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림축산식품부 산하 기관인 국립종자원 원장 자리는 고위 공무원단(고공단)이 임용되는 개방형 직위로 지정돼 있다. 개방형 직위이기 때문에 농식품부 공무원 뿐 아니라 농생명 분야 민간 전문가도 정부가 정해 놓은 경쟁 절차를 거쳐 임용될 수 있다. 하지만 지난 2000년 8월 국립종자원이 농식품부 산하 기관이 된 이후 원장이 11차례 바뀌는 동안 농식품부 내부 출신이 원장직을 독식했다. 농식품부는 국립종자원장 외에도 감사관·한국농수산대학 총장·농림축산검역본부장을 고공단 개방형 직위로 열어두고 있지만, 농축산검역본부장을 뺀 두 자리 역시 내부 출신이 꿰차고 있다.
6개 부처 개방률 50%도 못미쳐
27일 서울경제가 17개(외교부 제외) 정부 부처를 전수조사해보니 전체 239개(공석 제외) 개방형 직위 중 민간 전문가가 임용된 자리는 134개에 그쳤다. 외부에서 임용된 비율은 56.1%다. 국토교통부(38.5%)·농식품부(27.3%)·교육부(44.4%)·기획재정부(12.5%)·산업통상자원부(43.8%)·해양수산부(30%) 등 6개 부처는 민간 전문가 개방률이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그마저도 개방형 직위로 지정된 자리 대부분이 부처 내 요직(要職)과는 거리가 있다는 평가다. 개방형 직위 임용 심사는 민간위원으로 구성된 인사혁신처장 아래 중앙선발시험위원회가 하지만, 직위 지정 자체는 부처 장관이 한다. 익명을 요구한 A부처의 한 공무원은 “승진 코스로 통하는 주요 보직을 개방형 직위로 지정하면 내부 반발이 적지 않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숫자 맞추기에 급급한 채 제도가 운영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타 부처 공무원을 임용할 수 있도록 한 공모직 제도는 있으나 마나 하다시피 운영되고 있다. 전체 203개 공모직 직위 중 26개 자리만 타 부처 공무원이 임용됐을 뿐 나머지 177개 자리는 모두 해당 부처 공무원이 자리를 차지했다. 환경부는 10개 공모 직위를 지정해두고 있지만 타 부처 공무원은 단 한 명도 없다. 여성가족부(3개)와 농식품부(11개), 통일부(5개)도 마찬가지다. 문화체육관광부(16개)·행정안전부(18개)·법무부(15개)·법무부(15개)·해양수산부(9개)도 겉으로는 적지 않은 자리를 타 부처에 열어놓은 것 같지만 정작 타 부처 공무원이 임용된 자리는 1개 뿐이다. B부처의 인사 담당자는 “부처 업무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은 해당 부처 소속 공무원인데, 어떻게 다른 부처 공무원을 받느냐”라고 항변했다.
박봉에 재취업 제한까지
공모·개방형 직위제도가 유명무실하게 운영되는 원인은 복합적이다. 그 중에서도 민간인이 공직사회에 들어왔을 때 받는 낮은 처우가 주된 원인으로 꼽힌다. C부처에 개방형 직위로 와 있는 과장급 공무원은 “민간 기업에 있을 때보다 연봉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적어진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계약 종료 후 재취업에 제한이 생기는 것도 걸림돌이다. 기본적으로 최초 3년에 업무성과에 따라 2년을 추가로 계약할 수 있다. 재계약을 포함해 최장 5년까지 근무한 후 계약이 추가 연장되거나 아예 일반 공무원으로 전환될 수도 있지만 사례는 극히 드문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계약직 신분인데, 단 1년만 근무해도 민간으로 돌아가려면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로부터 취업심사를 받아야 하는 점은 부담이다. 인사혁신처에 따르면 4급 이상으로 근무하다 퇴직하면 3년 간 민간 취업이 제한된다. 업무 관련성이 없다는 인정을 받으면 취업 제한에 걸리지 않지만, 최근 들어 재취업 심사가 깐깐해지는 분위기다. 지난해 총 948건(중앙부처 4급 이상)이 재취업 심사 대상에 올랐다가 209건(22%)이 불승인됐다. 직전 3년 평균 불승인된 비율 17.6%에 비하면 크게 올라갔다.
기본적으로 개방형 성과 홍보를 위해 숫자 늘리기에 급급한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경제부처의 한 공무원은 “부처마다 업무 성격이 다르고 인사 상황이 다른데 무턱대고 개방 직위를 늘리라는 정부의 인사 제도 운영에 문제가 있다”고 꼬집었다. 인사혁신처 관계자는 “민간인만 임용될 수 있는 경력 개방형 직위를 운영하는 등의 노력을 통해 공직사회의 개방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면서 “18개 중앙부처 포함 전체 개방형 직위 중 민간 임용률은 2015년 대비 2018년 현재 43%로 3배 증가했다”고 설명했다./세종=한재영기자 jyhan@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