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 서울 양천구 신정동에 위치한 한 프랜차이즈 커피전문점. 매장 안 대부분의 손님들이 일회용 플라스틱 컵에 담긴 음료를 마시고 있었다. 매장 정리대 위에도 일회용 플라스틱 컵이 잔뜩 쌓여 있었다. 2018년 8월부터 정부가 매장 내 일회용품 사용을 금지했지만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에 따라 한시적으로 이용을 허용하면서 약 1년 반 만에 카페에 일회용 플라스틱 컵이 등장한 것이다. 대다수의 시민들은 ‘남이 쓰던 컵으로 먹지 않으니 안심이 된다’며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일회용품 허용이 코로나19 예방에 큰 실효성이 없다며 알맞은 대응책은 아니라고 지적한다.
2일 지방자치단체에 따르면 서울시는 지난달 말부터 25개 자치구 소재 커피전문점 등에 대해 일회용품 사용을 허용했다. 코로나19 대응단계가 ‘심각’으로 격상되면서 환경부가 지난달 24일 전국의 모든 식품접객업소 내 일회용품 사용을 한시적으로 허용하도록 지침을 내리자 전국 주요 지자체들은 지자체장의 판단에 따라 일회용품 사용을 허용하고 있다.
환경부는 이번 지침의 배경으로 ‘국민들의 불안’을 꼽는다. 환경부 관계자는 “코로나19와 관련해 손님들이 불안해한다는 일부 커피전문점의 민원이 있었다”며 “중앙사고수습본부와 협의해 지침을 발표한 것”이라고 전했다. 실제로 한 대형 프랜차이즈 커피전문점 관계자는 “아이를 가진 엄마들을 중심으로 불안하다는 의견이 많았다”고 말했다. 관악구 봉천동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A씨 역시 “코로나19 이후 손님들에게 머그컵과 일회용 컵 중 하나를 선택하게 한다”며 “손님 대부분이 일회용품을 달라고 한다”고 전했다.
고객들도 정부의 조치에 수긍이 간다는 입장이다. 은평구 불광동에 거주하는 장새봄(24)씨는 “카페에 가면 가끔 덜 닦인 컵이 나와 바꿔달라고 말 한 적이 있다”며 “환경부의 지침이 어느 정도 이해가 간다”고 말했다. 영등포구 문래동에 거주하는 직장인 B씨 역시 “점심시간 같은 때는 컵이 제대로 세척됐을지 걱정된다”면서 “당분간은 일회용 컵을 사용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다만 감염학 전문가들은 일회용품 사용 조치가 코로나19를 예방하는 데 큰 효과가 있는지는 의문이라고 말한다. 김우주 고려대 의과대학 감염내과 교수는 “카페에서 컵을 깨끗이 닦고 열로 소독하기 때문에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다”며 “일회용품이라고 특별히 안전하다는 보장도 없고 보균자가 만진 일회용품과 접촉하게 되면 결국 소용이 없다”고 말했다. 최원석 고려대 안산병원 감염내과 교수도 “세척하면 전염력이 있는 바이러스가 남아 있을 가능성은 거의 없기 때문에 일회용품 허용이 코로나19 대응에 딱 맞아떨어지는 정책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대한방역협회 관계자 역시 “최대한 대비하자는 정부의 입장은 이해하지만 바이러스는 비누나 세제에 들어 있는 계면활성제로도 충분히 없어진다”고 지적했다.
정부의 정책 일관성에 대한 의문도 제기된다. 지난해 11월 환경부는 오는 2022년까지 1회용품 사용량을 35% 이상 줄인다는 ‘1회용품 함께 줄이기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세계적인 추세에 따라 일회용품 사용을 줄이는 정책을 발표했는데 코로나19 사태로 되레 역행하는 모습을 보이는 게 아쉽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춘이 환경운동연합 사무부총장은 “그동안 일회용품 규제를 꾸준히 추진해온 환경부라면 이 기회에 텀블러 사용을 장려했어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장은 “이제 막 다회용 컵 사용이 현장에 자리 잡아가는데 좀 더 세심한 정책을 고려했으면 어땠을까 싶다”며 아쉬움을 표했다.
/한동훈·곽윤아기자 hooni@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