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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보다 자존심 앞세운 태도...계층 초월한 北의 생존전략"

[문화인류학자 정병호 교수 '고난과 웃음의 나라' 출간]

대화→갈등→비난 과정 반복은

'우리 인정해달라'는 화법·몸짓

핵협상도 北행동패턴 이해해야

정병호 한양대 교수./사진=연합뉴스정병호 한양대 교수./사진=연합뉴스



“북한 문제를 정치공학적으로만 접근해서는 해결하기 어렵습니다. 같은 말을 쓰는 민족이라고 해서 상대방도 나와 사고방식이 같다고 생각하면 곤란합니다. 상대방의 문화코드가 우리와는 많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정병호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교수는 그동안 실패를 반복해온 대북 문제에 대해 한 마디로 이렇게 정의했다. 70년간 분단국가로 살아온 북한의 문화코드가 우리와 많이 달라져 있기 때문에 우리의 방식으로 생각하고 판단해서는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정 교수는 “분단국가로, 각기 다른 체제에서 살아온 북한은 지금 다른 여건과 입장, 조건에 놓여 있다는 점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며 “서로가 어떤 맥락으로 세상을 바라보는지 상대주의적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 교수가 쓴 ‘고난과 웃음의 나라’(창비 펴냄)는 이러한 북한의 내면을 잘 설명하고 있다. 정 교수는 기근으로 고통받는 북한 어린이들을 위한 구호활동에 참여하면서 10여 차례 북한을 방문했고, 2001년부터는 탈북아동들을 위해 통일부 하나원 내에 설립한 ‘하나둘학교’에서 대기근이 아이들에게 남긴 상처를 치유하는 교육활동을 벌여왔다. 책은 과거 북한을 직접 관찰하고 경험한 정 교수의 북한문화에 대한 현장기록서다. 기존에 정치나 이념적으로만 바라봤던 북한이라는 나라를 문화인류학자의 입장에서 해석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책은 기근으로 극심한 고난을 겪으면서도 ‘가는 길 험난해도 웃으며 가자’라는 선전구호를 내걸었던 ‘극장국가’ 북한의 문화특성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북한은 당장 구호물품이 필요한 아쉬운 입장이지만 협상장에서 덕담을 나누다가도 돌연 트집을 잡으며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키려 하고, 뜻대로 되지 않으면 대화를 끝내버리기도 한다. 정 교수는 협상의 주도권을 확보하고 자신들만의 원칙과 자존심을 지켜내는 방식인 북한의 이러한 문화적 특성을 일종의 ‘아비투스(Habitus)’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는 북한 사람들의 심리와 문화를 이해하면 핵폭탄이라는 극단적인 카드를 놓지 않는 북한체제의 의도와 전략까지도 파악할 수 있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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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듭되는 남북회담 소식을 접할 때마다 악수→웃음→대화→갈등→폭언→결렬→비난의 과정을 반복하는 모습이 그려진다. 이러한 특성은 북한 지도자나 엘리트 집단에만 국한된 행동패턴이 아니라 나이와 계층을 초월해 많은 북한 사람들의 몸과 마음에 내면화된 행동패턴이자 생존전략이다. 이는 ‘우리를 인정해달라’, ‘이해해달라’는 절박한 사람들의 말법이고 몸짓이다. 무기를 내려놓게 하려면 우선 그 마음을 알아주어야 한다.” 실리보다 자존심을 앞세운 북한의 태도에는 이런 문화적 특성이 깔려있다는 분석이다.

최근 북한 내에서도 억눌려왔던 목소리가 밖으로 터져 나오며 새로운 문화가 형성되고 있다. 1990년대 중후반 북한의 경제위기인 ‘고난의 행군’ 시기 이래 배급체계가 무너지고 밀수와 뇌물이 횡행하며 여성들이 경제의 주역으로 활약하는 일이 늘면서 가부장적인 성별 위계질서에도 균열이 생기고 있다고 한다. 저자는 이런 변화를 ‘남한보다 더 자본주의 같은 면모가 싹트기 시작했다’고 표현했다. 다만 북한사회의 이러한 변화를 체제붕괴의 조짐으로 해석하는 태도는 경계해야 한다고 덧붙인다. ‘공식적인 제도와 비공식적인 일상 간의 괴리는 커지고 있지만 두 흐름 모두 현실이고 서로 상호보완적으로 공존하며 새로운 사회를 만들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정 교수는 “북한과 대화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그 속내를 헤아려야 한다”며 “오랜 세월 서로 다른 길을 걸어온 남과 북은 서로의 경험을 존중하고 이해하는 감수성을 연마해야 진정한 공존을 꿈꿀 수 있다. 우리가 어떻게 북한의 입장을 이해하고 상호작용을 하느냐에 따라 북한의 태도도 달라진다. 북한의 변화는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다”라고 조언했다.




최성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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