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아직 끝난 게 아닙니다. 지구전의 강자 중국이 만만한 상대는 아니기 때문이죠. 그래도 다시 한번 확인한 것이 있습니다. 트럼프 그리고 미국은 강하다는 점입니다.
두 마리 토끼 잡은 트럼프 ‘원맨쇼’
이날 행사는 흥미로웠습니다. 트럼프 대통령과 류허 부총리가 같이 앉자 서명을 했는데 의전상으로는 맞지 않습니다. 통상을 총괄한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USTR 대표 정도가 맞겠지만 트럼프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업적을 알릴 수 있는 최고의 기회를 그냥 둘 수 없기 때문이죠. 홍보와 미디어 활용에 능숙한 트럼프 대통령도 먹잇감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내용을 보면 알게 됩니다. 이날 트럼프 대통령은 서명식 전에 나와 한 50분을 얘기했습니다. 탄핵을 추진하는 민주당을 비꼬기도 하고 미중 합의에 고생한 관료들을 치하했습니다. 또 서명식에 초대한 기업인을 일일이 호명하면서 자신이 이 자리를 만들었고 중국으로부터 엄청난 양보를 얻어냈다는 점을 과시했습니다. 예를 들어 “지프, 지프는 위대한 기업이다” 이러면서 몇몇 기업에는 “대통령에게 감사해야 한다고 한다”며 너스레를 떨었죠. 또 은행들에는 “믿을 수 없는 실적이다. 내가 수많은 뱅커들을 매우 보기 좋게 했다”며 자신의 감세정책의 효과를 내세웠습니다.
중국의 농산물 수입 부분을 설명하면서는 “중국이 500억달러 규모의 미국산 농산물을 사기로 했다. 공산품 750억달러, 에너지 500억달러 등 총 2,000억달러”라며 “농산물은 공급할 양이 부족하다고 하는데 이를 더 늘리면 되는 것 아니냐”고 했습니다.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중부 팜벨트(농업지대) 표심을 노린 것이죠. 물론 대통령이 언급한 수치는 정확하지는 않았습니다. 어떤 자료를 보고 말했는지는 모르겠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숫자 과장은 한두 번이 아니므로 더 중요하게 봐야 할 것은 그의 정치홍보입니다.
이날 행사는 하원이 트럼프 대통령 탄핵을 위한 결의안 투표 시간과 겹쳤습니다. CNN의 경우 미중 무역합의를 중계하다가 하원을 연결했다가 이를 동시에 중계하기도 했습니다. 결국 시선이 분산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반면 트럼프 대통령은 홍보 효과를 최대한 누렸죠.
中, NPL 시장 뚫은 美…대선 지켜보는 中
이번 합의에 허점이 많은 것은 사실입니다. 중국이 합의 내용을 이행하지 않을 경우 관세를 되돌리는 ‘스냅백’ 조항이 들어가고 대규모 미국산 제품 구매에 지적재산권과 기술이전, 환율에 대한 일부 합의가 있었지만 문제는 여전합니다. 중국이 하지 않으면 그뿐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미국 내에서도 많은 우려가 나오는 부분입니다. 중국이 미국의 보복관세에 재보복을 하지 않겠다고 합의했다지만 최악의 경우 그냥 없던 합의로 하면 끝입니다. 그동안 트럼프 대통령이 많이 보여준 전략이기도 하죠.
그럼에도 미국은 쏠쏠한 재미를 본 게 사실입니다. 앞서 언급했듯 대선을 앞둔 트럼프 대통령의 치적홍보와 탄핵에 대한 관심 분산이 이뤄진데다 수입증가 같은 부분은 어쨌든 중국이 일정 부분은 이행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특히 미국은 이번에 중국의 지방 부실대출 시장에 진입할 수 있는 길을 열었습니다. 무슨 얘기냐구요. 중국의 기업부채가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부채 위기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심각한데, 부실 대출이 앞으로 많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그럼 은행은 회수가 어려운 대출을 다른 곳에 싸게 매각합니다. 대출해준 돈이 1,000원인데 해당 회사가 돈을 못 갚게 되고 회수도 불가능하면 예를 들어 이를 100~200원에 돈을 받을 수 있는 권리를 파는 것이죠. 100~200원이라고 건지니까 그런 겁니다. 그럼 이를 인수한 곳은 해당 기업에 채권추심을 세게 합니다. 그래서 돈을 300원 받으면 100원 이익을 봅니다. 위기 때는 이 부실대출 장사로 떼돈을 벌 수 있습니다. 죽을 것 같던 회사가 다시 살아나는 사례가 있는데 그러면 몇 배의 이익을 남길 수도 있습니다. 외환위기와 금융위기 때 이걸로 돈 번 이들이 많습니다. 역시 미국은 돈 냄새를 잘 맡습니다.
거꾸로 중국은 일단 11월 미 대선까지 지켜볼 가능성이 높습니다. 일부 사줄 건 사주면서 말이죠. 올해 수입 증가금액이 767억달러고 내년이 1,233억달러인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수입을 늘리는데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그보다는 상황을 지켜보자는 뜻이 강하다고 봐야 합니다. 트럼프가 재선되면 합의대로 하면 되겠죠.
역시 미국…
미중 무역합의를 앞두고 두 나라 사이의 자잘한 갈등이 합의에 위협이 될 것으로 보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또 이란 문제를 두고 중국이 러시아와 함께 이란과 해상훈련을 하고 유엔(UN)에서 미국의 일방주의를 지적하는 것을 보고 중국이 뭔가 하는 것 아니냐는 추정을 하는 분석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냉혹합니다. 중국은 어찌 보면 굴욕적이라고 느낄 정도의 협상을 미국과 했습니다. 내용보다 형식이 그렇습니다. 무역서명을 하는 날 트럼프 대통령은 “지금까지 미국의 제조업체, 농부, 혁신가들은 중국의 불공정한 무역에 타격을 받아왔다”고 직격탄을 날렸습니다. 뒤에 류허 부총리를 비롯해 중국 측 관계자들을 세워놓고 말입니다. 불공정한 거래라니요. 일각에서는 의전을 얘기하지만 시진핑 주석이 이 자리에 있었다면 엄청난 모욕감이 들었을 겁니다. 이날 류 부총리의 머릿속은 복잡했을 겁니다. 트럼프와 미국을 위한 잔치에 들러리를 선 모양새니까요.
역시 미국의 힘이 강합니다. 중국은 유엔 같이 책임지지 않는 자리에서는 계속 떠듭니다. 하지만 직접 미국이 나서면 꽁무니를 뺍니다. 이란 문제를 두고 중국이 이란을 위해 실제 실력행사에 나설 확률은 0%입니다. 그럴 이유도 힘도 없기 때문이죠.
여전히 중국은 상당량을 해외에서 수입해야 하고 결제를 달러화로 해야 합니다. 2017년 기준 중국의 원유수입량은 하루 평균 840만배럴로 세계 1위입니다. 달러화 결제망이 막히면 어느 나라도 건사할 수 없습니다. 미국의 글로벌 패권 장악에는 이 달러화 결제망이 있습니다. 미국인들이 미중 무역전쟁에 자신 있는 가장 큰 이유입니다.
중국의 기술굴기도 이번 합의로 어느 정도 타격이 불가피합니다. JP모건은 현재 중국이 미국보다 앞서 있는 것으로 인공지능(AI)과 자동화, 전기차를 꼽았는데 미국의 견제가 본격화하면서 추가 합의와 별도로 이들 분야도 주춤할 수밖에 없습니다. 거꾸로 삼성과 현대차 같은 우리 기업 입장에서는 다행입니다. 시간을 벌 수 있게 됐습니다.
이 같은 세계정세의 흐름을 잘 읽어야 합니다. G2라고 부르기엔 일등과 이등의 국력차이가 아직은 큽니다. 물론 대장정을 성공으로 이끈 중국 공산당의 후예들인 만큼 최종 결과는 두고 봐야 합니다. 그럼에도 잊지 말아야 할 게 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과 미국은 여전히 강하다는 점입니다.
/뉴욕=김영필특파원 susopa@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