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해외칼럼] 샌더스는 사회주의자가 아니다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

샌더스의 '사회주의자' 선언

공화당에 먹잇감 자처한 꼴

백인민족주의서 美 구하려면

오해 부르는 경솔한 언행 멈추고

서민 수호당 각인·지지층 결집을

폴 크루그먼폴 크루그먼



공화당은 미국인들의 삶을 개선하려는 모든 시도를 ‘사회주의’의 악으로 몰아세운 기나긴 악명의 역사를 갖고 있다. 처음 공공의료보험 법안이 나왔을 때 이를 ‘사회주의식 의료체제’로 규정한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은 이 제도가 미국의 자유를 해칠 것이라고 공언했다. 지금이라고 다르지 않다. 예를 들어 탁아 서비스가 필요한 모든 가정에 정부의 재정지원을 의무화하는 보편적 아동복지 법안이 나오면 보수주의자들은 미국을 소련으로 만들려는 시도라며 맹비난을 퍼부을 것이다.

복지정책에 사회주의 프레임을 덧씌우는 것은 분명 부정직한 전략이기는 하지만 그 효과를 부정하기는 힘들다. 문제는 민주당 대선 후보 지명전에서 조만간 선두주자 자리를 굳힐 것으로 예상되는 유력 후보가 스스로 사회주의자를 자처하며 그들의 전략에 제대로 걸려들었다는 점이다. 사실 사회주의자라는 용어의 정상적인 의미 중 버니 샌더스에게 적용될 만한 것은 전혀 없다. 그는 주요 산업의 국유화를 원하지 않을뿐더러 시장경제를 계획경제로 대체하려 들지도 않는다. 그가 찬사를 보낸 모델 국가는 베네수엘라가 아니라 덴마크였다. 굳이 분류하자면 그는 유럽인들이 말하는 사회민주주의자다. 대표적인 사회민주주의 국가인 덴마크는 살기 좋은 곳이다. 샌더스가 턱없이 사회주의자를 자처한 이유가 뭘까. 아마도 자본가 계층에 충격을 안겨주며 약간의 희열을 맛보고 싶은 마음이 어느 정도 작용했겠지만 필자의 견해로는 개인적인 이미지 부여 작업이 아니었나 싶다. 이처럼 방종한 언행은 그가 진보색이 강한 지역을 대변하는 일개 상원의원이라면 별로 문제 될 게 없다.


그러나 그가 민주당 대통령 후보 지명자가 된다면 유권자들에게 잘못된 인식을 심어줄 수 있는 발언은 트럼프 진영에 큰 선물이 될 것이다. 물론 그가 제안한 정책들 역시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공공의료제에 해당하는 싱글 페이어 헬스케어는 원칙적으로 좋은 발상임에도 불구하고 실행될 가능성이 대단히 낮다. 하지만 전 국민 의료보험을 대선 캠페인의 핵심 공약으로 제시할 경우 샌더스는 이미 우리에게 주어진 사회안전망을 빼앗아 가려는 트럼프 행정부의 결정으로부터 유권자들의 관심과 시선을 떼어놓게 될 것이다.

분명히 말하건대 샌더스가 실제로 민주당 대통령 후보 지명자가 된다면 민주당은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해 그를 지지해야 한다. 샌더스는 미국을 덴마크처럼 변화시킬 수 없을 터이지만 재선에 도전하는 현직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는 바로 지금 이 순간에도 미국을 헝가리와 같은 백인 민족주의 독재국가로 바꾸어놓으려 기를 쓰고 있다. 필자는 샌더스가 우익이 펼치는 비방공세의 손쉬운 타깃이 되지 않도록 자제해주기를 바란다.


샌더스가 평판이 나쁜 공화당의 정치 전략 가운데 하나에 스스로 휘말린 데 이어 부티지지 역시 또 다른 전략에 놀아나고 있다. 민주당이 백악관을 장악했을 때는 긴축재정을 부르짖으며 미국 경제를 절름발이로 만들다가 공화당이 고지 탈환에 성공하면 곧바로 대규모 적자지출로 돌아서는 고약한 전략에 부티지지가 맞장구를 친 것이다. 차기 대선에서 승리할 경우 민주당은 어렵게 확보한 정치 자본을 공화당이 어질러놓은 쓰레기를 치우는 데 쓰지 말고 진보적 어젠다를 추진하는 데 사용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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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민주당은 과연 누구를 대통령 후보로 지명할까. 필자 역시 궁금하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누가 후보지명을 받건 민주당 자신의 강점과 트럼프의 약점에 계속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마이클 블룸버그에서 샌더스에 이르기까지 민주당 경선에 나선 인사들은 최소한 온건한 진보주의자들이다. 후보들은 모두 사회안전망을 유지하거나 확대하는 한편 부유층에 대한 세금을 인상하기 원한다. 게다가 각종 여론조사 결과는 미국이 기본적으로 중도좌파 성향의 국가임을 보여준다. 지난 2016년 선거에서 트럼프가 부유층 증세와 주요 사회복지 프로그램 유지를 공약으로 들고나온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트럼프는 계속 거짓말을 하고 있고 열린 마음을 지닌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 같은 사실을 안다. 따라서 민주당은 근로 가정보다 부호들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공화당에 맞서 사회안전망과 의료보험, 오바마케어 등 사회복지 정책을 지켜내는 서민 수호정당으로서의 이미지를 각인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맞았다.

중요한 것은 누가 후보지명을 받건 민주당은 가능한 한 폭넓은 연합체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선거를 통째로 트럼프에게 넘겨주는 꼴이 되고 만다. 그것은 당과 국가 그리고 전 세계의 비극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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