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력고사를 대체한 수학능력시험은 기본적으로 5년마다 교육과정이 개편됨에 따라 출제범위가 달라진다. 하지만 역대 정부마다 자신의 색깔을 덧칠하고 정치적 유불리를 따지면서 누더기가 돼 버렸다. 27년 동안 수능은 과목변경과 등급제 도입 같은 큰 골격의 개편만도 15번에 이른다. 출제 범위 변경 등을 감안하면 해마다 바뀌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 회만 시행해보고 여론의 반발에 폐지된 적도 여러 번이다. 그야말로 수험생들은 실험실 쥐 신세다. 수능은 1994학년도 첫 시행부터 혼란을 빚었다. 미국 SAT를 모델 삼아 첫해는 8월과 11월 두 차례 치렀다. 하지만 난이도 조절에 실패하면서 이듬해부터 지금처럼 한 차례 시행으로 굳어졌다.
김대중 정부는 외환위기 탓에 수능을 쉽게 출제했다. ‘물 수능’과 ‘불 수능’이라는 말이 등장한 시기다. 1999~2000년 3년 연속 난도가 떨어지다 보니 ‘물 수능’ 논란을 빚었다. 이후 2년 연속 ‘불 수능’이었다. 참여정부는 공교육 정상화 차원에서 수능 등급제를 시행했지만 되레 부작용을 낳았다. 변별력 상실을 우려한 대학이 논술고사를 별도로 치르면서 ‘죽음의 트라이앵글’이라는 신조어를 낳았다. 2008학번은 내신과 수능에다 논술고사까지 치른 세대다.
이명박 정부 때는 수능 연계율 70% 제도가 정착하면서 교실마다 교과서를 제쳐 두고 EBS 교재를 달달 외웠다. 영어몰입 식 교육을 강조한 이명박 정부는 수능영어를 국가공인영어능력시험(NEAT)으로 대체하려다 혼란만 가중시킨 채 중도 하차하고 말았다. 박근혜 정부는 반대로 영어를 절대평가로 바꿨다. 선택과목인 국사가 필수과목으로 결정된 것도 이때다. 2014학년도에는 국·영·수에 한해 쉬운 A형과 어려운 B형으로 나누는 수준별 수능이 도입됐지만 영어는 이듬해, 국어와 수학은 2년 뒤 폐지됐다.
문재인 정부는 집권 초 1년 동안 대입개편 공론화 작업을 벌였으나 혼란만 낳은 채 원점 회귀했다가 조국 사태 이후 수능 비중 확대로 가닥을 잡았다. 2021학년도부터 출제범위가 달라져 수학에서는 기하·벡터가 사라진다. 수능을 설계한 박도순 고려대 명예교수는 “입시제도는 해방 이후 해볼 만큼 다 해봤다”며 “입시개편의 대전제는 경쟁의 강도에 대한 사회적 합의에 있다”고 했다. /권구찬 선임기자 chans@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