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간 5,000억원(생산 63만톤) 규모의 ‘고급 포장재’ 백판지 시장을 놓고 부동의 1위인 한솔제지와 이를 뒤쫓는 한국제지간 쟁탈전이 본격화될 전망이다.
27일 업계에 따르면 한국제지가 백판지 업계 3위인 세하 인수에 사실상 성공하면서 시장에 진입하자 한솔제지가 즉각 공장 증설을 공개하는 등 전운이 감돌고 있다. 특히 설비 매각을 통해 백판지 사업을 접은 신풍제지 물량을 누가 가져 가느냐에 따라 업계 판도가 뒤바뀔 수 있는 만큼 1위를 지키려는 한솔제지와 이를 뒤집으려는 한국제지간 ‘백판지 전쟁’이 시작됐다는 분석이다.
이날 한솔제지는 백판지를 생산하는 대전공장에 323억원을 들여 설비 증설에 나섰다. 이는 백판지 시장 3위로 15% 점유율을 가진 세하를 한국제지가 인수하면서 본격적인 시장 진입을 알린 것과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다.
국내 백판지 시장은 한솔제지가 40%를 차지해 부동의 1위다. 2위는 깨끗한 나라로 26%. 세하는 15%로 3위다. 백판지 시장서 철수한 신풍제지의 점유율은 13%로 세하를 인수한 한국제지가 이를 전부 가져가면 단번에 ‘빅2’로 올라 시장을 재편할 수 있다. 이 때문에 한국제지 견제용으로 한솔제지는 대전공장 투자를 통해 내수 점유율을 더 높이고 핵심 수출지역인 동남아 시장 점유율도 확대하겠다는 복안이다. 한국제지가 따라오기 전에 초격차를 벌여 놓겠다는 계산인 것이다. 한국제지의 ‘1위 타도’를 위한 도전도 만만찮을 전망이다. 한국제지는 해성산업·계양전기 등을 보유한 해성그룹 계열사로 제지업계의 큰손으로 통할 만큼 자금력이 탄탄하다. 세하에 앞서 골판지 업체 원창포장도 사들였다. 인쇄업체 외길을 걸어온 한국제지는 당분간 백판지 시장 파악에 주력하겠지만 세하 인수 시너지를 극대화하기 위해 다음 수순으로 본격적인 백판지 시장 잠식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초미의 관심은 신풍제지의 백판지 생산 설비를 누가 가져 갈지다. 펄프를 원료로 하는 초지기(종이제조 기계)만 보유한 한창제지가 눈독을 들이는 가운데 해외 매각 가능성도 있다. 그 결과에 따라 또 한 번 시장이 흔들릴 수 있다. 제지 업계의 한 임원은 “변화가 없던 백판지 시장에 모처럼 활기가 돌고 있는 것은 사실”며 “국내외 고급 포장재 시장이 커지는 상황에서 확고한 1위 한솔제지에 한국제지 등 후발주자가 거세게 도전하는 구도가 됐다”고 말했다. 이에 한솔제지는 대전공장 투자는 동남아 시장 확대를 위한 포석일 뿐 한국제지와의 경쟁을 염두한 것은 아니라며 느긋한 입장이다. 동남아 경제가 급성장하면서 고급 포장재 수요가 늘어나는 만큼 해외 경쟁력 강화가 급한 것이지, 후발인 한국제지를 신경 쓸 겨를이 없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