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단독 인터뷰]귀국 우한 교민 "독방살이 시작에...안 쓰던 일기장 펼쳤다"

충남 아산 경찰인재개발원 수용된 A씨

"문앞 놓여진 식사...독방살이 같다"

전세기 탑승 확진자 발생 소식에 '불안'

31일 우한 교민들이 생활하는 격리수용시설인 충남 아산 경찰인재개발원 숙소 모습. /독자 제공31일 우한 교민들이 생활하는 격리수용시설인 충남 아산 경찰인재개발원 숙소 모습. /독자 제공



“오전 8시, 오후 12시와 오후 6시가 되면 문 앞 바닥에는 식사가 놓여졌다. 방 밖으로 나오는 건 쓰레기를 버리러 나갈 때 딱 한 번이다.”

지난달 31일부터 충남 아산 경찰인재개발원에 격리된 20대 남성 회사원 A씨의 독방생활이 시작됐다. 격리된 지 3일차인 2일 A씨는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지난 이틀은 그래도 이것저것 하면서 시간을 보냈지만 앞으로 2주 동안 지루함에 지칠 것 같다”며 “차라리 이번을 기회로 삼아 생각을 정리하고자 한다. 안 쓰던 일기도 어제부터 쓰기로 했다”고 말했다. A시는 회사 출장으로 중국 우한에서 두 달간 체류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산으로 정부가 마련한 전세기를 타고 귀국해 이곳에 격리수용됐다. 아산 개발원에는 526명의 교민들이 현재 생활 중이며 모든 교민이 1인1실을 사용하고 있다. A씨에 따르면 많은 교민들이 수용된 상황에서 관리 직원들이 부족해 각종 불편이 발생하고 있다.

A씨의 생활은 단조롭고 따분하다. 입소 직후 방 밖으로 나가지 말라는 규정이 적힌 안내문을 받았다. A씨는 “밖에 나가도 강제적으로 막을 사람은 없어 보이지만, 모든 교민들이 규정을 잘 지키고 있다. 어린이들이 복도를 뛰어다니는 소리가 방에서 들리긴 하지만 그것 외엔 조용하다”고 상황을 전했다.


31일 오후 1시께 개발원에 도착한 A씨는 짐을 풀고 곧바로 면봉으로 입안을 훑는 바이러스 감염 여부 검사를 받았다. 이후 A씨는 자신의 방 안에서 하루종일 텔레비전을 시청하고, 챙겨온 노트북으로 유튜브를 보고, ‘리그오브레전드’ 게임도 했다. A씨는 “개발원에서 와이파이가 안 터져서 민원이 쏟아지고 있는데, 나는 휴대폰 핫스팟을 켜서 노트북을 사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앉았다 일어나기, 팔굽혀 펴기로 방 안에서 혼자 운동도 가볍게 했다. 스스로 발열이 있는지 여부를 확인하고, 방문 앞에 자신의 체온을 적었다. 여차저차 그렇게 첫날을 보냈다. 격리생활 첫 주말인 1일도 그 전날과 다를 바 없었다. 문앞에 책이 놓여졌지만 표지만 봐도 읽고 싶지 않은 책이었다. A씨는 “제목이 잘 기억나진 않지만 ‘당신은 보배입니다’라는 문구 같은 게 보여 전혀 읽고 싶지 않았다”고 말했다. 대신 A씨는 “쿠팡으로 속옷과 수건을 주문했다”며 “개발원에서 교민들의 빨래를 직접 해준다고 했는데 사람이 많아 밀릴 것 같으니 여분 속옷과 수건을 준비했다. 몇몇 사람들은 손빨래를 하는 것 같던데 나도 나중엔 그래야 할 것 같다”고 덧붙였다. 쓰레기를 버리는 시간은 오후8시부터 10시 사이로 정해졌다. A씨는 “쓰레기를 버리러 중앙복도로 걸어 나가는 게 방 밖으로 나가는 유일한 시간”이라며 “초반인 지금은 별로 답답하지 않지만 나중엔 이 시간이 가장 필요할 것 같다”고 걱정했다.

관련기사



31일 우한 교민들의 격리 수용시설이 된 경찰인재개발원에서 나눠준 점심식사. /독자제공31일 우한 교민들의 격리 수용시설이 된 경찰인재개발원에서 나눠준 점심식사. /독자제공


개발원에서는 오전 8시, 오후 12시, 오후 6시 삼시세끼를 수용된 교민 문 앞에 둔다. A씨는 “문 앞 바닥에 식사가 놓여져 있는 걸 보면 진짜 감옥 독방에서 사는 것 같다”고 말했다. 식사는 잘 나올 때도 있고, 너무 빈약하게 나오기도 한다. 첫끼인 금요일 점심은 돈까스 도시락, 저녁은 제육볶음이었다. 저녁 식사 후 야식도 탕수육과 치킨, 감자튀김이 제공됐다. 그러나 A씨는 첫날에 비해 둘째 날인 1일 아침과 점심이 갑자기 빈약해졌다고 전했다. 토요일 아침은 햇반과 육게장에 김치, 점심은 짜장밥과 ‘미니탕수육’이었다. 저녁은 원래 제공되는 오후6시보다 1시간30분이나 늦은 7시30분에 문앞에 놓였다. A씨는 “연어와 소세지로 도시락이 나와서 음식은 그래도 괜찮았지만, 1시간30분이나 늦어져 민원이 계속 들어간 것 같다”며 “직원에게 설명을 요구하니 ‘사람이 많아져서 다소 늦어졌다’고만 설명했다”고 말했다. 이날은 우한 교민 300여명이 아산 개발원에 추가로 수용된 날이다.

우한 교민들의 격리 수용시설이 된 경찰인재개발원에서 생활하는 A씨가 1일 오후 발열 여부를 스스로 확인해 정상으로 나왔다. 교민들은 오전과 오후 총 두 번 스스로 발열을 체크해야 한다. /독자제공우한 교민들의 격리 수용시설이 된 경찰인재개발원에서 생활하는 A씨가 1일 오후 발열 여부를 스스로 확인해 정상으로 나왔다. 교민들은 오전과 오후 총 두 번 스스로 발열을 체크해야 한다. /독자제공


수용인원이 늘어 관리직원들도 늘었지만 A씨에 따르면 턱없이 부족하다. A씨는 “1일 식사제공이 늦어진 것에 대해 민원을 넣어 설명을 들었더니 설명한 직원은 ‘오늘 갓 들어와 잘 모르겠다’며 ‘시간이 좀 지나면 괜찮아지지 않겠냐’고 말했다. 쓰레기를 나가서 알아서 버릴 수 있도록 하듯이 밥도 중앙복도로 갖다주면 알아서 가져가면 안 되냐고 제안했더니 ‘잘 모르겠다’고만 답했다. 이곳에 오기 전 교육을 받거나 매뉴얼이라도 받은 게 없냐고 했더니 없다더라”고 지적했다.

지금까진 낯선 환경에서 지루한 시간의 연속이었지만 앞으로는 불안하기도 할 것 같다고 A씨는 전망했다. 그는 “비행기에 탄 교민이 추가 확진자 명단에 포함돼있다는 소식이 2일 전해졌는데, 당시 같은 비행기를 타고 있던 나를 비롯한 많은 교민들이 걱정하고 있을 것”이라며 “나중에 또 확진자가 개발원에서 나오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A씨는 부모님 걱정을 계속 덜어드리려 하고 있다. 그는 “통화를 계속하며 최대한 상세히 상황을 설명해가며 걱정하지 말라고 말씀드리고 있다”고 말했다.


손구민 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