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의 응급실, 노쇠한 할아버지가 더 아픈 할머니의 ‘밥 먹는 콧줄’이 빠졌다며 찾아왔다. 의사는 “그다지 나쁘지 않다”며 콧줄 삽입과 퇴원을 지시했다. 그런데 한참 뒤 단말마의 비명이 들렸다. 정맥류 파열로 피가 튀었고, 수술이 불가피했다. 그러나 쇠약한 할머니는 마취와 절제의 시간을 버티지 못했다. 의사들이 죽음의 원인과 책임을 생각하기 바빴을 때, 세상에 혼자 남은 할아버지는 “환자에게 할 말이 있다”고 애원했다.
“자네는 나와 함께 오래 살았네. 감사했네. 여보.…가서 기다리고 있게. 괜찮네. 곧 보세. 헤어지지 않을 것일세. 사랑하네.”
숱한 죽음을 목격했던 강철 같은 의료진은 소리 죽여 함께 울었다.
응급실의 의사이자 ‘만약은 없다’ ‘지독한 하루’ 등으로 유명한 남궁인의 새 산문집 ‘제법 안온한 날들’은 이 사연에 ‘평생의 행운’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전작들이 응급실의 생생한 모습을 주로 전했다면 이번 책은 응급상황과 위기를 겪고도 사람들이 “자기 자리를 찾아가는” 모습을 담았고 고통 후 찾아오는 인간의 회복을 응시했다. 의사 자신도 병원에 가는 게 두렵다는 것이나, 내밀한 사랑과 사람의 이야기도 적었다. 저자는 “일상의 회복이라고 생각했다. 자신의 일을 마치고 돌아와 책 한 권을 펴서 읽는, 우리에게 반드시 돌아올 일상”이라고 했다. 초판 1쇄 인세는 전액 ‘코로나 19’ 사태로 고통받는 의료취약계층에게 기부된다. 1만5,000원.