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정에서 소주 두 병에 버선 벗어젖힌 구십 다 된 할매 두 분이
이년, 저년, 사발년 찾다가 아배 찾으러 온 나를 붙잡아놓고
소주 한 잔 따라주며 노래 한 가락 뽑아보란다
술 못한다고, 마시면 온몸에 불이 난다고 재차 밀치자,
글 쓰면 술도 마실 줄 알아야지,
어데서 똥구멍 긁는 소리 벅벅 하고 있느냐는 말씀에
넙죽 석 잔을 들이켜고 부른 노래가 봄날은 간다 인데, 간다 간다 하더니
그여코 취해서 아배 찾으러 왔다가 아배가 나를 찾아 업고 가다
돌부리에 걸려 밭에 고꾸라진, 노래
구십 할매들이 소주를 각 1병씩 하셨군요. 봄 나무 속으로 달리는 수액같이 모세혈관 뜨겁게 달았겠죠. ‘까치야, 너만 눈밭을 맨발로 다니느냐, 우리도 아직 청춘이다!’ 갑갑한 버선 벗어젖혔겠죠. 백세 동행하려면 부단히 닦을 우정, 끈끈한 욕을 사발로 나누셨군요. 김치전 안주도 바닥나던 차에 나타난 당신, 눈치코치 없으셨군요. 젊음도 시새울 터에 없는 아배 내놓으라니 덥석 잡아놓고 볼 밖에. 쓴 소주 석 잔이 ‘봄날은 간다~’로 나오니, 술병에 든 것은 애초 노래였군요. 저런, 돌부리 걸려 넘어진 곳이 폭신한 청보리밭이니 얼마나 다행이유. 어여 흙 털고 일어나 손잡고 가시오. 내일 모레 설 명절이니 그 할매들 마을 앞에서 미어캣처럼 허리 펴고 내다보겠죠. 약주마다 노래로 바뀌는 마을은 또 얼마나 떠들썩 정겨울까. <시인 반칠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