가자가 수백명 수준의 소규모라고 전했지만 로이터통신은 ILNA통신을 인용해 12일 아자디 광장에 모인 인원이 3,000명에 달했다고 보도했다.
이와 관련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2일 자신의 트위터에 이란어와 영어로 “이란 지도자들은 시위대를 죽이지 말라”고 경고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날에도 이란 내 반정부시위대에 대한 공개 지지를 표명하며 이란 정권을 압박했다.
이란 "시위대에 발사 안해" 반박 |
모하마드 자바드 자리프 이란 외무장관은 12일 트위터에 격추 항공기 희생자 유가족을 24시간 지원하는 직통전화(핫라인)를 개통했다고 밝혔다.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이란 최고지도자는 이날 테헤란에서 카타르 군주 셰이크 타밈 빈 하마드 알사니와 만나 “요동치는 중동 정세의 원인은 미국의 부패와 주둔”이라고 비난의 화살을 돌리는 한편 이 위기에 대한 유일한 해법은 긴장완화와 대화뿐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마크 에스퍼 미 국방장관은 CBS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이란에 최대 압박의 제재를 계속하겠다면서도 이란과 전제조건 없이 ‘새로운 길’을 논의할 용의가 있다며 협상을 촉구했다. 로버트 오브라이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도 폭스뉴스에 “최대 압박 작전으로 이란은 질식되고 있고 (협상) 테이블로 나오는 것 말고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이란의 반정부시위는 이란 정부가 경제제재로 직면한 압박을 가중시킨다”고 강조했다. 프랑스·독일·영국은 12일 공동성명을 내고 이란이 2015년 서방과 체결한 핵합의(JCPOA·포괄적공동핵계획)를 완전히 준수할 것을 거듭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