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가 한국에 대한 여행경보를 사상 처음으로 최고 등급인 3단계로 격상하고 중국이 한국발 입국자를 처음으로 강제격리 조치한 것은 전 세계가 국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상황을 얼마나 심각하게 보고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특히 미 CDC가 지난 22일 여행경보를 2단계 ‘경계(강화된 사전 주의)’로 올린 지 이틀 만인 25일 최고 등급으로 격상하면서 한국인의 미국 입국 절차도 강화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여행경보 3단계가 인적교류 중단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만 재선을 앞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미국 내 코로나19 확산에 극도로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는 만큼 국내 코로나19 확산 추이에 따라 ‘한국 여행금지’ 등 최악의 상황도 배제할 수 없다. 미국의 중국인 입국 전면 금지 조치도 CDC가 지난달 27일(현지시간) 중국 본토에 대한 여행경보를 3단계로 올린 뒤 불과 닷새 만인 같은 달 31일 전격 단행됐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코로나19 집단감염 사태가 발생한 일본 정박 유람선 ‘다이아몬드 프린세스’에서 내린 뒤 양성 판정 통보를 받은 감염자를 전세기 편으로 귀국시킨 것에 대해 격노한 것으로 전해졌다. 허태회 선문대 국제관계학과 교수는 “미 CDC의 여행경보 최고 단계 격상이 한미 간 외교·안보에 큰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것”이라면서도 “트럼프 대통령은 현재 재선 가도에 있기 때문에 코로나19가 미국 내에서 대유행하면 선거에 변수가 되는 만큼 굉장히 신경을 많이 쓰고 있다”고 진단했다.
경제적 교류 등 한중관계를 이유로 한국 정부가 코로나19의 진원지인 중국인의 전면 입국금지를 반대했음에도 중국이 한국인의 입국을 제한하는 일이 발생해 파장이 예상된다. 주중 대사관 등에 따르면 중국 산둥성 웨이하이시 웨이하이 항공 당국은 이날 오전10시50분(현지시각) 도착한 인천발 제주항공 7C8501편 승객 167명을 전원 격리 검사한 뒤 격리 조치했다. 우리 국민은 19명으로 이는 중국이 한국인의 입국을 제한한 첫 사례다.
지방정부 차원의 조치지만 자국 내 반한 여론이 확대될 경우 중국 중앙정부는 한국인에 대한 전면 입국금지도 고려할 가능성이 있다.
우리와의 교역 규모가 큰 미국과 중국에서 ‘코리아포비아(한국 공포증)’ 현상이 심화할 경우 한국은 안보뿐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큰 손실을 입을 것으로 예상된다. 실제 코로나19 방역을 위해 중국인에 대한 전면 입국금지를 결정한 북한과 러시아 등도 대중국 교역에 큰 타격을 입고 있다.
감염병 방역의 권위국가로 알려진 미국이 한국에 대한 경각심을 높인 가운데 전 세계 여러 국가도 한국 여행 자제를 잇달아 권고하고 있다. 프랑스는 25일(현지시간) 한국 여행경보를 두 번째로 높은 수준인 3단계(여행 자제·오렌지색)로 격상하고 필수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여행을 자제하라고 권고했다. 대만은 한국에 대한 국외 여행지 전염병 등급을 가장 높은 3단계로 높이고 불필요한 여행 자제를 권고했다. 또 싱가포르는 25일 대구와 청도를 최근 방문한 이들에 대한 입국을 금지하기로 했다. 중앙아시아 키르기스스탄은 25일 한국 등에서 오는 모든 입국자에 대해 증상 유무와 관계없이 14일간의 격리 조치를 의무화했다.
한국을 오가는 하늘길도 막히고 있다. 쿠웨이트 민간항공청(DGCA)은 이날 코로나19 확산에 따라 한국행 항공편 운항을 전면 중단한다고 발표했고 몽골도 오는 3월2일까지 한국행 항공편 운항을 모두 중단했다..
정부는 한국이 코로나19 방역에 강력하게 대응하고 있다는 점을 들어 각국에 한국인에 대한 과도한 조치를 중지할 것을 요청하고 있지만 이들을 설득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24일(현지시간)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제43차 유엔 인권이사회에서 “최근 코로나19 발생국가 출신자에 대한 혐오 및 증오 사건, 차별적인 출입국 통제 조치, 자의적 본국 송환에 대해 깊이 우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건 외교부 차관보는 25일 주한외교단을 대상으로 정부의 코로나19 방역 노력에 관한 설명회를 열고 한국인에 대한 입국제한 등 과도한 조치를 하지 말아달라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